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잘된다 싶을 때…”

<열왕기하 20:12~21> 
Breakthrough 40 특별저녁기도회(24)

지금 인도네시아 팔람방(Jakarta Palembang)에서 2018 아시안 게임이 한창 진행 중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금메달 순위 종합 2위를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그 예상 금메달 중에 하나가 남자 축구 경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지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이번 대회에서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2연패를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승후보 0순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와의 경기 후 언론에서 “한국은 가시밭, 북한은 꽃 길, 베트남은 아스팔트”라는 기사가 떴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표팀이 바레인과의 첫 경기에는 6:0으로 대승을 거두면서 순조롭게 시작했는데,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조별리그 두 번째 팀인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서 1:2로 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 세계적인 스트라이커인 손흥민선수도, 골키퍼 조현우 선수도 선발에서 제외했었던 겁니다. 상대를 얕보고 방심했던 겁니다. 그래서 16강 탈락위기에 있었고, 다행히 다음 경기를 승리하고 운 좋게 16강에 진출했습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와의 충격적인 패배 때문에 16강에서 붙어야 할 팀이 난적인 이란 팀이고, 8강전, 4강전에서 맞붙게 될 팀들이 우리나라로서는 모두 까다로운 상대들이었던 겁니다. 이에 비해 북한은 꽃길을 걷는 것과 같이 상대들이 좋고, 베트남 같은 경우는 조별리그 3전 전승으로 16강에 진출한 겁니다.

손흥민 선수가 와일드카드로 대표팀에 합류하던 8월13일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결승전까지 가는 길은 긴 여정이다.) 매 경기가 결승전이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그러면서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가 독일을 꺾었듯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도 다른 아시아 팀들에 질수 있다. …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경기를 펼치는 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손흥민 선수가 아시안게임 바로 직전에 기자에게 말했던 그 일이 벌어진 겁니다. 우리 선수들도 방심하고, 감독도 방심했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 대표팀 감독이 말레이시아 전 이후에 “내 판단착오였다.”라고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습니다.

20세기 기독교 최고의 변증가인 ‘C.S.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가 이런 말을 합니다.

“교만은 영적인 암이다! 만족감, 사랑, 상식을 좀 먹는 것이다.”

암이 몸 속에 자라고 있는 지도 모르고 겉모습으로는 멀쩡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만한 것은 바로 그 교만이라는 암이 우리 안에서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일들이 어려움 없이 다 잘되어가고 있는 때가 진짜 위기인 것입니다. 뭔가 잘된다 싶을 때 내 속에 교만이라는 암 덩어리가 자리를 잡고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고 계획했던 대로 일이 잘 진행되어 가고, 형통할 때, 여러분이 높아지고, 많은 재물이 손에 들어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여러 가지 영광과 칭찬을 들을 때…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가 교만해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 그리고 사람 앞에 겸손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에게 많은 은혜들을 베푸셨고, 큰 부와 영광까지 더해 주셨습니다.

역대하 32:27~30절을 보시면,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히스기야 왕의 부와 영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는 구절들입니다. 또한 그의 놀라운 업적 중에 하나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였고,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이 있었던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외침이 있었을 때 예루살렘은 높은 고지대에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비교적 안전한 성이었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적들이 성으로 들어올 수 없게 성문을 닫아 버리면 물도 얻을 수 없었던 겁니다. 예루살렘성 사람들은 물을 두 군데서 얻었는데, 하나는 실로암이라는 저수지였고, 하나는 기혼이라는 샘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저수지와 샘이 모두 성 밖에 있었다는 겁니다. 때문에 앗수르든 어디든 외적들이 그 물을 장악해 버리면, 안전한 성 안에 있어도 오래 못 버티는 겁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533m에 이르는 지하터널수로를 뚫은 겁니다. 이 물은 실로암저수지에서부터 기혼샘까지 연결되어서 예루살렘 성 사람들이 전쟁 중에도 안전하게 물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던 대단한 업적이었던 것입니다.

30절의 하반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히스기야는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2절 말씀을 보시면,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여기서 ‘병 들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과거 완료형’으로서 이미 병이 나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었다가 치유된 소식을 듣고 바베론 왕이 축하 사절단을 보내 편지와 예물을 전했던 겁니다.

