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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는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도행전 8:1~8>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지그 지글러(Zig Ziglar, 1926~2012)’라는 유명한 작가이면서 강연자이기도한 분이 계십니다. 주방기구 세일즈맨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디딘 후에 많은 실패와 우여곡절을 경험하면서 최고의 세일즈맨이 된 사람입니다. 이분이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정상을 넘어서, 2008출간』라는 책을 쓰셨는데, 그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미국의 최장수 비즈니스 잡지인 [포춘(Fortune)]이 선정한 500대 기업의 CEO 중에 52%는 미국 사회에서 중하위층이나 빈곤층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세계최강대국 미국의 500대 기업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기업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기업의 CEO들 중 절반 이상이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미국의 백만장자 중 80%는 그들이 ‘1세대’라는 겁니다. 그러니깐 그들의 부모는 백만장자가 아니었는데, 그들 세대에 엄청난 성공과 부를 일구었다는 얘깁니다. 
 
또한 그 당시 조사에 의하면 ‘세계 일류 리더 300명’ 중에 무려 75%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에 학대를 당했으며, 일부는 심각한 신체장애를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시련과 고난을 겪은 사람은 항상 성공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1932~)’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이 일본에서 얼마나 대단한 분이냐면, 한 때 일본 대학생의 취업 희망 1순위였던 일본항공(JAL)이 천문학적인 적자에 허덕이다 2010년 부채규모 20조5천억 원으로 파산보호(법정관리)를 신청했습니다. 이 때 일본 정부에서는 일본항공을 살리기 위해서 당시 78세였던 이나모리 가즈오를 구원투수로 영입한 겁니다. 이나모리는 2년 여 뒤에 일본항공이 사상 최고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게하고 망했던 회사를 다시 회생시킨 인물입니다. 
 
바로 이 분이 말씀하신 내용이 ‘지그 지글러’의 책에 나온 자료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살을 깍는 듯한 추위를 견뎌내는 꽃나무들이 그 추운 겨울을 지내고 새싹이 나기도 전에 먼저 꽃망울을 터트리는데, 가지마다 달린 그 꽃들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인생의 고난과 시련을 경험한 사람들이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경우에는 인생을 살면서 경험한 셀 수 없이 많은 고난과 좌절이, 당시에는 앞이 보이지 않고 벼랑 끝이라고 여긴 것들이 나중에는 성공의 토대가 되어 주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원리는 일반 사회뿐만 아니라 성경 속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가장 위대하게 쓰임 받았던 인물들 중에 아무 일도, 걱정도, 시험도, 고난도 없이 평안히 지내다가 크게 쓰임 받은 인물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런 인물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시련이 크면 클수록 더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욥기 23:10절에서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시련을 한꺼번에 겪은 욥과 같은 고난의 대명사는 그 시련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단련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단련 뒤에는 가장 귀한 순금과 같은 모습으로 자신이 새로워질 것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에게 찾아 온 시련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믿는 자는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련을 통해 하나님은 순금과 같이 가장 아름다운 보석처럼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며, 그 시련 뒤에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꽃을 피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1. 시련은 필요하다
 
아이들 중에 병원에 가서 주사 맞는 걸 좋아할 아이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예방접종 같은 것은 맞기 싫어도 맞아야 하는 겁니다. 그걸 맞지 않으면 독감에 걸리기도 하고, 더 큰 전염병에 걸려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겁니다. 때문에 맞기 싫어도 꼭 맞아야 하는 게 예방접종인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 고난과 시련을 겪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때로 그 고난과 시련이 인생 속에 꼭 필요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는데, 자녀가 고통 받고 어려움 겪는 걸 좋아할 부모는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과 시련이 마치 예방접종과 같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과 시련이 우리에게 오는 것을 허용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보시면,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스데반 집사님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됩니다. 이 구절에서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라고 되어 있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 때처럼 스데반을 죽이고도 전혀 죄책감 같은 게 없었습니다. 도리어 나사렛 이단 예수를 따르는 사람을 처벌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그 때부터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큰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수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사회의 권력을 쥐고 있었던 산헤드린 공의회를 비롯한 유대인들은 예수 믿는 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공격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던 것입니다. 
 
처음 예수 믿기로 하고 교회를 다니는데 여러 가지 일들이 순조롭게 풀리고 형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예수 믿자마자 더 큰 시험과 어려움들이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제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그러세요? 저 이제 교회도 다니고, 열심히 신앙생활도 하려하고, 예수님도 열심히 믿고 살려고 하는데,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이런 의문들이 쏟아질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처음 교회 다닐 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열아홉 살 고등학교 3학년 첫 학기가 시작할 때 친구의 오랜 전도를 통해 저는 교회에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그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 없다. 안 믿는다’ 했던 제가 교회를 다니기로 결정을 하고 교회에 첫 발을 내딛었는데 그 때부터 예수님이 믿어지는 겁니다. 성경 속에 있는 모든 내용들이 믿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거고, 구원 역시 내 공로가 아닌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믿으려고 해도 안 믿어질 수 있는 거거든요. 
 
