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열왕기하 13:1~13> 
Breakthrough 40, 특별저녁기도회(15)

요즘 젊은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코미디언 ‘故 이주일(1960~2002)’씨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겁니다. 오랜 무명생활을 지나 1980년을 전후로 유명해 지신 분이셨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군부를 장악한 육군 대장 출신이 체육관에서 간접선거 치르고 스스로 대통령이 되고… 그렇게 국내 정세가 불안정하고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런 분이 우연히 TV에 출연하시게 되었는데, TV출연 두 번 한 그 2주일 만에 온 국민들을 웃게 만들어준 코미디언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이주일로 지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코미디의 황제’란 칭호를 달고 다니신 분이고, 당시 연예인 납세1위, 소득1위를 수년간 유지했고, TV만 틀면 모든 쇼프로와 TV광고 등에 이 분이 나왔습니다. 그런 인기를 힘입어 1992년에는 14대 국회의원에까지 당선된 분이셨습니다.

국회의원 임기 4년을 마치고, 다시 코미디 계로 복귀하셨었는데, 그 후 몇 년 뒤부터 안보이시는 겁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폐암에 걸려 투병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곤 이 분이 금연을 위한 TV공익광고에 자원해서 출연하셨는데, 거기서 했던 말이 국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던 거 같습니다.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 저도 하루 두 갑 씩 피웠습니다. 이젠 정말 후회됩니다. 1년 전에만 끊었어도…(흡연은 가정을 파괴합니다. 국민 여러분 담배 끊어야 합니다)”

라는 말을 남긴 채 국민들의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그 해 8월 숨졌습니다. 2001년 우리 성인남성의 60.9%가 흡연을 했었는데, 이주일 씨의 공익광고와 폐암사망 사건 이후 2005년에는 51.6%로 남성 흡연율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어떤 것들은 조금 뒤로 미뤄도 되고, 조금 나중에 해도 되는 게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려서 손을 쓸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해서 길이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으시지 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하신 하늘의 아버지시지만, 그 하나님은 심판자이시기도 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시간이 다 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1. 내가 만든 신(神)에 속지 말라

부패하고 악한 아합 왕가를 심판하며 혁명으로 왕권을 차지한 예후가 죽고, 그 아들 여호아하스가 북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2절을 보시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 역시도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습니다. 그의 아버지 예후가 이스라엘 땅에서 바알숭배를 제거하고, 종교적인 개혁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 땅에 세운 황금송아지 숭배를 따랐던 겁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께 예배하기 위해 남유다의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여로보암의 정치적 수단이었습니다. 그것을 예후가 따르고, 그 죄를 예후의 아들인 여호아하스까지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황금송아지가 여호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백성들에게 ‘굳이 예루살렘까지 갈 필요 없다. 이 황금 송아지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구원해 낸 여호와시다. 이제 여기서 예배하면 된다.’라고 말했던 겁니다.

이런 게 ‘내가 만든 신’ 혹은 ‘인간이 만든 신’이란 겁니다.

여기서 왜 인간이 신을 만드는 지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리고, 남유다는 다윗의 후손이 왕위에 올라 왕권의 어떤 정통성이 있었고, 여호와께서 계신 예루살렘 성전도 남쪽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다윗의 후손도 아니었고, 북이스라엘에는 성전도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자꾸 남 유다 예루살렘으로 여호와께 예배하러 가는 겁니다. 그래서 여로보암 왕은 단과 벧엘에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여호와’라고 숭배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신(우상)을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로보암 처럼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 정치적인 안정을 위해 신을 만들기도 하고, 돈(물질)이 필요한 사람은 돈을 공급해 주는 신을 만들기도 하고, 자신의 어떤 욕구와 정욕을 만족시킬 신을 만들기도 하고, 마음의 평안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런 신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처음 그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길 때, 그는 그 황금송아지가 하나님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자신의 왕권 안정을 위해서는 그 신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래서 그가 그런 신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우상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헛된 것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공상허언증(pathological lying)’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보통 ‘허언증’이라 말하는데, 이 말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습관’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계속 거짓말을 하다 보니깐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병적으로 바뀌게 되고, 자기가 말하는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이 안 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분명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한 그 거짓말을 그대로 믿는 겁니다.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도 전혀 없고, 아예 그 거짓말이 진실이라고 믿는 병입니다.

이것도 인간의 필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위기의 순간에 거짓말로 자기를 보호하려고 하다 보니깐 재밌거든요. 할 만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거짓말이 습관이 되고, 나중에는 거짓말이 병적으로 변해서 자기가 한 그 거짓말을 그냥 100% 믿는 겁니다. 이걸 허언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로보암 마음속에도 분명 처음에는 그 우상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그걸 만들어 놓고, 날마다 거기에 목을 매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그 사람의 우상이 된 것입니다. 백성들도 그 우상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자신의 필요를 구하다 보니깐 그것이 그들의 신이 된 것입니다.

오랜 세월 후에 왕위에 오른 예후가 바알 우상을 모두 불태우고, 제단을 허물며 종교개혁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이 단과 벧엘에 있는 금송아지 우상은 제거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감히 그것까지는 건드리지 못할 만큼 그들에게는 견고한 우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상은 사람이 만든 신이었고, 그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속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3절, 4절(上)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노하신 것입니다. 우상 숭배라는 것은 자기가 만든 신이었고, 우상 숭배의 목적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삶의 변화, 성품의 변화 그리고 죄를 끊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포커스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기준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삶의 변화가 시작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기 필요만 채워지면 되기 때문에 삶의 변화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도덕성은 어떻겠습니까? 도덕성이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간혹 기독교인들 중에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는 모습도 보게 되는데, 그것은 그들이 기독교를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우상으로 생각하며 교회생활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기복신앙).

때문에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우상 숭배에 빠져있었고, 그들은 범죄하고 타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20:4절 십계명 중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는 출애굽기 20:5절에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자기가 만든 신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지금이라도 돌이키면 구원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때문에 지금이라도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시면,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벌써 오랜 시간 동안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우상 숭배에 빠져 범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그들을 징계하셨던 것입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고, 그 아람으로 인해서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은 곤핍해 졌던 것입니다.

고통 중에 북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시련과 고난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련은 우리의 믿음이 성장할 기회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그들에게 구원자를 보내셔서 그들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 구원자가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주변의 다른 나라가 아람을 공격해서 아람이 급히 북이스라엘에서 철수했었을 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악한 우상 숭배자였던 여호아하스 왕이 하나님께 간구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의 곤란 중에 그들을 건져주셨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큰 어려움이 왔고, 하나님께서 나를 징계하신 것처럼 큰 고난이 왔다고 할지라도 아직 우리가 살아있다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돌이켜 회개하고 부르짖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악한 북이스라엘도, 여호아하스 왕도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하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곳에 우리가 이렇게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오래토록 참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참지는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더 늦기 전에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죄가 계속 쌓이고 쌓여 주님께서 그 진노의 칼을 대실 하나님의 시간표가 다 되어 가고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주님께로 돌아가면 은혜와 자비가 크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설교 서론에서 말씀 드렸던 한 코미디언의 ‘이젠 정말 후회됩니다. 1년 전에만 끊었어도…’라고 고백했던 후회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늦기 전에…”
1. 내가 만든 신(神)에 속지 말라
2. 지금이라도 돌이키면 구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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