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22~33>
저는 어린 시절을 제 의지와 관계없이 불우한 가정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고아아닌 고아처럼 성장기를 보낸 저는 부모님과의 어떤 작은 추억도 없습니다. 후에 제가 성인이 되어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어느 새 제가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녀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역할모델을 본 적이 없었던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가정이 없던 저에게 가정이란 선물이 주어지고, 태의 열매는 여호와의 상급이라고 했던 것과 같이 자녀들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외에 저의 인생 속에 가장 큰 축복과 하나님의 선물은 가정과 자녀들입니다. 부모로서의 역할모델을 본 것이 없어 미숙한 부모였지만, 본능적으로 저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저의 삶을 아낌없이 주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자녀들이 부모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자녀 사랑 때문에 장차 성장해서 효도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모인 저는 우리 자녀에게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진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 맑고 깨끗한 작은 눈을 반짝이며 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았습니다. ‘아빠, 아빠가 우리 아빠라서 너무 좋아요.’ 저는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그렇게 절대적이고 온전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기는 아직 말할 줄 몰랐지만 저를 간절히 바라고 원했습니다. 저는 그 아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늙고 모든 힘이 다 빠지는 그 순간까지 그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는 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저는 물질로 다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습니다. 저 뿐 아니라 모든 부모가 저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스바냐 3:17절 말씀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죄인인 우리에게 눈먼 주님이십니다. 그렇게 실수가 많고, 연약하고, 죄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모습을 보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로마서 1:14절, 15절을 보시면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 사도는 모든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모두에게 ‘복음에 빚진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자신을 복음의 빚진 자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그가 복음을 알지 못했을 때,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못 깨달았었습니다. 그러나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그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를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바울 사도가 3차 전도 여행 중에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앞으로 자신이 어떤 선교사역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그 여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3절, 24절을 보시면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바울의 최종 목적지는 ‘서바나(스페인)’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땅 끝을 유럽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스페인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그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비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 끝인 스페인에 가기 전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만나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25절, 26절을 보시면,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그런데 사도 바울은 로마와 스페인을 향해 가기 전 예루살렘을 향해 가야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큰 기근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굶주렸고, 사도 바울은 지금의 그리스에 속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교회들로부터 모은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성도들의 굶주림을 해결해 주기 위해 그곳에 갈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27절을 보시면,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바울 사도는 이방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복음의 빚진 자가 되었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을 통해 가난한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울 사도의 복음에 빚진 자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왜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삶을 다 드려서 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며 이방인들을 위한 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그 사랑에 빚진 자의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복음의 빚진 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