어쨌든 저는 교회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교회를 갔었던 거 같습니다. 모든 예배를 다 참석하고 교회에서 하라고 하는 건 다 했습니다. 그렇게 5개월 만에 저는 그 교회에서 믿음 제일 좋은 학생이 된 겁니다. 그 때부터 벌써 주변에서 ‘너는 신학교 가야겠다’ 이런 말들을 들었습니다. 제가 참 요란스럽게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의료보험도 없고, 돈도 없어서 병원도 못가고, 약국에서 아무리 약을 사다 먹어도 안 듣고, 병은 점점 중해지고, 저는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운 지경이었는데 의사한테 가본 적이 없으니 그 원인도 모르고, 부모님도 안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며칠 더 있었으면 저는 죽었을 것입니다. 
 
열은 40도까지 계속 오르고, 온 몸은 오한으로 벌벌 떨고 있고, 숨은 제대로 쉴 수 없어 힘겹게 겨우 내쉬고 있는데, 대여섯 살의 어린 저를 버리고 집을 나가신 어머니가 갑자기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아들이 죽어가니 당장 택시를 태워 큰 병원에 일단 입원을 시키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진찰한 의사 선생님이 ‘아니, 애가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 뒀냐, 큰 일 난다. 당장 입원시켜라’해서 그 날 바로 입원해서 병실 침대에 눕던 그 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죽을 지도 모른다는 말도 겁이 났고, 비싼 병원비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걱정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한 지 5개월 밖에 안 된 초신자였었지만 저는 그 때 하나님을 찾긴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했었습니다. 
 
‘하나님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제가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하나님을 잘 믿으려 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저는 아직 어린 초신자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깊은 뜻을 잘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제가 그 병원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마음 깊이 깨닫고 경험하게 된 것이 그 병원에 있는 동안이었습니다. 제게 그 시련이 꼭 필요했던 겁니다. 
 
그 때 그 병실에서 제가 받았던 말씀이 베드로전서 4장 12절, 13절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 시련이 저에게는 불과 같은 시험이었지만 그 시험 때문에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지금까지도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고난과 시련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너무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눈물이 나고 앞이 막막하고 캄캄할 수도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친구와 함께 애플을 공동 창업했습니다. 그러나 10년 뒤 경영분쟁에서 밀려 애플에서 쫓겨납니다. 그러나 다시 10년 뒤 애플로 돌아와 애플을 세계 최고의 혁신적인 회사로 탈바꿈해 놓았습니다. 
 
그 때를 회상하며 스티브 잡스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다. 애플에서 나오면서 성공에 대한 중압감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애플에서 쫓겨난 경험은 매우 쓴 약이었지만 어떤 면에서 환자였던 내게는 정말로 꼭 필요한 약이었다.”
 
 
그 때는 몰랐지만 돌아보면 그 시련이 내게 약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시련과 고난 속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시련을 통해 주시는 은혜가 있기에, 우리에게 그 시련이 필요하기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시련을 막아주시지 않고 그 시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시련 속에 있는 하나님의 깊고 넓은 뜻을 신뢰하십시오. 
 
2. 시련은 축복이다
 
초대교회의 가장 신실한 집사님 중에 한 분이었던 스데반 집사님의 죽음은 온 교회 성도들에게 큰 슬픔의 일이었습니다. 온 교회 성도들은 스데반 집사님의 죽음을 슬퍼하고, 크게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3절 말씀을 보시면,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여기서 ‘잔멸하다’는 말의 원어적인 뜻은 ‘멧돼지가 포도원을 짓밟아 황폐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멧돼지가 포도원에 조용히 들어가 잘 익은 포도 몇 송이만 조용히 따 먹고 나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어디 그렇습니까?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그 포도원 주인인 농부의 마음도 헤아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포도원을 짓밟고 황폐화 시켜버려 농부의 그 해 포도원 농사를 망치게도 하는 겁니다. 
 
