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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꿈”

<창세기 17:2~8> 

– 40일 특새 : 갑절의 은혜를 구하라(26)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기업들인 SK, CJ, LG 등의 기업 로고를 보면 대부분이 영문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업들은 설립된 지 적어도 70~90년 정도 역사가 오래된 기업들입니다.

 

 

이 기업들의 원래 이름은 SK는 ‘선경그룹’이었고, CJ는 ‘제일제당’이었고, LG는 ‘럭키금성’이었습니다. 처음 설립될 때만해도 영어를 잘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영어를 잘 쓰지도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기업 이름에 영문을 넣는다는 거 자체가 오히려 어울리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 기업들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업명을 새롭게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오래 전에 지은 이름이 촌스럽게 느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의 해외 수출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는데, 해외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발음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해외시장 진출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회사의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앞으로 그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지 그냥 오래된 이름이 촌스러워서 바꾸는 것만은 아니란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5절을 보시면,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여종인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은 이후 14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랜 침묵을 깨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갑자기 아브라함의 이름을 바꿔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이름은 ‘아브람(Abram)’이었었는데, 이 이름을 ‘아브라함(Abraham)’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시는 겁니다.

먼저 ‘아브람’이라는 이름의 뜻은 ‘큰 아버지’란 뜻입니다. 한 부족의 ‘족장’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 부족의 ‘시조’를 의미하기도 한 이름으로, 그 시조이며, 부족장을 높이고 존경하는 의미의 이름인 것입니다. 이 이름도 좋은 이름이고,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아들을 향한 큰 꿈을 갖고 지어준 이름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개명해 주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의 뜻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평범한 한 부족의 족장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한 부족장 정도가 아니라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고, 여러 위대한 왕들이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나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6절).

이것은 1차적으로는 장차 주실 아들인 이삭을 통해 주실 후손들(이스라엘과 에돔 족속)을 말하고, 또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을 통해 이루어질 민족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라가 죽은 이후에 아브라함이 후처인 그두라라는 사람을 맞이하는데, 그두라는 아브라함에게 여섯 아들을 낳아 주고, 그 아들들의 후손들이 또 다른 여러 족속들과 나라들(미디안, 스바, 드단, 앗수르…)을 이루게 됩니다(창25:12~16, 1~4).

그러니 아브라함은 이것만으로도 여러 족속과 민족과 나라들의 시조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3:6, 7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단지 육신적인 후손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구속사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2017년 한국선교정보네트워크에서 ‘2017년 세계선교통계표’를 살펴보면 기독교는 카톨릭 포함 전 세계 24억 8천만 명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이 안에는 카톨릭 뿐만 아니라, 명목상의 기독교인과 기독교 이단도 포함하기 때문에 상당수는 허수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이후 약 4천년에 걸쳐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총원을 헤아린다면 그의 자손은 수십 억 명에 이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내 언약(2절, 4절, 7절)’이란 표현이 여러 차례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16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횃불의 모양으로 언약하셨던 것을 살펴봤었습니다. 그 때 반으로 나뉘어진 가축의 사체 중간으로 아브라함은 오고가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횃불만이 오고갔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방적 언약이란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자주 실수할 지라도 결국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언약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또 ‘내 언약’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루실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름을 바꿔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14년 만에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큰 아버지’란 뜻에서 ‘많은 민족의 아버지’란 뜻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지를 말합니다.

‘너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나는 너를 크게 만들어 줄 것이다. 너는 작은 꿈에 만족하며 살지만 너를 향한 나의 꿈은 원대한 것이다. 너는 지금 당장 아들 하나 없어 늘 상심하고 낙심하지만, 너는 장차 모든 믿는 자의 영적 조상이 될 것이다….’

라는 하나님의 의지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꿈과 비전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꿈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향한 그 하나님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을 이 세부 땅에 보내신 것도, 여러분의 지금의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꿈은 진행 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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