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믿음은 여호와 이레”

<창세기 22:6~19> 

– 40일 특새 : 갑절의 은혜를 구하라(42) –

 

 

 

지난 6월에 제가 속해 있는 우리 교단(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의 대표적인 교회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받는 교회 중에 하나이며, 이찬수 목사님께서 담임하시는 분당우리교회에서 개척이후 가장 큰 소란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부목사로 섬기고 있는 정OO목사님이 수요예배 설교 중에 동성애에 관한 언급이 있었는데, 이 설교가 크게 문제가 된 것입니다.

 

설교 중에 이런 말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대세는 이미 넘어갔다… 솔직히 언론과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들,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이야기 하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인해서 동성애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소위 막말로 꼰대들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솔직한 제 심정”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퀴어축제 앞에서 드러누워 악을 쓰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오늘날 믿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볼 때 자기들 밖에 모르고 타협하지 않으며, 자기들 밖에 모르면서 악 쓰는 그런 이미지로 교회 다니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동성애 진영에서 추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 같은 게 통과될 경우 우리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는 일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보수기독교 진영에서는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고, 기도회를 하고, 시민단체와 함께 시민운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일에 헌신하고 있는 분들을 향해 ‘꼰대들’이라 비하하듯 표현하고, 크리스천들이 퀴어축제 앞에서 드러누워 악을 쓰고 기도하면서, 타협하지 않고 자기들 밖에 모르는 편협한 집단으로 비쳐지고 있다…고 목사라는 사람이 거기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겁니다.

사실 이 정OO목사님이 말하고자 했던 것의 강조점은 동성애보다는 성경에서 더 많이 경고하고 있는 모든 탐욕을 경계해야한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이 미숙한 설교자의 어리석은 발언들로 인해 한국교회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분당우리교회의 담임목사로 계신 이찬수 목사님께서는 부목사가 저질러 놓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안팎으로 많은 비난들이 이찬수 목사님을 정조준했고, 여러 가지 난처한 상황으로 코너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당사자인 정OO목사는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단에서는 해당 목사를 면직 시키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찬수 목사님은 설교 중에 ‘젊은 한 목사의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만약 “정 부목사를 사퇴시켜야 한다면 나도 그날부로 사임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해당 교회의 지도자로서 그 책임을 지겠다는 결단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부분까지도 비난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볼 때는 목사님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말썽 일으킨 부목사를 사임시키고, 넘쳐나는 후보들 중에 한 명 뽑는 게 그 문제도 빨리 해결하고 쉬운 일이지 않습니까?

사람은 어떤 위기에 닥치면 자신을 보호하려고 다른 사람을 위험에 몰아넣기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의를 지키기 위해 그 위험을 감수할 때 그 사람의 진정성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신의와 마찬가지로 믿음이란 것 역시 위기 앞에 쉽게 변한다면 진정한 믿음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절정에 다다른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Test)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어느 시점에 시험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말씀 나눌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시험의 목적이 두 가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레벨 확인’을 위해서 하신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음 단계 진입’을 위해서는 반드시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테스트)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뭔가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테스트 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런 테스트 앞에 당황하지 말고, 아브라함처럼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온 시험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번제에 쓸 나무를 짊어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갑니다.

 

7절을 보시면,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삭은 종종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린 양을 끌고 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번제를 올렸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다르게 불과 나무와 칼은 준비되었는데, 번제에 쓸 어린 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8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하곤, 모리아 산의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장소에 다다랐습니다. 9절과 10절 말씀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기서 아브라함이 그냥 번제 시늉만 하는 거 같습니까? 아브라함은 정말 이삭을 죽여 번제로 바치려고 했던 겁니다.

11절에서 하늘로부터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급히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성경을 통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막으시지’라고 생각하지만,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사랑하는 아들의 팔과 다리를 묶고, 번제단의 나무 위에 아들을 안아 올려놓고, 칼을 들어서 찔러 죽이려고 하는데 ‘하나님 이 타이밍에 저를 막아주셔야 해요. 제 이름을 불러주셔야 해요’ 이랬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정말 이삭을 죽여 번제로 바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조금만 늦었으면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칼에 찔려 죽었을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시면,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성경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친 것으로 인정합니다.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셨어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쳤을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마음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9절에서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믿음의 합격자’가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과 2절(쉬운성경)을 보시면,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도 믿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확신하고, 지금 당장 손에 잡히지 않아도, 보이는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언약을 확실히 이루어질 미래로 믿는 이들의 믿음을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도 믿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인정 받았다는 것이 뭐예요? ‘합격했다’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이 진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인정해 주신 겁니다. 합격한 겁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테스트에 합격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간 겁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에서 아브라함의 진정한 믿음이 확인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도 여러 가지 위기의 순간에 그의 진심이 확인되듯이, 우리의 믿음 역시 진짜 믿음은 불과 같은 시험과 시련 속에서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시험과 시련에 흔들리기도 하고, 그런 것들에 시험이 들어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믿음을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에서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증명하십시오. 여러분이 정말 믿음을 갖고 있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끝까지 가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믿음을 인정 받으셔야 합니다.