당시 중동의 패권은 앗수르가 쥐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B.C. 700년 경 쯤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초기 앗수르 제국이 차지했던 영토보다 후기 앗수르의 최전성기 때의 앗수르는 두 배 이상 영토가 넓어집니다. 북이스라엘도 이미 정복당했고, 남유다 역시 예루살렘을 제외한 46개 성읍이 점령당하기도 했었습니다.

바벨론 역시 그 즈음에 앗수르의 손에 들어갔다가 다시 잠시 독립했다가를 반복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바벨론은 앗수르에 비해 작은 나라였었습니다. 때문에 바벨론 입장에서는 지금 앗수르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들과 동맹을 맺어 반앗수르 전선을 형성해야 했습니다.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병에서 나았다는 얘기를 듣고 예물과 편지와 축하사절단을 보낸 것은 그런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겁니다.

히스기야 왕 입장에서는 이 축하 사절단이 반가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였고, 때문에 당시 가장 발전된 문명의 중심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앗수르의 군사력에 밀려있지만, 전통적인 중동지역의 강자는 바벨론이었던 겁니다. 그런 나라의 왕이 예물과 친서와 함께 축하 사절단을 보냈으니, 히스기야 왕이 몹시 흥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13절을 보시면,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히스기야가 왜 자기의 보물고와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들을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다 보여줬을까요? 그가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들 중에서 보여주지 않은 게 없을 정도였다고 했으니 왜 히스기야가 그랬을까요?

이것을 역대하 32:25절에서는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그 훌륭한 왕이었던 히스기야의 마음에 교만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죽음의 병으로 큰 시련을 겪을 때, 그는 철저히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시고, 그에게 엄청난 부와 영광과 존귀를 아울러 주셨습니다. 또한 당시 중동의 패권을 장악하고 남유다까지 침략했던 앗수르 왕 산헤립과 그의 군대 185,000명의 군사가 여호와의 천사의 침으로 인해 산헤립이 수치를 안고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 주변에 히스기야의 명성이 퍼졌습니다. 엄청난 부와 영광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교만이라는 암 덩어리가 히스기야 안에 생긴 겁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어느 순간 그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보답하는 삶을 살지 않고, 어느 순간 자기가 그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서 자기가 다 영광을 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윌리엄 젤킨이란 사람이
“강력한 은혜를 소유한 그리스도인만이 칭찬이라는 강력한 수에 영혼이 중독되지 않고 견딜 수 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마귀가 그리스도인들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뭔지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계속 칭찬하는 겁니다. 칭찬이 절대 나쁜 게 아닙니다. 많이 할수록 좋은 겁니다. 그런데 그 칭찬 속에 교만이란 것이 싹튼다면 마귀의 전략은 대 성공을 거둔 겁니다. 그 때부터는 보이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신앙생활 오랜 한 집사님도 안 보이고, 권사님도 안 보이고, 목사님도 안 보이고… 어느 순간부터 자기 생각만 옳고, 자기 판단이 옳고, 자기가 항상 먼저가 되는 겁니다.

어제 일본의 파나소닉 그룹의 창업자 얘기를 잠시 드렸지만, 그 분은 소학교를 중퇴한 분이었고, 그래서 모든 사람을 자신의 스승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회록’을 쓴 ‘성 어거스틴(St. Aurelius Augustinus, 354~430)’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만으로 천사는 마귀로 전락하고, 겸손으로 사람은 천사로 승격한다”

그렇게 훌륭했던 히스기야 왕이었지만 교만 때문에 무너진 겁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그 모든 재물과 영광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될 것과 히스기야 왕의 후손 중에 바벨론의 환관(신하)가 될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게 됩니다.

역대하 32:26절에서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다행히 히스기야와 그 백성들이 교만했던 모습을 뉘우치자 하나님께서는 그 진노가 히스기야 생전에 임하지 않게 하셨다는 겁니다.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뭔가 잘된다 싶을 때 교만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이 내가 잘나서도, 내가 능력이 있어서도 아닌,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그것을 고백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그 때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생명은 원래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런데 생명도 연장시켜 주시고, 엄청난 부와 영광까지 주셨는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는데 그걸 잊었던 겁니다.

또 내가 겸손하려 애쓰지만 계속 겸손해야 합니다. 더 겸손해야 합니다. 저와 함께 우리 성도님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날마다 고백하고, 날마다 더 겸손으로 허리를 숙이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은혜를 보답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 더 겸손하겠습니다.
– 계속 겸손하겠습니다.

Tags: No tags

Add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