사울이 마치 멧돼지와 같이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그렇게 황폐화시켜 버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 예수 믿는다는 얘기만 들으면 인정사정없이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4절, 5절을 보시면,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그런데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일어나니깐 그리스도인들이 위축되고, 움츠러들어서 그냥 숨어 지내는 게 아니라 도리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들은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며 다니는 겁니다. 그리고 5절에서 빌립 집사님도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는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1절 말씀을 보시면,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 지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초기에 예루살렘 안에만 모여 있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나누고, 은혜를 받고, 떡을 떼고, 교제하고, 구제하고, 전도하고, 말씀을 전하며 예루살렘 안에만 머물렀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보시면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있어서 성도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 졌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읽어본 분들은 이 구절을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장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신 이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 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세계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져 전 세계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성령을 부으셨던 겁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로서는 이방인을 만나 교제하는 것조차도 죄스럽게 생각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아니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유대인들로서 그 선민사상의 틀을 깬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탄생해서 예루살렘 성 안의 수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 좁은 예루살렘 성 안에서만 서로 좋아라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수천만, 수억,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큰 그림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 틀을 깨지 못하고 좁은 곳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일어나니 어떻게 됩니까? 그 성에서 빠져 나와 유대로, 사마리아로, 모든 땅으로 흩어져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 전역으로 흩어져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마을마다 교회를 세워가게 됩니다. 후에 로마 제국 하에서도 대 박해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 박해 속에 복음은 더욱 퍼져 로마제국을 복음화하게 되고, 지난 2천 년의 유럽 역사가 기독교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게 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시작된 박해와 시련과 고난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 박해가 없었다면, 그 시련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아직도 유대인들 몇몇의 민족 종교로만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까지 예수님의 복음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시련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기독교의 역사는 시련을 통해 더욱 더 크게 역사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여러분에게 어떤 시련이 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크게 축복하실 전조증상이라 여기고 믿음으로 반응하시길 바랍니다. 
 
 
캐나다 토론토 큰빛교회의 임현수 목사님(1955~)이라고 계십니다. 약 18년간 캐나다 시민권자로서 150여 차례 북한을 드나들면서 인도주의 차원으로 현지 고아원과 양로원 등을 지원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셨었습니다. 그런데 2015년 1월 북한의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북한으로부터 종신형을 선고 받고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가 2년 6개월 만에 풀려났습니다. 수감 중에 강제노동에 시달렸고, 겨울에도 언 땅을 1m나 파야하는 노역을 시켰다고 합니다. 우리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다가 캐나다에 가셨었던 박선영집사님이 그 교회를 다녔었는데, 갑자기 기도 부탁을 해서 저도 처음 그 소식을 접했었습니다.
 
한국에 오셔서 한 교회에서 집회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고난은 변장된 축복임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북한에 대해 조금의 원망과 상처, 불평과 불만이 없어요. 하나님은 저를 연단시키는 도구로 그들을 사용하셨을 뿐이니까요.”
 
지금 임 목사님은 전 세계를 다니시면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통일한국 시대를 대비하며 장차 북한으로 들어갈 사람들을 훈련시키시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 시련과 고난 이전 보다 오히려 더 실제적이고 크게 쓰임 받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고난과 시련은 변장된 축복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시련 속에 하나님의 축복이 숨겨져 있습니다. 
 
 
3. 시련은 간증이다
 
시련이란 게 없다면 간증할 것도 없을 겁니다. 
 
오늘 본문 7절, 8절을 보시면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스데반 집사님이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음의 확산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동료 집사님의 죽는 사건으로 인해 움츠러들 만했음에도 불구하고 빌립 집사님도 예루살렘을 떠나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가 마을들마다 복음을 전했고, 많은 사람이 그 말씀을 믿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또한 그들 가운데 있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고,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치유되고, 그 성에 큰 기쁨이 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빌립 집사님이 평안히 있었다면 어떻게 사마리아 성에서 이런 놀라운 역사와 기적들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시련 때문에 도리어 빌립 집사님에게 놀라운 간증거리가 생긴 겁니다. 또 사마리아 성에 있던 많은 정신적인 문제를 앓던 사람들, 영적 문제를 앓던 사람들, 육체적인 질병으로 고통 받던 사람들이 치유되고 회복되어 그 성 안에 큰 기쁨이 임한 것입니다. 그들 역시 그런 문제들이 없었다면 복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어찌 경험할 수 있었겠습니까? 시련과 슬픔과 눌림과 고통과 아픔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간증이 된 것입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 와서 개척 교회를 시작했는데, 아무 문제도 없고, 걱정도 없고, 어려움도, 고난도, 시련도 없이 교회가 평안히 성장해왔다면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별로 할 얘기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도 있는 지난 5~6년 간 많은 시련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련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시련들 속에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간증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를 붙들어 주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 가운데 일하실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련이 있었기 때문에 간증할 거리도 있는 겁니다. 
남자들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그 2년 3년간의 혹독한 훈련을 견뎌낸 겁니다. 그러니 남자들이 군대 얘기하면 밤을 새가면서 할 얘기가 많은 겁니다. 특히 해병대 갔다 온 분들은 더 할 얘기가 많은 겁니다. 그런데 저처럼 군대 안 갔다 온 사람은 아침에 민방위 훈련 갔다 온 얘기 밖에 할 얘기가 없는 겁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떤 때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시련과 시험을 겪고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시련이 그냥 시련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빌립이 전한 복음은 사람들을 치유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회복과 치유와 기쁨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간증거리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내 인생을 치유하고 회복하여 반드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내게 간증거리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온 시련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사람은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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