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5:15~27>
Breakthrough 40 특별저녁기도회(5)
지난 월요일 아침에 유력 정치인 한분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였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이 분은 평생 동안 노동자의 편에 서서 노동자를 대변한 분으로 평가되고, 진보정치의 상징과 같은 분으로도 거론되는 진보진영의 정당 원내대표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드루킹’이라는 댓글 조작 수사가 진행 중에 있는데, 그것과 관련해서 불법정치자금 수천만 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유서에서는 금품을 받은 것을 인정하는 내용과 가족에게, 당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써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국회에서 영결식이 있었는데, 정치계와 노동계에서는 진보진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분의 타계를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분을 잘 모르지만, 수천만 원이 아니라 수십억, 수백억 그 이상의 부정한 물질을 받고서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어쩌면 정치인들 중에 그나마 순수한 분이실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각 개인의 판단이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분이 노동계와 진보정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분 중에 한 분이었다면 이런 분이 우리나라에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그 만큼 대단한 분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훌륭한 분이 4천만 원이라는 돈 때문에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4천만 원 갖고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저것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돈이 이 분이 평생을 바친 정치적 신념과 꿈과 공로와 그 분의 가정 그리고 그 분의 생명과 바꿀 만한 것이었습니까? 4천만 원이 큰돈일 수 있지만, 그 분이 평생을 걸쳐 쌓아온 그 가치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하찮은 것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유력 정치인 한 분이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 평생의 꿈을 다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디모데전서 6:9절에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물질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과 올무 그리고 여러 가지 해로운 욕심에 빠지게 만든다는 겁니다. 그 결국은 ‘파멸’과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세부에서도 돈 가지고 남 사기치고 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잘 사는 거 보셨습니까? 그들의 끝이 좋던가요? 그 끝은 파멸과 멸망에 이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6:10절에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분명 돈이 필요 없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돈을 벌기도 하고, 성공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것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죄가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것으로 인해서 수많은 근심들이 그를 찌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람의 군대 사령관이었던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면서 나병이 완전히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너무 고마운 나머지 나아만은 다시 엘리사 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준비해 온 예물(은 340kg, 금 90kg, 의복 열 벌)을 엘리사에게 전달하려 합니다.
그런데 16절에서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의 예물을 거절합니다. 나아만은 또 강권해서 엘리사에게 주려 했지만, 엘리사는 끝까지 그 예물을 거절합니다. 왜 엘리사가 그 예물을 거절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활동하던 많은 거짓 선지자들 중에 물질적 탐심으로 잘못된 예언을 하던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22장 그러니깐 엘리사의 스승인 엘리야가 활동하던 사역 말기 즈음에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왕에게 거짓으로 예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중에 오직 미가야 선지자 하나만 진정한 예언을 하다가 도리어 고난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의 예물을 받지 않았던 이유로 추측할 수 있는 것 하나가 있다면, 북이스라엘의 타락한 영적 분위기가 그 이유였을 것입니다. 많은 선지자들, 제사장들이 세속적인 탐욕에 빠져 있었던 겁니다.
엘리사는 그 예물과 함께 나아만 장군을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20절 보세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엘리사의 일을 가장 가까이에서 돕던 사환 게하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우리 스승님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기근으로 우리 선지생도들도 모두 굶고 당장 먹을 거 때문에 매일 매일 걱정하며 지내고 있는데, 나아만 장군이 주는 그 돈이면 당장 이 기근 중에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그걸 안 받으셨지? 안되겠다. 가서 내 몫이라도 챙겨와야겠다’
그리고 나아만의 뒤를 쫓아 달려갔습니다.
22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그리고 거짓말로 나아만에게 말합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신학생 중에 어려운 두 청년이 왔는데,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약 24kg)와 옷 두 벌만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고 주십시오’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탐심은 이렇게 또 다른 죄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다른 죄를 지을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죄의 삯은 사망을 낳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병이 치료된 나아만 장군에게 게하시가 거짓으로 말한 엘리사의 부탁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은은 두 달란트를 주고, 옷도 두 벌을 챙겨서 자기의 부하 두 명을 시켜 엘리사에게 갖다 주라고까지 합니다.
그리고 게하시는 짐을 든 나아만의 부하 두 명과 함께 자기 집까지 와서 그 물건들을 내려놓게 하고 그 부하들은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25절입니다.
