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2:15~25>
‘팔복(八福)’으로 유명한 마태복음 5: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사람들은 많이 가진 자, 풍성하고 윤택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역설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오히려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자적으로 보자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겸손하고 낮아진 마음,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에 대해 늘 굶주린 영적이고 내면적인 가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적이고 내면적인 가난이 풍요함과 윤택함 속에서는 잘 생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19:23절, 24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부자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씀이 아니라 부자로서 가난한 마음과 심령을 소유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뭔가를 좀 갖고 있다고 생각되면 얼마나 교만해 지는지 모릅니다. 자기가 제일 힘이 있고, 자기 생각이 옳고, 자기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겁니다. 뭔가 좀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깐 그 마음에 낮아짐과 겸손함이 없는 겁니다. 언제나 내가 주는 입장이지,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법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도 굳이 손을 내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지금 고난과 시련 속에 있는 사람이 위기가 아니라, 모든 일들이 잘 되고 형통하고 윤택하고 풍요로운 상황 속에 있는 사람이 영적으로 보자면 진짜 큰 위기 앞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윤택함을 주셨다면 그 때 하나님 앞에 더 낮아지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주셨던 모든 것을 훅~하고 불어 버리시면 지금 내 것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시면,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이 구절에서 ‘여수룬(Jeshurun)’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구약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는 ‘사랑 받는 자’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고, 델리취(Delitzsch)라는 신학자는 이 말의 어원을 ‘야솨르(yashar : 옳음, 곧음)’로 보고 ‘의로운 자’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수룬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의로운 자가 된 이스라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Pulpit Commentary). 그러니깐 여수룬이란 이름은 만민과 열방 중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명예롭고 존귀한 이스라엘의 별칭이었던 것입니다.
수백 년에 걸쳐 애굽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애굽의 한 소수부족으로 역사 속에서 애굽민들에게 흡수되어 그렇게 그냥 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여수룬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배에 기름이 끼고 살이 찌니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16절과 17절을 보시면,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여기서 하나님을 의인화해서 인간을 향해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수룬이 다른 신들, 새로운 신들에게 제사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뭔가 새로운 신들을 찾고 있고, 그런 신들을 스스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새로운 신들이 생기면 인간은 자신을 낳은 아버지 하나님을 버리기도 하는 겁니다. 부부사이에 다른 이성이 끼게 되면 그 질투와 분노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진노, 질투와 같은 표현들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16)
–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19)
–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21)
–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21)
– 시기가 나게 하며(21)
– 분노를 일으키리로다(21)
–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22)
차라리 여전히 시련과 고난 속에 있었다면 그들은 가난한 심령으로 늘 하나님을 찾는 순결한 신부의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풍요함과 윤택함이 좋은 것이지만, 그럴 때 더욱 영적으로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더 낮아짐과 겸손함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만함과 거만함과 사치와 허영심에 들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찬양 중에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
이 모든 것이 은혜라네
…
내가 가진 것들 중에
받지 않은 것 하나도 없으니
오직 주님의 은혜라
…
모든 것이 주님의 선물
(안정환 작사,작곡)
내 삶에 윤택함이 있을 때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들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