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주 안에 서라”

<빌립보서 4:1~7> 

 

 

 

 

서양 최초의 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을 통해 건설된 ‘헬라제국(BC 334~BC 323)’입니다. 알렉산더는 부왕이 암살되자, 20살의 나이에 고대 그리스 북부 지방인 마게도냐의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는 왕위에 올라 지금의 터키인 소아시아에 군림하던 페르시아 제국을 침공하면서 10년에 걸친 대 원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세계의 끝’을 보겠다는 열망 하나로 터키와 시리아와 이스라엘 그리고 더 남쪽으로는 이집트까지, 다시 북으로 올라가 페르시아 제국 전체를 정복하고, 인도의 동북부까지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10년의 정복전쟁에 지쳐있었던 병사들의 반발로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고, 바벨론에 머무르는 동안 열병에 걸려 서른세 살의 나이에 죽게 됩니다.

알렉산더는 가는 곳마다 그리스 헬라의 언어와 철학과 문화와 예술과 같은 우수한 문명을 함께 가지고 갔습니다. 이걸 헬레니즘이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제국의 사람들이 헬라어를 쓰게 했고, 그래서 신약성경이 헬라어로 기록된 것입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는 로마제국 아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헬라어를 그 때까지 사용할 정도로 헬레니즘의 영향은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입니다.

 

 

알렉산더가 너무나 허무하고 갑작스럽게 죽자 그의 부하 장군들이 자신이 알렉산더의 후계자라고 자처하면서 헬라제국은 수십 년간의 내전을 치르게 되고, 헬라제국은 4개로 분열되게 됩니다. 만약 알렉산더가 더 오래 살아 헬라제국이 분열되지 않고 더 오래토록 존속하게 되었다면 헬라의 영향력은 더욱 더 엄청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니엘서 11장 4절(쉬운성경) 말씀에 보면, 헬라제국과 알렉산더에 관한 예언이 나와 있습니다. 다니엘은 200여년 전에 이미 알렉산더의 등장과 헬라제국의 역사가 어떻게 될 지를 미리 예언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왕의 세력이 가장 강할 때에 그의 나라가 망하여 네 개의 나라로 나뉠 것이다. 그 나라가 뽑혀서 다른 백성에게 넘어갈 것이므로 그 나라는 더 이상 권세를 누리지 못하고 그 자손에게로 이어지지도 않게 된다.”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제국은 불과 11년 밖에 존속하지 못합니다. 그 짧은 시간에 알렉산더는 제국 안에 헬레니즘의 찬란한 문화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하지만 서양 최초의 제국이며, 당시까지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한 헬라제국은 그가 죽자마자 4개로 분열되어 그 세력을 잃고, BC 146년에는 로마제국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3:24, 25절에서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이겠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이념과 세대와 사회 계층 간의 분열 양상은 사실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나라를 위해 더욱 기도해야 할 때인 거 같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분열되는 것은 북한하고 일본 정부를 즐겁게 만드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어찌 그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있고,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기의 때마다 한 마음이 되어 일어섰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론이 분열되어 있으면 우리나라의 발전은 여기서 멈추게 될 수 있습니다.