“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엘리사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엘리사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게하시의 탐심과 거짓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게하시에게 “게하시야 네가 지금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게하시는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또 거짓을 말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죄가 죄를 낳고 있는 장면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겁니다.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거짓 위에 또 거짓을 더하고 있는 겁니다. 아예 죄를 짓지 않았다면 거짓을 말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1:14절, 15절에 보시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모든 사람들이 시험에 빠지는 이유는 욕심 즉 탐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험’은 ‘유혹(Temptation)’이란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 욕심 때문에 계속해서 시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 욕심이 잉태되면 죄를 낳고 그 죄가 자라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누가복음 12:15절에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종류의 탐심이든 그것이 물질적인 탐심이든, 성적인 정욕이든, 높아지고자 하는 명예욕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야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탐심으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서론에서 유력 정치인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드렸는데, 그 분이 노동계와 진보정치계에서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큰돈이라고 할 수도 없는 4천만 원 때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분의 생명을 4천만 원하고 바꿀 만큼 그렇게 그 분의 생명이 가치가 없는 것이겠습니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런 일들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가정 그리고 우리의 기업… 등등 우리의 인생을 파괴하고 박살내려고 하고 있는 모든 탐심을 물리치십시오. 겨우 그런 것들 때문에 여러분의 인생을 망치기에는 여러분의 인생이 너무 아까운 겁니다.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 정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고, 정말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탐심을 물리치지 못해서 끝장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경계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게하시라는 사람은 과거 엘리야를 따랐던 엘리사와 같은 위치에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를 바짝 붙좇던 엘리사가 민족을 위기에서 건져내는 위대한 선지자의 영적 계보를 이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게하시도 제 2의 엘리사가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엘리사가 죽을 때 어쩌면 게하시가 그 계보를 이어야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엘리사와 게하시의 차이가 뭡니까? 게하시가 위대한 선지자의 영적 계보를 잊지 못하고 사환의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뭐였겠습니까?
물질의 한계를 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계에 갇혀 있는 사람은 그 한계를 절대 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정신과 마음 그리고 그 영혼이 이미 그 한계를 초월해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물질에 갇혀 있으면 그 사람은 절대 물질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많은 인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고 관찰해 보니깐 늘 물질 때문에 쩔쩔매고 그 작은 물질하나 때문에 벌벌 떠는 사람은 앞으로도 절대 큰 물질을 만져 볼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그는 물질에 갇혀있거나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그릇이 크구나…’라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그 작은 물질 하나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는 겁니다. 물질 같은 것이 그 사람을 흔들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목을 매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걸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연히 흔들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런 가치가 자꾸 변화되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겁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벌었던 록펠러는 자기 재산의 90%를 사회에 기부했고, 두 번째 부자인 강철 왕 카네기 역시 ‘부자로 천국에 가는 것은 부끄럽다’는 말을 하며 재산 대부분을 기부했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자수성가형 부자들의 경우 재산 대부분을 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천국에 돈 가지고 가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재능을 통해서 열심히 돈도 벌고 성공도 해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잘 사용하다가 우리가 천국에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물질에 매이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부자가 되고 싶거든 돈을 따르지 마시고, 돈이 여러분을 따르도록 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돈의 종이 되면 안 되고, 돈이 우리의 종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만드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세상과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하셨지, 그 만물(돈을 포함하여)의 종이 되라고 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물질 위에 있어야 물질의 한계를 돌파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물질 아래에 있으면 여러분은 결코 물질을 여러분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알리바바를 창업한 지 15년 만에 중국 최고의 부자, 아시아 최고의 부자가 된 마윈(Jack Ma, 1964~)이 한 말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 가 아니라 돈이 많아서 이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명언이라 생각됩니다. 또 한 가지.
“언제나 변화를 수용하고, 돈을 따라가지 말라.”
물질의 한계에 갇혀 있는 사람 혹은 돈을 따라가는 사람은 그 순간 돈을 버는 것 같기도 하고, 잠시 성공 비슷한 거를 한 거 같겠지만 성경을 통해 볼 때 그것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 뿐입니다. 여러분은 물질보다 못한 존재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물질은 다만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것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물질에 관한 성경적 가치를 갖고, 그 한계를 돌파해 나가는 40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