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8:1~6>
Breakthrough 40 특별저녁기도회(8)
영어단어 중에 ‘crisis’ 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기(危機)’라는 뜻인데, ‘위태한 위(危)’자에 ‘틀 기(機)’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것을 ‘위험(危險 : danger)’과 ‘기회(機會 : opportunity)’라는 두 가지 얼굴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정말 한자로도 그 상황이 위태하고 위험스런 일이 될 수도 있고, 그 위기가 그 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기회로 방향을 틀 수도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영어는 라틴어에서 기원하고 있는데, 라틴어에서 ‘위기’는 ‘krisis’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krisis 의 어원이 ‘krinein : decide(결정하다), judge(판단하다)’라는 뜻에서 왔다는 겁니다.
그러니깐 위기라는 것이 왔을 때 그가 어떤 판단 하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진짜 위험한 위기가 될 수도 있고,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의 crisis란 말은 ‘위기’라는 뜻도 있지만, ‘갈림길’이란 뜻도 있습니다. 내게 화가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미국 세일즈맨 계의 신화와 같은 사람인 ‘시드니 프리드먼(Sydney Friedman)’이란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도 모두 다 결점이 있다. 단, 그들은 결점을 유리하게 이용하는 길을 알았을 뿐이다.”
예수를 믿던, 믿지 않건 우리의 인생에도 분명 어떤 위기들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준비하든 또는 지금 기업을 경영을 하든, 저처럼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에게도 위기는 올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보기에는 분명 나의 위기일 수 있지만, 사실 그 위기의 순간을 어떻게 결정하고 판단하고 방향을 트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진짜 위험한 위기일수도 있지만, 내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내게 어떤 위기가 왔을 때, 그 상황을 불평하고, 원망하고, 남 탓하고, 불안함과 염려와 절망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을 내게 유리하게 잘만 이용하면 그 위기는 내게 도리어 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에게 필요한 한 가지 믿음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위기의 때에 우리에게 피할 길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 나는 그렇게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 나는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 나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 나는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나는 부활의 믿음으로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절 말씀을 보시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 능력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에 허덕이는데 ‘어떻게 하나 보자…’하면서 가만히 팔짱끼고 있을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당장 달려가서 붙들어 주고,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시험이 올 수 있지만, 위기가 올 수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내가 감당할 만큼만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감당하지 못할 시험 같으면 피할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명기 32:11절에서는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독수리가 높은 절벽 위에 둥지를 짓고, 5개월간 새끼를 먹여 키웁니다. 그리고 새끼 독수리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게 되는데, 2m에 이르는 큰 날개를 펄럭이면서 새끼를 둥지 밖으로 떨어뜨리는 겁니다. 그러면 새끼는 한 번도 날아본 적이 없었던 날개를 퍼덕거리며 엄마처럼, 아빠처럼 날아보려고 애써봅니다. 하지만 아직 날개에 힘이 없는 새끼독수리는 이내 힘이 빠져서 절벽 아래로 사정없이 떨어지는 겁니다. 그 때 어미 독수리가 커다란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아 업어서 다시 둥지 위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있는 시련을 통해서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강하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앞에 어떤 시련이 온다고 해도 너무 겁먹지 마십시오. 지금 나는 더 강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 내가 아직 감당하지 못할 시험의 경우는 피할 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하니”
여기에 등장하는 여인은 열왕기하 4장에 등장하는 수넴 여인을 말합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역을 여러 가지 면으로 도왔던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엘리사가 먼 거리를 오고 가는 중에 그 마을에 들리기라도 하면 꼭 식사를 대접했고, 숙소가 마땅치 않았을 때는 언제든지 쉬고 묵을 수 있도록 방을 하나 만들어 주기도 했었습니다. 그녀는 여호와를 존중히 여기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된 엘리사는 그 여인이 불임으로 아들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위하여 축복해 주었고, 그녀는 1년 뒤 아들을 품에 안게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일사병으로 갑자기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그 죽은 아들이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갖고 엘리사를 찾아갔고, 엘리사는 그 아들을 다시 살렸던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엘리사가 그 여인에게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이 땅에 7년간 기근을 주실 것이다.’라는 예언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경고를 들었을 때, 그것을 믿는 사람이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전혀 믿지 않기도 합니다. 내 삶의 터전을 떠나 다른 곳에서 7년을 보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때는 기근의 때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의 경고가 있지만 그냥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어제도 말씀 드렸지만, 믿는다면 액션이 따르게 되어 있는 겁니다. 믿기 때문에 이 여인은 엘리사의 말대로 서쪽의 지중해 해안 쪽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7년간의 세월 동안 피해 있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겁니다.