나라뿐이겠습니까? 한 집안에서도 가족 간에 늘 다툼과 시비가 있어 보십시오. 그런 집안은 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교회 성도들이 한 마음이 되고, 목회자와 성도가 한 마음이 되어 주께서 그 교회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그 비전과 뜻을 이루어 갈 때, 그 교회 공동체가 든든히 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을 통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해 ‘주 안에 (굳게)서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주 안에 굳게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같은 마음을 품으라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주 안에 굳게 서기위해 가져야 할 첫 번째 교훈은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바울 사도가 특별히 이 서신에서 이름을 거론하며 권면하고 있는 것은 그들 사이에 있었던 문제가 매우 심각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교회를 반대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빌립보서 4장1절에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라고 말하고는 바로 이 두 여인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도 바울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교회의 지체들이며, 봉사자들이며, 충성스러운 일꾼들이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도 바울을 열심히 도와 복음을 위해 힘쓰던 눈에 띄는 봉사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이 둘 사이에 갈등과 분쟁이 생겨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분열이 되어 마음이 몹시 힘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 소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던 바울에게까지 들렸을 정도로 빌립보 교회의 충성스런 두 여성 봉사자의 문제는 걱정스러운 문제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개척해서 세우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세운 바울은 당장이라도 빌립보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에바브로디도 편에 이 빌립보서를 보내면서 이 두 사람의 화해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충성스런 일꾼들의 분열은 교회의 분열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열심히 섬기는 사람이라면 그 주변에는 마음을 같이 한 여러 성도들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 두 사람의 마음이 분열되고, 세 사람의 마음이 분열되면 그것은 두 사람, 세 사람이 아니라 그들과 마음을 같이 한 사람들과 함께 교회는 두 덩어리, 세 덩어리로 분열되는 양상을 띄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우리교회에 등록하신 것은 우리교회가 좋아서 등록하셨을 겁니다. 말씀이 좋고, 찬양이 좋고, 교회 분위기가 좋고, 성도들이 좋고… 분명 여러 가지가 좋았기 때문에 교회에 등록해서 신앙생활을 함께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열심히 예배 참석하고 더 나아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봉사하기까지 하시는 겁니다.

아무 문제도 없이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귀는 우리 사이를 분열시키려고 할 겁니다. 서로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말 한 마디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자녀 문제 때문에 서로에 대해 미운 마음까지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둘 사이에 시험이 온 겁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이런 문제들이 생기면 그냥 교회를 멀리하는데 그것은 좋은 해결방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생을 살면서 그 비슷한 문제는 종종 있을 거고, 그 때마다 피하며 살게 되면 평생을 그렇게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을 때, 그거 넘다가 다친다고 괜히 그거 넘다가 넘어진다고… 피하거나 돌아가며 살면 평생 그런 장애물은 넘을 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처음부터 높은 장애물을 넘을 수는 없겠지만 내 앞에 있는 장애물을 하나씩 넘다보면 어느 순간 나는 더 높은 것도 너끈히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생활이 바로 그런 걸 훈련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사랑해서 만나 결혼까지 한 부부도 생활하면서 마음을 맞혀간다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맞춰가기 시작하면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2절, 3절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기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 즉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그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높아지면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상대를 존중해 주시고, 그 입장에서도 생각해 주시고, 그렇게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면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것은 아주 중요한 훈련인 것입니다. 높은 데 마음을 둔 사람, 늘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낮춰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제대로 섬기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교만한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영적 태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도 겸손합니다. 말씀이 그렇다면 그렇게 믿고 그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타인을 비난한다. 그런 사람은 오직 타인의 그릇된 것만을 인정한다. 그럼으로써 그 사람 자신의 욕망과 죄는 점점 더 커지는 것이다”

주 안에 서는 첫 번째는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겸손할 때 가능해 질 수 있습니다. 겸손하지 못한 것은 언제나 죄의 덩치만 불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주 안에 굳게 서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기쁨을 잃지 말라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고 우리 교회 공동체가 주 안에 굳게 서기 위해 필요한 두 번째 교훈은 ‘기쁨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 사도는 지금 이 빌립보서를 감옥에 갇혀서 쓰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이 도리어 감옥 밖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빌립보 성도들을 위로하고 있는 겁니다.

바울 사도가 기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기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가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우리가 주 안에 있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까지 보시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기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억지로 쥐어 짜내서 기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 안에 있는 사람들의 특권이고, 주 안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에서 근거하는 것입니다. 18절 하반절에서 ‘이는(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주 안에 있으면, 여기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로마서 8장 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지금의 상황이 좋건 혹은 나쁘건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 있을 때, 우리를 향한 주님의 선하신 플랜은 지금도 이뤄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었지만 그 때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요셉이 형통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주 안에 있다면 지금의 이 상황과 조건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지금의 현상에 집중하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 살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또는 우리 자녀에게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 학생들도 여기서 공부하면서 한국과 달리 여기서만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들고 어려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모든 상황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선하신 플랜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상황이 나를 끝장낼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미래와 우리의 삶과 우리의 가정과 자녀와 생업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탄은 여러 가지 안 좋은 상황들로 여러분에게서 기쁨을 빼앗으려 시도할 것입니다. 세부에 와서 교회 때문에 너무 행복하고, 퍽퍽한 이민생활과 유학생활에서 신앙생활을 통해 받는 위로하심이 컸었는데… 어느 순간 사탄은 여러분 안에 있는 그 기쁨을 빼앗으려 할 것입니다.

