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9:13~29>
신앙생활을 하시다 보면 ‘중보기도’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됩니다. ‘중보(中保)’의 사전적인 의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고 교제를 유지하도록 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자적인 의미는 ‘중간에서 돕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궁극적인 중보 기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5절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하셨고, 로마서 8:34절에서도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요한복음 14:14절을 통해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보자이신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중보기도의 사명을 훌륭히 감당했던 사람 중에 하나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모세였습니다. 오늘 본문 13절과 14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
하나님께서 목이 곧은 교만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14절에서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모세 한 사람을 통해서 그들보다 더 강대한 나라를 만드시겠다는 겁니다.
신명기 9:8절 이하에서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얼마나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출애굽 후 그들이 시내산에 머물러 있었을 때였습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위해 호렙산 위로 올라가 40일 동안 금식했습니다. 모세의 태도와는 달리 산 아래 있었던 아론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은 금을 모아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축복의 언약을 모세에게 전해주고 계셨었는데, 그 은혜를 거역하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하게 여기는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던 겁니다.
19절과 20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말을 들으셨고,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던 아론을 위해서도 기도함으로 그의 생명도 보존했던 겁니다.
2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이 고생스럽다고 다베라에서 불평했고(민11:1~3), 맛사에서는 물이 없다고 불평했고(출17:1~7), 기브롯 하다아와에서는 만나 때문에 불평했습니다(민11:31~34). 또 가데스 바네아에서도 말씀을 믿지 않고 명령을 거역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24절을 보시면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백성들의 중보자로 기도했던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진노하심에서 돌이키시는 장면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속에 종종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격노하시고 진노하셨습니다. 당장이라도 은혜를 저버리고, 목이 곧아 하나님을 불신하는 그들을 모두 멸하고 심판하셨어도 벌써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살라달라고, 기회를 다시 한 번 달라고 중보 기도했던 것입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때마다 진노를 거두시고,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보의 은혜’인 것입니다. 악하고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변한 게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문제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중보기도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시게 했습니다. 당장 심판 받아도 마땅한데, 그 심판의 시계가 뒤로 미뤄졌던 것입니다. 또 기다려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님들은 ‘3분 기도하면 더 이상 기도할 게 없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보의 은혜를 믿는다면 이제 기도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녀들, 가족들 그리고 교회의 교우들, 친구들, 친척들, 직장의 동료들,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 등등 기도할 제목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보의 은혜, 중보기도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믿음도 없고 부족할 지라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실 것입니다.
에베소서 6:18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우리의 중보는 오늘 또 다른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게 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기도가 머무는 곳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곳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