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믿음으로 생각하라”

<창세기 13:5~9> 

– 40일 특새 : 갑절의 은혜를 구하라(10) –

 

 

여기 필리핀을 보면 보통 식구들이 많은데, 그 중에 한명이라도 직업을 갖고 있으면 그 사람이 그 적은 월급을 갖고 가족 전체를 먹여 살리고, 형제들 공부도 시키고, 그렇게 희생적으로 살아가는 가족애(家族愛), 형제애(兄弟愛)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수십 년 전 우리나라의 사회상하고 비슷합니다. 저희 집 역시 부모님이 안 계신 자리를 어린 우리 누님들이 대신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며 저녁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얼마 되지 않은 그 적은 월급을 받아 우리 4남매를 부양했었습니다. 그걸 갖고 어떻게 살았나? 할 정도로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걸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물질보다 가족애와 형제애가 더 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법원행정처 자료에 의하면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형제, 자매 간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부모와도 소송하는 사례가 점점 그리고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2005년에 158건 그리고 2008년에는 279건에 불과하던 상속을 둘러싼 가족들 간의 소송이 2016년에는 1,233건, 2017년에는 1,403건 그리고 작년인 2018년에는 1,710건으로 매년마다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상속재산이 적었다면 이런 소송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많은 재산을 조금 이라도 더 가지려고 물질 앞에서 형제와 자매도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부모님마저 법정에서 소송의 대상이 되고 있는 슬픈 우리 사회의 자화상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과 조카 롯과의 분쟁 역시 각자의 재산을 둘러싼 다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람지역의 하란에서 모은 재산도 있었지만, 애굽에 내려갔을 때 바로 왕으로부터 많은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받았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재산이 증식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재산이 많아지다 보니 그것을 관리하고 불려가는 과정에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 갈등이 생기게 된 겁니다. 이 세상의 모든 다툼은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느냐?’ 즉, 이권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5절과 6절 말씀을 보시면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모두 많은 가축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가축을 먹일 목초지를 가나안 땅 어디에서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남쪽의 광야지대인 네게브로 내려갔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결국 애굽 땅 까지 갔다가 거기서 큰 어려움을 경험하고 다시 벧엘로 올라왔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여전히 그 곳엔 가나안 족속들이 텃세를 부리고 있었고,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넓고 좋은 목초지를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가축은 너무 많았던 겁니다. 그러던 중에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자꾸 충돌이 생겼던 겁니다(7절). 그러니 아브라함과 롯 역시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연장자로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재산을 갖고 다투는 삼촌과 조카 사이의 모습은 좋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8절). 더더구나 가나안 족속과는 달리 여호와 신앙을 갖고 있었던 아브라함 가문이 그런 모습을 가나안 사람들에게 보인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기도 했었을 것입니다.

 

9절 말씀을 보시면,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어쨌든 그 지역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우선권을 롯에게 주게 됩니다. 하지만 이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연장자였고, 지금까지 조카인 롯을 돌봐왔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오게 된 것도 아브라함의 결정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덕에 조카 롯에게도 많은 재산 증식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아브라함이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카 롯은 아직 젊으니깐 아브라함이 선택하지 않은 다른 곳으로 가서 개척해 나가도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산다는 것은 우리가 의지하는 대상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물질이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의지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모든 공급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때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그들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것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훈련받았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6:31절, 32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며 평생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런 거에 의해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필요의 공급이 하늘 아버지에 의해 공급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 겁니다.

저는 대여섯 살 이후부터 부모의 돌봄이란 걸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매일, 매 끼니를 스스로 해결하거나 굶거나 했어야 했습니다. 아이를 돌볼 부모가 없다는 게 이런 겁니다. 그러나 부모가 있는 자녀들은 다음 날 먹을 거, 입을 거 이런 것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우선권을 줬던 것은 아브라함이 욕심을 부리고, 그의 어떤 선택에 의해서 자기가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그의 진정한 공급자이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양보할 수 있었던 겁니다.

순간순간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로 인해 여러분에게 두려움과 염려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제 인간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믿음으로 생각하십시오. 그 믿음이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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