교회 오는 게 행복하고, 기도할 때마다 위로가 되고, 다른 성도들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세부 생활에서 용기를 얻게 되고, 그래도 세부 생활을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었는데, 여러 가지 시험으로 여러분 안에 있는 기쁨을 잃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러 나오는 것도 귀찮고, 봉사하는 것도 싫어지고, 예배 오는 것보다 유튜브를 보거나, 리조트에 놀러 가는 게 더 즐거워 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 여러분 안에 있는 하늘로부터 오는 진정한 기쁨들을 빼앗으려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기쁨, 주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잃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것을 대체할 기쁨을 찾느라 분주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의 만남 약속도 늘어나고, 안 마시던 술도 점점 늘게 되고, 예배하는 자리, 기도하는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엉뚱한 곳에 앉아있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세부는 영어 어학연수를 오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그 청년들 중에 한국에서 열심히 신앙생활했던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세부에 오면서 교회부터 찾는 청년들이 있는데, 그렇게 첫 주, 둘째 주 예배에 잘 참석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얼굴 보기가 어렵습니다. 어학연수기간 2달, 3달 동안 주일예배 빠지지 않고 나오는 청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보면 이 친구들이 주말에 어디 가 있었는지가 다 나옵니다. 관광지인 세부에 와서 놀러 다니느라 주님과는 자꾸 멀어지는 거 같습니다. 그러다 한국 돌아가기 전 주일에 와서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가는 학생들이 꽤 많습니다.

 

시편 16:11절에서 다윗은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다윗은 주님 안에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예수 예수 예수』라는 찬양의 첫 구절은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그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라는 기도로 시작합니다. 주 안에 굳게 서기 위해서는 주님 안에 있는 기쁨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3. 기도를 쉬지 말라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 공동체가 주 안에 굳건히 서기 위해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6절 말씀을 보시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러 가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염려케 할 만한 일들은 우리의 인생 속에 늘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 공동체가 은혜롭고 충만하지만, 우리 교회에도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 성도들이 시험 들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주 안에 굳게 서기 위해서 필수로 해야 할 것이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우리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로 부르셨는데, 나는 목사가 그 교회 목회자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가 ‘성도들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힘들 때마다 그걸 제가 쫓아다니면서 어떻게 다 위로해 드리고, 다 해결해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성도들이 소수일 때는 가능하겠죠. 하지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위로의 말도, 도와 드릴 수 있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된다면 저는 걱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일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서 늘 바쁜 행사 중심의 교회가 되면 안 됩니다. 교회의 행사라는 것은 ‘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의 훈련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때문에 우리 교회는 다른 행사가 많지 않습니다. 행사가 많다면 기도 프로그램이 가장 많습니다. 지난주와 이번 주는 『12시간 파수꾼 기도회』를 진행 중에 있고, 다음 주 11월 2일(토)부터는 교회설립 7주년 전까지 『120일 기도의 파수꾼』 기도회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11월 1일부터 21일까지는 『2019 다니엘 기도회』가 진행되게 됩니다.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인 ‘토플래디(Augustus M. Toplady, 1740~1778)’는 찬송가 494장 ‘만세 반석 열리니’를 지은 분이십니다. 이 찬송은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라는 가사로 시작합니다. 이 분이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조용히 문을 열고서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무릎을 꿇은 그리스도인은 천문학자보다 멀리 본다.”

 

기도 시간에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기도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는 성도는 모든 시험을 다 이겨낼 것입니다. 기도하는 교회 공동체는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변화시킬 교회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성도, 기도하는 교회 공동체는 주 안에 굳게 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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