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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영웅”

<사사기 6:11~16> 

 

 

 

제가 성장할 때 헐리웃 영화의 히어로는 ‘슈퍼맨’이었습니다. 1978년 슈퍼맨 역의 ‘크리스토퍼 리브(Christopher Reeve, 1952~2004)’가 주연을 맡아 처음 영화로 제작되어 그 이후에도 여러 시리즈가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슈퍼맨에 이어 ‘스파이더맨’이나, ‘베트맨’ 같은 히어로 영화들도 제작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었습니다.

요즘에는 아이언맨과 헐크와 같은 슈퍼히어로들이 아예 ‘어벤져스’라고 해서 히어로 종합선물세트처럼 다 같이 등장하는 영화 시리즈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위기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들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초능력을 갖고 있는 슈퍼히어로들만 영웅이 아니라, 어쩌면 진짜 영웅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지만 난세에 진짜 나라를 구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영웅은 임진왜란 때 일본의 침략을 막아낸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독일 문학계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분이며, 세계 연극계에 한 획을 그은 ‘베를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989~1956)’라는 분이 문학가로서 역설적인 진리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영웅이 없는 사회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영웅을 필요로 하는 사회가 불행한 사회이다.”

 

영웅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회는 그 만큼 혼란스럽고 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안팎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은데, 요즘 같은 경우 우리나라에도 어떤 탁월한 영웅이 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해군 제독으로 전쟁에 큰 공훈을 세운바 있는 ‘윌리엄 홀시(William Frederick Halsey Jr. 1882~1959)’는 이런 말을 합니다.

 

“세상에 위대한 사람은 없다. 오직 평범한 인물들의 위대한 도전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영웅을 영화 속의 슈퍼히어로들처럼 어떤 초능력을 갖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야고보서에서는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켰던 엘리야를 예로 들며 그 영웅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위대한 도전을 했고, 그 위대한 도전은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는 이스라엘을 위기 속에서 구원한 믿음의 영웅 사사 기드온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난세에 등장하는 영웅

오늘 본문 사사기 6장의 바로 전절인 사사기 5장31절을 살펴보면, 걸출한 여선지자 드보라의 통치 아래에 이스라엘은 약 40년간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사사기 6장 1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런데 평안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고, 여호와께서는 7년 동안 그들을 아라비아와 요단 동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미디안 족에게 고통을 당하도록 내버려둡니다. 사람도 좋은 환경에 있다가 어려움에 처하면 그 고통의 강도가 더 크게 느껴지는데, 사사 드보라가 통치하던 40년의 평안 기간을 보내다가 큰 환란 속에 있었으니 그 7년간의 기간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6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3절에는 미디안뿐만 아니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까지 이스라엘에 쳐들어와 모든 것들을 약탈해 갔다고 되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큰 고통을 준 족속이 미디안 사람들이었던 거 같습니다. 메뚜기 떼 같이 새까맣게 몰려온 미디안의 약탈자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식량과 양과 소와 나귀까지 남기지 않고 모든 것들을 탈취해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한 두 번이 아니라 7년 간 계속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에 올라가 굴을 파고 숨어 지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나마 그렇게 숨어 지내면 가족과 함께 먹고 살 식량을 어느 정도라도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으로 말미암은 궁핍함이 극심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겪게 되면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서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평상시에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며 평안과 감사 속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1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하나님께서는 고통 중에 부르짖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 고통 속에서 건져 줄 한 사람을 세우시게 됩니다. 그게 바로 기드온이란 사람입니다.

 

‘난세지영웅(亂世之英雄)’이란 말이 있습니다. 난세라는 말은 어지러운 세상을 말합니다. 그렇게 세상이 어지럽고 힘들 때 영웅이 나온다는 의미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인해서 큰 고통을 겪을 때 기드온이란 영웅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을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난세에 영웅이 나고, 불황에 거상난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분명 모든 사람들에게 큰 어려움의 시간이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 누군가는 그 위기를 기회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그런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위기를 돌파할 해법을 찾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난세에 등장하는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려 하실 때, 손에 어떤 무기부터 들려주시는 게 아닙니다. 먼저 우리의 생각과 관점을 바꾸시는 일부터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게 바뀌지 않으면 절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고,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이 위기라고 생각하는 그 상황 속에서도 헤쳐 갈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큰 시련과 어려운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문제들은 객관적으로 봐도,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도 분명 큰 문제는 큰 문제일 것입니다. 상황이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내게 큰 부담과 근심거리가 되어 잠을 못 자게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문제는 나를 점점 숨 막히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문제가 나를 끝장낼 것 같은 두려움을 주기도 할 것입니다.

 

 

골프 황제라고 불리는 ‘타이거 우즈(Eldrick Tont Woods, 1975~)’가 골프 치다가 왜 갑자기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까? 힘들어서 잠시 쉬는 건가요? 길을 찾고 있는 겁니다. 서서 안 보이던 것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보면 그 골프공이 굴러갈 길이 보이는 겁니다.

여러분이 지금의 그 상황과 그 위기와 고난을 바라보는 관점만 바뀌어도 길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길이 없다고, 이제 소망이 없다고, 가망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인생의 바닥에 좀 쭈그리고 앉으면 어떻습니까? 자존심이고 뭐고 좀 내려놓으면 좀 어떻습니까? 다른 위치에서 바라볼 때 위기를 탈출할 길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반지의 제왕』을 쓴 저자 ‘존 로날드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1973)’는 기독교 변증가이면서 『나니아 연대기』저자인 ‘C. S. 루이스’와 절친 이었습니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을 쓰는데 C.S.루이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반지의 제왕은 선과 악의 대립을 묘사하고 있고, 기독교 사상이 녹아져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되는 것입니다.

