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50:1~6>
미국 뉴욕에 가면 역사와 권위와 명성으로 빛나는 클래식 콘서트홀인 ‘카네기홀’이 있습니다. 지금은 클래식 뿐만 아니라 팝과 재즈 등 다양한 연주와 콘서트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 카네기홀은 강철왕 카네기가 1891년 당시 200만 달러를 출연해 만든 콘서트홀입니다. 벌써 120년이 지난 일이니깐, 지금의 환율로 계산해 본다면 엄청난 재정이 들어간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0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세계의 연주자들 열광하는 음악의 전당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은 “홀 자체가 악기다. 당신이 무대에서 무엇을 하건 그것을 전설로 만든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니 클래식 연주자건, 다양한 장르의 연주자와 음악인들은 카네기 홀에서의 연주를 꿈꿉니다. 카네기홀에서의 연주는 그의 평생의 영광이고, 자랑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연주가들의 이력을 보시면, ‘카네기 홀에서 무슨 무슨 연주했다’는 프로필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카네기홀이라는 무대에 섰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제가 아는 성악을 전공한 한 자매님이 언젠가 저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목사님, 저는 백악관에 가서 찬양을 부르는 게 제 꿈 이예요” 처음 그 말을 듣는데 좀 황당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자매님 개인에게도 큰 영광이 될 것이고, 또 복음의 통로도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처럼 카네기홀이나, 백악관이나 그런 명성과 권위가 있는 장소에서 어떤 연주를 한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영광스러운 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의 평생의 프로필에 따라 다닐 겁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누군가 이 땅에서 아무리 명성이 있고, 대단한 장소에서 노래를 하고 연주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연주와 하나님의 성소(God’s Sanctuary)에서의 찬양과 비길 수 있을까요?
미국 대통령보다 위대하신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백악관이나 카네기홀과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가 비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이 가장 영광스러워야 할 일은 그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 말씀을 보시면,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하나님보다 위대한 존재는 이 땅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소보다 더 영광스러운 건축물은 이 땅에 없는 것입니다.
뮤지션들 중에서는 현대의 교회음악이라든지, CCM과 같은 것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복잡하고, 더 화려하고, 더 어렵고 까다로운 멜로디와 곡이 더 훌륭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복잡하고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 훌륭한 겁니까? 현대 교회음악이 세상의 음악보다 더 단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악보를 볼 줄 모르고,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롭고 복잡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복잡한 세상의 음악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바꿔주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고, 그 영혼을 구원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들은 지금도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그 노래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의 인생이 바뀌고,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있고, 세대에서 세대를 이어 가문의 역사, 세상의 역사를 계속 변화시켜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음악이 더 훌륭한 음악이겠습니까?
그래서 시편의 마지막편인 150편에서는 매 절마다 ‘찬양하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할렐루야’라는 말 자체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1절에 3회, 2~6절까지 각 2회씩 총 13회에 걸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5절까지는 모든 악기들을 동원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 ‘나팔소리(관악기)’, ‘비파와 수금(현악기)’으로, 그리고 4절에서는 ‘소고(타악기)’, ‘춤(Dancing)’으로도, ‘현악’과 ‘퉁소’로 찬양하고, 5절에서 ‘큰 소리 나는 제금, 높은 소리나는 제금(심벌즈)’로 찬양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6절을 통해서 누가 찬양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는데,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호흡이 있다면, 살아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입니다. 찬양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노래로 찬양을 드리는 것이 우리의 특권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입술로,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마음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복된 날이 되시길 바라고, 시편의 마지막을 이렇게 할렐루야로 마치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이 마쳐지는 그 날까지 찬양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