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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전성기”

<창세기 21:22~34> 

– 40일 특새 : 갑절의 은혜를 구하라(40) –

 

 

제가 지난 주일에 설교하다가 ‘저는 우리 성도들 부자 되기를 위해 기도한다’라는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이 문장만 보면 저는 보수신학에서 비판하는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을 전파하는 목사로 오해하기 딱 좋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게 된 것은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 어떤 소망을 품고 자녀들 데리고 정착하기 위해서 왔는데, 일이 뜻하는 대로 잘되지 않고, 결국 재정적인 어려움에 닥치게 되면 대부분의 선택은 직장에 취직이라도 할 수 있는 한국행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목회를 하다 보니 성도들의 안타까운 현실은 곧 목사의 안타까움과 기도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복신앙(祈福信仰)’이 뭔지에 대해서 간단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사전적인 뜻은 ‘복을 기원함을 목적으로 믿는 신앙’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복신앙은 자신의 형통과 소원 성취와 성공과 무병장수와 자손 번영…과 같은 것을 신앙의 목적으로 합니다. 그래서 기복신앙이 위험한 겁니다. 기독교의 모습을 한 세속적 종교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 나의 뜻에 하나님을 맞추느냐?

*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느냐?

를 보면 이것이 기복신앙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뜻에 하나님을 맞추는 신앙은 삶의 변화가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나의 뜻과 나의 목적이 결국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한 것인데, 거기에 신앙의 목적이 있는데 이런 기복신앙은 삶의 변화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어가는 참된 신앙은 반드시 삶의 변화가 따라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비춰보니 문제가 많은 겁니다. 죄와 잘못이 너무 많은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 맞춰가다 보니 내 모습이 점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깐 참된 신앙은 큰 부와 성공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부에서 크게 성공하고, 큰 부를 갖는 것이 저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또 하나님께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렵고 힘들었던 성도들이 철저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속에 함께하시고 일하시는 증거는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인격과 삶과 가치와 태도와 같은 내면적인 변화들 역시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증거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22절 말씀을 보시면,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블레셋 지역의 큰 부족이었던 그랄 왕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어느 날 아브라함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곤 하는 말이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하는 겁니다. 불신자의 눈에 비쳐진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니 그가 섬기는 하나님이 그와 늘 함께 하시고, 무엇을 하든지 그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비멜렉의 꿈에 까지 나타나 아브라함 가정을 보호하시고 지키셨던 것에 아비멜렉은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외지에서 온 아브라함 부족은 처음엔 규모가 작았지만 점점 형통하고 점점 더 강대해져가는 모습을 아비멜렉이 주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고대부족사회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고 몰살시키는 일들이 흔히 있었습니다. 때문에 아비멜렉은 점점 강성해가는 아브라함 부족과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고, 타부족의 침략이 있을 때 서로 돕고 돕자는 동맹관계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들이 아브라함의 후손 족장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세기 26:28절에 그랄 왕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찾아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라고 하면서 동맹관계를 맺자고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의 경우에도 창세기 30:27절에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라고 야곱의 외삼촌 라반이 고백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 중에 요셉의 경우도 창세기 39:3절을 보시면,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이었던 그랄 왕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 밧단 아람의 야곱의 외삼촌 라반 그리고 애굽 왕의 친위대장 보디발 역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그들이 형통하게 되었다는 것을 불신자들의 입을 통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3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었고, 그는 믿음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죽은 자와 같은 아브라함 자신과 사라의 태를 열어 아들을 주실 것을 믿었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하던(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냄) 신앙의 절정을 맞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의 전성기에 불신자인 그랄 왕 아비멜렉이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가장 부강했던 때가 다윗 왕이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때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가장 뜨겁게 사랑했었던 왕이었습니다. 그의 믿음의 전성기였었습니다. 즉, 믿음의 전성기와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들은 함께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전성기에 하나님의 역사와 증거들은 가장 많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가장 뜨겁게 사랑하고, 성전을 자주 찾고, 뜨겁게 기도하고, 헌신적인 섬김과 봉사가 있고, 주님을 향한 순수하고 신실한 믿음의 전성기에 하나님은 가장 크게 역사할 것입니다. 갑절의 믿음과 갑절의 사랑과 갑절의 열정으로 주님을 섬기십시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갑절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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