톨킨이 이런 말을 합니다.

“길이 어두워질 때 안녕이라고 말하는 자, 믿음이 없을 지어다”

여러분, 믿음의 눈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분명 앞 길이 막막하고 어두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두움 후에 밝은 아침이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관점을 갖고 있는 이들이 난세에 등장하는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영웅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선택하셨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관점을 바꿔주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12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1절에서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혹시라도 들킬까봐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타작은 넓은 타작마당에서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포도주 틀이라는 것은 널찍한 통에다가 포도를 넣고 발로 밟아서 그 즙을 짜내는 것을 말합니다. 거기서 밀을 타작한다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입니까? 기드온은 혹시라도 미디안 사람에게 들켜서 곡식을 다 빼앗길까봐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포도주 틀에서 몰래 몰래 밀을 조금씩 타작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겁쟁이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기드온의 현실하고는 너무 안 어울리는 호칭인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 보면 기드온은 이 모든 어려운 상황이 모두 하나님 탓인 거 같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그런 사람이 기드온이었습니다.

기드온은 겁도 많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 앞에 있을 때 그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형편없는 사람을 택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5절에 보면 자신을 비하하고 자존감조차도 부족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이 많아서 여러 가지 표징을 보여 달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믿음이 없는 겁니다. 처음 부름 받았을 때 기드온은 아주 평범하다 못해 믿음도 없는 아주 연약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향해 ‘큰 용사여’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평범하다 못해 믿음조차도 없는 형편없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 ‘큰 용사’라고 부르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함께하실 때 기드온은 큰 용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이렇게 표시할 수 있습니다. [1 x 0 = 0] 1에다가 0을 곱하면 그냥 0이 되는 겁니다. ‘나’라고 하는 ‘1’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0’의 자리를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열심히 뛰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참 많습니다. 아이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공부도 내 힘으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내 계획과 꿈도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살면 살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1 x ∞ = ∞] 내가 아무리 가진 게 없는 ‘1’이라고 할지라도 거기에 ‘무한대(∞)’를 더하거나 곱하면 나는 무한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기 한 번만 걸려도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연약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무한대의 하나님을 우리에게 더하거나 곱하게 되면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한 일이 없다(막9:23)”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찬양 중에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 전혀 없네’라는 곡이 있습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기드온처럼 연약하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소극적이고, 겁 많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16절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계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약속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골리앗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고 다윗은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민족을 구원한 영웅으로 세워졌던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싸우는 영웅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향해 ‘너는 큰 용사다’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함께하시겠다는 약속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15절을 보세요.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기드온은 자신의 형편을 보고 있습니다.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히 미디안 군대와 싸움조차 될 수 없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또 자신의 집안도 좋지 않고, 자신도 자기 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자신의 형편이 이렇게 좋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부교역자 생활을 약 20년 동안 했는데, 그 기간 중에 교회 개척에 대한 생각은 별로 안 해 봤습니다. 뭔가 가능성이 있고, 할 수 있을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다면 생각해 봤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그런 조건들, 상황들도 없었고, 자신도 없었고, 그럴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교회 개척이라는 것은 별로 생각 안하고 살았던 겁니다.

그러던 2012년 6월 특별새벽기도회 기간 중에 제가 섬기던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갑자기 “교회개척은 돈 갖고 하는 거 아닙니다. 돈하고 씨름하려고 하지 말고 믿음과 씨름 하세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그 때까지 제가 믿음이 너무 없었던 겁니다. 목사가 너무 세속적으로 변해서 돈이 있어야 개척하고, 개척멤버가 있어야 개척하고, 어떤 스폰서가 있어야 개척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믿음으로 싸울 생각은 안 하고 어디에서 돈 나올 때 있으면 개척하고 없으면 안 하고…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믿음의 싸움을 할 생각은 안 하고, 이런 계산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졌고,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투를 준비하면서 군사를 모았습니다. 그랬더니 32,000명이 싸우겠다고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고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22,000명이 돌아갔고, 남은 사람은 10,0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숫자도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엔 힘든 군사훈련을 시키다가 물가에 내려가서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목말라 얼굴을 개울물에 쳐박고 개처럼 핥는 자와 한쪽 무릎을 꿇고 경계하면서 손으로 물을 움켜 마신 자를 분리하게 했는데, 그 테스트를 통해 남은 사람이 300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머지는 다 돌려보내고 최정예 멤버는 딱 300명이 남은 겁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싸워야 할 미디안 군대는 무려 135,000명이었습니다.

그러면 300 대 135,000 즉 ‘450 : 1’의 엄청난 싸움, 불가능한 전쟁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전력적으로 싸워봐야 질게 뻔한 전쟁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기드온의 300용사는 이 엄청난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이것은 군사력의 싸움이 아니라 믿음의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스가랴서 4장 6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우리 학생들은 세부에 공부하러 왔고, 우리 성도들은 자녀들을 위해 오거나, 여기서 인생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왔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겠지만, 때로는 우리의 힘으로 능력으로 안 되는 것도 많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참 많습니다. 우리의 한계를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안 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이 믿음의 싸움을 하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싸우는 믿음의 영웅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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