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순종과 시험”

<창세기 12:4~6> 

– 40일 특새 : 갑절의 은혜를 구하라(5) –

 

 

어렸을 때부터 중간 중간 2~3번 정도 교회를 다닐 기회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리고 3학년 때쯤에 여름성경학교를 한번 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도 교회를 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 예수님을 믿었던 것은 아니었던 거 같고, 주님은 저에게 자꾸 찾아 오셨었는데 제가 믿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러다 열아홉 살 때 정식으로 교회에 등록까지 하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했고, 그 때부터 저는 매일 성경을 읽고, 매일 기도생활을 했고, 제가 갈 수 있는 교회의 모든 예배와 기도회와 모임과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교회 다닌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서 세례도 받지 않았던 제가 교회에서 가장 뜨거운 믿음을 갖고 있는 학생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 때 하나님과 교회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부터 저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고 제때 병원치료를 받지 못해 호흡에 장애가 있었고 결국 저는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 때 어린 믿음을 갖고 있었던 저의 의문은 ‘이제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죄도 안 지으려고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에게 왜 이런 시험(고난, 시련)이 왔는가? 교회 열심히 다니면 어려움도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어린 초신자의 믿음을 갖고 있었던 저에게만 그런 시험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은데 그 중에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을 모르던 성도가 우리교회에 나오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기 시작하는 겁니다. 찬양하거나 기도할 때 눈물이 나기도 하고, 설교를 들을 때 울컥울컥 어떤 감정적인 변화들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교회 오시는 게 좋아지고,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서 관심이 자꾸 가는 겁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시험에 빠지는 겁니다. 점점 관심과 애정이 느껴지던 교회와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겁니다. 그리곤 ‘역시 교회는 너무 깊이 빠지면 안 되는 거 같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교회 다니자…. 에이 차라리 가지 말자!’ 이런 생각에 빠지는 겁니다. 이런 성도님들을 보면 목회자인 저는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보시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이제 결단하고 그의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갑니다. 이 구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자신의 의지와 경험과 판단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한 겁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는 것은 자신 뿐 아니라 가족의 생명에 심각한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고, 그 동안 모은 모든 재산을 약탈자들에게 한꺼번에 모두 빼앗길 수도 있는 아주 무모한 시도였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이 순종이 얼마나 기특한 겁니까? 그러면 모든 일들이 술술 풀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6절을 보시면,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인 사라와 조카인 롯과 그 동안 평생을 걸쳐서 모은 모든 재산과 가축과 종들을 이끌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순종한 아브라함의 앞길이 형통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순종하기 어려운 그 엄청난 순종을 해냈고, 그리고 연고도 없는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 붙들고 들어갔으면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지낼만한 파라다이스가 펼쳐져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땅에는 이미 강대하고 호전적인 가나안 족속들이 기름진 땅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의 ‘세겜’지역에 도착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점점 남방(Negev)으로 옮겨갔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8절에 보면 그는 벧엘이란 지역도 들렸고, 그 이후 남방(네게브)으로 점점 남쪽으로 남쪽으로 옮겨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 위성지도를 보면, 현대 이스라엘과 중동지방은 점점 사막화가 되어가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살던 때에 가나안 땅은 매우 비옥한 땅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현대 이스라엘의 위성지도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의 세겜에 들어갔을 때 그 땅은 좋은 곳이었지만 가나안 사람들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벧엘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도 아브라함은 발붙일 곳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 가다보니 불모지와 같은 사막과 광야지역인 ‘네게브(남방) 사막지대’로 쫓겨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아갔다면 더 형통해야 할 텐데 아브라함이 시험에 빠질 만한 상황들이 이어져갔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와 비슷한 일들이 참 많습니다. 요셉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놀라운 꿈을 꾼 다음에 오히려 그는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믿음 하나로 승리한 이후에 그는 장인의 창을 피해 20대 시절 내내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모세가 주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 했을 때 홍해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순종했다면 더 잘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왜 이런 일들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 말씀을 보시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순종 뒤에 시험 혹은 시련이 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순종의 끝에는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순종 뒤에 있을 수 있는 시험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반응하고 그 시련을 잘 견디어 낸 자는 경주하는 자가 인내로 그 경주를 마쳤을 때 받게 되는 면류관과 같이 그 순종으로 인한 상급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 분명 여러 가지 시험과 시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 시험과 시련을 견디어내며 통과한 이들은 이 시대의 아브라함으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순종으로 그 믿음을 증명한 믿음의 사람들과 같이 여러 가지 시험 중에도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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