위기가 왔지만, 그 위기에 어떤 판단과 어떤 결정에 따라 그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신명기 30:15절에서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축복된 삶을 살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이미 성경을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그 복된 말씀을 떠나서 살게 될 때는 저주와 고난의 삶이 있을 것이라고도 이미 말씀해 주셨습니다. ‘생명과 복’을 우리 앞에 두시고, ‘사망과 화’ 역시 우리 앞에 두셨는데, 우리가 어떤 판단과 결정에 따라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여인은 엘리사가 7년간 다른 곳에 가서 살라고 말씀하자, 더 이상 고민도 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 말씀 따라 움직이는 겁니다. 믿음은 이런 겁니다. 믿으니깐 고민도 하지 않고, 계산도 하지 않고, 상황과 조건도 따지지 않고 바로 순종하는 겁니다.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그 위기를 벗어나고, 그 위기가 내 인생의 새로운 기회가 되게 하는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인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여러분의 경험과 지식과 판단으로 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춰보시길 바랍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감동에 따라 결정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든 기도하고 결정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결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에녹이라는 특별한 인물이 나옵니다. 당시는 꽤 오랜 세월 동안 장수하던 시대였었는데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 라는 아들을 낳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는 기록이 나와 있고,
창세기 5:24절을 보시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의 365세 때 하나님께서 하늘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래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간 사람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기록은 이것이 전부고, 성경에서 에녹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유다서에서 에녹은 장차 올 큰 재앙에 대해서 예언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고, 정말 에녹이 낳은 아들인 므두셀라가 죽던 그 해에 노아의 홍수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깐 에녹은 그 엄청난 재난을 환상으로, 계시로 미리 알게 된 이후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57:1절(개역한글)에서
“의인이 죽을 찌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 찌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중반절에서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을 것”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화액(禍厄)’이란 말은 ‘재앙과 곤란’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보호하시되, 재앙과 곤란의 날들이 오기 전에 그들의 피할 길을 내시는 것을 말합니다. 에녹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와 그의 아들이 죽자 세계 대재앙이었던 노아의 홍수가 세상을 덮었던 것입니다. 에녹을 화액 전에 하늘로 취하여 가셨던 것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그 여러 가지 위기 앞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 중에 피할 길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위기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끝나면 어떻게 하지? 여기서 망하고, 실패하고, 모든 것을 다 잃으면 어떻게 하지?…’하는 마음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큰 시련과 시험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시련이 온다 할지라도 반드시 피할 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의 그 신실한 믿음의 여인에게도 7년의 기근이 왔지만, 주님은 엘리사를 통해 그녀가 피할 길과 살 길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따른 그 여인은 기근 중에 그 가족과 함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자성어 중에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이 있습니다. ‘화가 변하여 복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전화위복과 같은 의미의 영어 문장이 하나 있는데,
“It was a blessing in disguise.”
라는 겁니다. 여기 ‘disguise’라는 단어는 ‘변장, 위장’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그것은 변장된 축복이었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위기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도리어 내게 위장하고 찾아온 축복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어떤 위기 때문에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됩니다. 또한 그 위기 속에서도 피할 길을 반드시 내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을 것을 확신하면서 주님과 함께 담대히 그 상황을 맞서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