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라는 보석을 사모하라”

<잠언 24:7> 
– 아름다운 삶의 지혜(22) –

우리나라에서는 ‘갑질 논란’이라는 것이 잊을 만하면 하면 한 번씩 터지곤 합니다. 2014년 12월에 있었던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은 그 중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사건을 전후로 해서 크고 작은 갑질 논란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논란들이 주로 백화점에서 많이 일어나고, 그런 현장을 시민들이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 퍼져나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인천의 S백화점에서는 귀금속을 구입한 여성이 무상 수리 문제를 놓고 매장 직원들을 찾아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두 명의 직원이 무릎을 꿇고 사과하도록 했습니다. 또 대전의 한 백화점에서도 의류 교환 문제로 실랑이 하다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직원의 따귀를 때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부천의 H백화점에서는 고급승용차 한 대가 차량 두 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곳 중앙에 주차를 해서, 아르바이트 주차요원이 이동주차를 요구하게 되었는데, 그런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주차요원 3명을 1시간이 넘도록 무릎을 꿇려 강제로 사과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오늘 740만원을 썼어, 내 남편 오면 너네 다 죽어, 남편 오면 여기 영업 정지야!”라는 식의 말을 하기도 했다는 겁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그럴 수 있지?’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고급 승용차를 갖고 있고, 많은 재산을 갖고 있고, 어떤 권력을 갖고 있고, 값비싸고 화려한 것들로 치장을 했을지 몰라도… 그에 걸 맞는 고결한 인품은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잠언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 – 스물 두 번째’는 “지혜라는 보석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여 지는 값비싼 보석들보다 지혜라는 보석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6절 말씀에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먹을 것만을 찾는 돼지에게 아무리 영롱한 빛을 발하는 진주라 할지라도 의미가 없는 것처럼,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보물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잠언 23:9절 말씀에서도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아무리 옳은 말이고, 아무리 좋은 권면과 충고라 할 지라도 어리석은 자는 그 지혜의 가치를 모르는 겁니다. 돼지가 먹을 것만 탐하듯이, 그는 그 지혜가 얼마나 값지고 귀한 보석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24:7절 말씀에서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가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너무 높아서”라는 말은 히브리어 ‘Lamot’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산호(Coral)’라는 뜻입니다.
산호는 진주와 함께 바다에서 나는 아주 귀한 보석입니다. 우리는 산호하면 ‘산호초’를 생각하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산호는 식물이라기보다 동물입니다. 말미잘과 같은 류의 ‘산호충(珊瑚蟲)’을 가리킵니다. 열대와 아열대의 낮고 맑은 바다 속에 서식하는데, 바다 밑의 바위 위에 붙어서 석회질을 분비하면서 나무 가지 형태로 만들어지고, 산호충이 죽어서 산호가 되는 겁니다. 산호는 1년에 4mm정도 성장하고, 수명은 대개 400~500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지금도 보석으로 쓰이는 산호는 희귀하고 매우 값비싸게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에게 있어서 지혜는 너무 값이 비싸서 손에 넣을 수 없는 산호(Coral)와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에게는 ‘지혜라는 보석(산호)’의 가치가 크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먹을 것만 탐하고, 겉으로 보여 지는 것에만 집착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지혜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그들은 지혜라는 보석을 얻게 되는 겁니다. 어리석은 자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즉, 지혜가 없기 때문에 어떤 위기의 순간이 와도 그것을 헤쳐 나갈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고대의 ‘성문’은 재판의 장소였고, 그 성문에서 입을 여는 사람은 당연히 지혜로운 관원과 재판장인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지혜라는 보석을 사모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백성들 앞에 높아지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겉모양에 치중하며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내면에도 겉모양의 값비싼 치장물들처럼 고귀한 인품과 지혜가 있느냐? 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지혜라는 보석을 사모함으로, 주님의 지혜가 우리의 삶에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복된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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