제가 우리 형제들과 바이크 선교회로 모여 토요일 새벽마다 탑스와 같은 산을 자전거로 타고 있는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것 같고, 그 견디기 힘든 그 마지막 순간을 통과하면 어느 순간 제 다리에 근육이 생겨있고, 심장과 폐가 이전보다 더 강해져 있고, 이전 보다 저는 더 단단해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견디기 어려운 시험과 시련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을 견디는 사람, 그 마지막에 승리하는 사람이 믿음의 합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믿음의 넥스트 레벨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믿음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축복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거기서 증명되는 것입니다.

 

2. 여호와 이레

여러분 하나님 앞에 믿음이 인정받으면 그 뒤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고 계심이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크게 걱정도 되지 않고, 큰 염려도 되지 않습니다.

뭐든지 잘 못하면 걱정도 되고, 염려도 있는 겁니다. 하지만 잘 하면 그리 크게 걱정 안 하는 겁니다. 초보나 아마추어나 하수는 본 게임 전에 걱정이 산더미인 겁니다. 하지만 프로나 고수는 본 게임을 즐길 걸 생각하면 흥분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 하수들은 매일 염려 속에서 삽니다. 하지만 영적 고수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하실 하나님의 일들이 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시면,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명령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하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그 뒤에 아브라함이 바라보니 한 숫양의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겁니다. 그가 아들 이삭에게 8절에서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했던 대로 정말 번제할 양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가져다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것은 기독론 적으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땅을 ‘여호와 이레(Jehovah-Jireh)’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이후부터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원어에서는 ‘여호와의 산에서 보게 되리라’는 의미를 쓰고 있기도 합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으면, 그 땅에서 보게 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세부에 처음 오게 될 때 아무 연고도 없이 오니 겁이 났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언약하신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하나씩 하나씩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 아들 하빈이가 만으로 열여덟 살에 호주를 갈 때에 우리 가족이 식탁 앞에 둘러 앉아 함께 예배했습니다. 그 때 주셨던 말씀이 ‘여호와 이레’였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이 아들이 알아본 한 주에 130달러 받는 거실 쉐어 하는 집 전화번호 하나 들고 얘가 떠났습니다. 자기가 아르바이트 하면서 학교 다닌다고 했지만 당장 생활할 돈이 필요해서 몇 백 달러를 손에 쥐어줬는데, 얼마나 걱정이 많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호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룸 쉐어 하는 나오겠다는 사람이 나오지도 않고 우리 애가 국제 미아가 될 뻔했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그렇게 3~4시간을 마음 조리며 있다가 그 이후부터 우리 아이가 준비한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시는 기가 막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계획에 문제가 생겼고, 거기서 모든 게 중단되고 실패한 것 같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의 플랜이 진행 중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교회의 내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교회가 이렇게 이 건물에서 몇 년을 더 있을지 모르지만, 주변의 땅 값은 점점 오르고, 랜트비도 오르고, 세부의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해도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얼마 전에 BTC 옆에 있는 땅이 스퀘어미터 당 150,000페소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면 만약 우리교회가 언젠가 땅을 구입해서 성전을 짓는다고 하면 그건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때,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문제가 없습니다.

 

학개서 2장 6~8절을 보시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초신자 때 애굽에 내려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를 큰 부족으로, 큰 나라와 민족으로 몸집을 키워 주시려고 하는데 아브라함은 너무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 사람이 큰 재물을 그냥 아브라함에게 안겨주는 겁니다. 또 그랄 왕 아비멜렉도 아브라함에게 큰 재물을 그냥 주는 겁니다. 요구한 적도 없는데 그냥 주는 겁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무슨 돈으로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수 있었습니까?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 사람들이 막 돈을 안겨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돈이 없으니깐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각 나라들로부터 엄청난 물질이 움직였습니다. 엄청난 물자들이 각 나라들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물질은 사람이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 물질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는 더 큰 것을 맡기시듯이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 사람에게서 빼앗아 충성된 자에게 맡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학개서 2:19절도 보시면,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지금 내 눈 앞에 아무것도 없어도, 이제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채워주시고,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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