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자리를 지켜라”

<창세기 17:9~14, 23~27> 

정치인들의 평생의 꿈이고, 최종적인 꿈은 아마도 국가의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평생을 준비하고, 노력해서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정치인들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정치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우리 보통 국민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다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어떤 분은 대통령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그가 5년간의 임기를 잘 마치고 영광스럽게 퇴임하고 퇴임 후에도 국민 대다수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라면 그는 분명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18대 대통령은 탄핵되어 대통령직을 다 마치지 못해서 파면당하고 지금 교도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가장 영광스러운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 오른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을 잘 지켜가는 것, 그 자리를 끝까지 잘 지키는 사람이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인 겁니다.

창세기 17:1~8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축복을 언약하시고 있습니다.

–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2절)
–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4절)
–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라(6절)
–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나오리라(6절)
– 영원히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7절)
– 가나안 온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리라(8절)

이 엄청난 축복을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면서, 이 축복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의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을 제시하시고 있는데, 그것이 9절과 10절입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할례’라는 것은 사내아이들이 받는 포경수술과 비슷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것을 그들에게 요구하셨을까요? 보통 중동지방이나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들에서 이런 할례 의식이 있는데, 주로 ‘성인식’을 치를 때 할례를 했습니다. 어린아이에서 이제 성인이 된다는 의미가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할례는 ‘거듭남(Born-again)’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던 사람들이 이제 옛 사람은 죽고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그들은 새로운 신분(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을 얻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할례를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통해서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9절)”고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깐 할례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성취될 수 있다는 겁니다.

때문에 이 할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는데,
– 나와 너희 사이에 언약의 표징이니라(11절)
– 모든 남자(종들 포함)는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으라(12절)
–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13절)
– 할례를 받지 않은 남자는 내 언약을 배반했다(14절)

할례를 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질 정도로 할례를 중요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후로도 할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방인들을 “할례 없는 자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신약에는 죄 씻음의 ‘세례’로서 대체하게 되었는데, 할례든 세례든 중요한 것은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롬2: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변화, 가치의 변화, 생각의 변화, 믿음의 변화, 태도의 변화… 같은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할례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9절에서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그리고 10절에서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는 말씀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복 받는 비결을 알고 있을 때, 자녀들에게 그것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주지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복 주시기를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할례를 했기 때문에 그 복을 받는 게 아니라, 그 언약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할례를 하는 사람들이 복을 받는다는 겁니다. 율법적으로 내가 이것을 했으니깐 그 보상으로 복을 받는 게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겨우 할례를 했을 뿐인데 그 보상치고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너무 어마어마한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으면, 말씀을 신뢰하면, 그 축복의 자리를 지키는 겁니다. 우리가 그 자리만 잘 지키고 있어도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 성취되어 갈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1절에서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우리가 믿음의 자리를 떠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등을 돌린 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사탄을 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큰 축복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큰 축복의 언약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자리를 지킬 때 그 축복이 내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그 축복을 지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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