“마지막 순간까지 언약을 확신하라”

시편 89:38~52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는 데까지는 2천 번의 실패를 반복해야 했고, 축전지(건전지)를 발명하는 데까지는 2만 번의 실패를 반복해야 했다고 합니다. 2천 번의 실패든, 2만 번의 실패든… 에디슨이 발명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머리속으로 상상했던 그 물건, 늘 꿈꾸던 그 발명품을 성공할 때까지 계속 도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만약 2천 번의 실패를 반복하는 중에, 또는 2만 번의 실패를 반복하던 중에 너무나 많은 실패를 했기 때문에 에디슨이 ‘아무래도 이젠 포기해야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발명을 중단했다면, 에디슨은 역사 속에 가장 위대한 발명왕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 역시 에디슨으로 인해 얻게 되었을 과학적, 문명적 혜택들은 못 받았을 겁니다.

에디슨에게 필요했던 것은 2천 번 또는 2만 번의 실패를 반복했지만 거기서 또 한 번의 도전을 했기 때문에 성공의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었던 겁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노력하고 노력하던 중에 거의 성공 지점에 가장 가까이에 가서 주저앉고 포기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보처럼 끝까지 도전하는 사람,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도전하는 사람은 그의 인생 속에 성공의 영광과 역사도 써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한 영적 근성이 있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언약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역사 속의 한 과학자도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굳게 붙들고, 끝까지 도전했었는데, 우리는 위대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향한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을 마지막 순간까지 믿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적어도 어떤 과학자 보다는 더 나은 신념과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제 나누었던 말씀 시편89편19절~37절까지의 말씀에서 ‘언약을 붙들어야 다시 일어난다’는 내용을 나눴습니다. 34절 말씀에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의 언약은 깨지지 않고, 반드시 이행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38절~45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취소될 것 같지 않았던 그 언약을 하나님께서 깨신 것 같은 상황들이 유다와 다윗왕가에 닥친 것입니다.

-(38절) 다윗의 후손인 유다의 왕을 미워하시고 진노하셨습니다.

-(39절) 언약을 취소하신 것 같고, 왕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셨습니다.

-(40절) 나라의 경계는 짓밟히고, 요새들은 무너졌습니다.

-(41절) 백성들은 탈취를 당하고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42절) 대적들이 승리의 환호를 합니다.

-(43절) 유다와 유다왕의 군사력은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44절) 왕의 영광은 땅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45절) 왕의 전성기는 끝나고 수치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분명 다윗 왕에게 하신 언약(19~37절)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어왔는데, 그 모든 믿음이 허물어져 내린 것 같은 상황인 것입니다.

46절에서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 고난이 안 끝날 거 같은 겁니다. 47절 말씀에는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라는 말씀은 ‘이제 죽음의 날의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극단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가운데 시인은 49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다시한번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여 주의 성실하심(faithfulness : 신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그 전의 인자하심(great love : 큰 사랑)이 어디 있나이까?

지금의 상황과 환경은 주의 ‘성실과 인자’와는 안 어울리는 거 같은 겁니다. 하지만, 50절과 51절 말씀을 통해서 시인은 다시한번 고난당하고 있는 자신들을 ‘기억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갑자기 52절에서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으로 시편89편은 마치고 있습니다. 지금 그렇게 굳게 믿고 있던 하나님의 언약(계약)이 다 파기된 것 같은 비참한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지금 죽음의 문턱 바로 앞에 가 있어서, 이제 더 이상의 소망이 없을 것 같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런 급박하고 절박한 상황들을 열거하다가 갑작스럽게 본 시편을 52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언약을 믿고, 의지하다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결해주셨다는 어떤 결론이 없이 찬양으로 마무리하는 겁니다. 고난 중에 찬양을 부르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겁니다. 시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언약을 확신’하며 나아갔던 겁니다. 우리가 아직 호흡하고 있고, 살아있다면 아직 끝난 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끝났거나,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언약은 진행 중인 것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향한 언약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오늘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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