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나는 오늘을 살리”

<누가복음 15:11~24> 

 

 

 

요즘 우리나라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데, 그 흔하던 편의점 알바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올해 8월, 중앙일보에서 [잡코리아×알바몬]의 자료를 인용해서 기사를 하나 냈습니다. 대학생과 올해 졸업한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24.7%에 달했습니다. 그러니깐 청년 4명 중 1명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올해 대학을 졸업해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취업준비생들 중에서는 무려 38.6%(청년 10명 중 4명)가 공무원 시험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는 겁니다. 더욱 놀라운 통계는 대학생 및 취준생 중에 ‘앞으로 준비할 의향이 있다’라고 대답한 학생은 무려 59.7%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 될 생각이 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불과 15.7%뿐이었습니다. 그러면 대학생 및 올해 대학을 졸업한 취업 준비생들 중에 약 85%에 이르는 청년들이 공무원이 될 생각을 갖고 있다는 기가 막힌 통계입니다.

공무원 되는 것이 안 좋다는 게 아니라, 공산국가도 아닌데 우리나라에 이렇게 공무원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청년들이 다양한 꿈을 꾸지 않고 안정적인 직업이라 여겨지는 공무원에 목을 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겁니다.

 

올해 한국일보 6월 6일 기사에 의하면, 청년들의 취업 스트레스로 인해서 20대 우울증 환자가 급증했는데,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20대 우울증 환자가 무려 87%나 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정신질환이라 할 수 있는 ‘20대 공황장애’는 무려 164%나 급증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청년들의 현주소인 것입니다. 이런 통계만 봐도 우리 청년들은 내일을 알 수 없고, 앞을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세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공황장애(恐慌障碍, panic disorder)’라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로 인해 생긴 정신질환인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가 걱정이 되는 겁니다. 이러다가 연애도 한 번 못해보고, 결혼도 못하고, 취업도 못하고 돈도 제대로 못 벌어보고, 자신만 인생의 실패자처럼 끝날 것 같은 불안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비단 취업을 앞둔 청년들의 문제만이겠습니까? 우리 청소년들도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몰라 두려울 것입니다. 성인들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청년들은 자기 앞길만 걱정하지만, 성인들은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근심과 걱정거리들이 있습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1. 주님보다 앞서지 말라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입니다.

아주 너그럽고 훌륭한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늘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아버지의 일을 묵묵히 잘 하던 아들이어서, 아버지가 그 아들을 보기만 해도 늘 흐뭇한 든든한 장남이었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천방지축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늘 개구 졌고, 자기가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은 떼를 써서라도 꼭 얻어내고야 마는 못 말리는 막내였습니다.

 

12절을 보시면,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무리한 요구를 했던 것입니다. 유산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자식들이 그 유산을 나누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그 유산을 미리 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에 섭섭함을 안겨드리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막무가내의 둘째 아들의 요구를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들어주었다는 얘기입니다.

왜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기를 원했을까요? 아버지의 울타리가 답답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아버지의 ‘하라, 하지마라’는 말들이 잔소리로 들려졌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구닥다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융통성 없이 꽉 막힌 노인네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고 싶었습니다. 유산만 미리 좀 받아서 독립하면 아버지 보다 훨씬 더 크게 성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부와 성공을 바탕으로 세상을 한 번 멋지게 살아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울타리가 답답하고 갑갑해 하루라도 빨리 뛰쳐나가고 싶지만, 사실 그 울타리만큼 안전하고 편안하고 평안한 곳은 없습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의 울타리에서는 아침마다 따뜻한 밥도 공급되고, 청소도, 세탁도 서비스를 받을 수가 있는 겁니다. 또 필요할 때 종종 필요한 용돈도 받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울타리를 벗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그 때부터 정말 모든 것을 내가 다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어찌되었건 뭐라도 먹어야 하니 대충대충 아침을 때우고 나갑니다. 직장 다녀와서는 또 저녁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고, 집 청소도, 빨래도… 집에 와서도 편히 쉴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외에 집 랜트비도 내가 내야하고, 전기세와 수도세, 인터넷비, 전화비 등등 지출되어야 할 돈이 왜 이리 많은지, 그러니 돈도 제대로 모여지지도 않고… 사실 이런 부분에 어느 정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립할 경우 후회할 만한 일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루라도 빨리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거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지만 우리는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우리의 생각과 뜻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주님보다 앞서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우리의 모든 문제들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워지고자 하는 자신들의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들의 욕망을 앞세웠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아담은 노동의 고통, 하와는 잉태의 수고를 안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애굽에서 데리고 온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는데, 결국 그 일은 아브라함 가정의 불화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아브라함이 후에 낳게 된 이삭의 후손과 이스마엘의 후손 사이에 영원한 원수관계로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육신의 정욕에 따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고, 그 일을 통해 결국 다윗의 아들들 사이에 끔찍한 비극과 폐륜이 이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절 말씀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주님의 뜻을 자신의 뜻보다 앞세우는 사람은 인간적인 욕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종’이고, 나는 소유권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주인이 하라는 것을 시행하는 청지기일 뿐인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죄를 낳고, 그 죄가 결국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정치인들의 문제든, 어떤 재벌들의 문제이든, 어떤 법조인들의 문제이든 심지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어떤 교회들의 문제이든… 인간의 욕망과 욕심을 앞세우지 않고, 오직 주님의 뜻을 앞세웠다면 과연 그런 문제들이 문제꺼리나 되었겠습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앞서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리는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은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기 시작할 것입니다.

 

2. 건강한 후회를 하라

 

우리의 욕심이 죄가 되고 그 죄로 인해 우리는 많은 문제들을 떠안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실수합니다. 실패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우리가 후회할 만한 많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되돌리고 싶지만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한 번 탑을 쌓는 일은 많은 공이 들어가지만, 그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인 것과 같이 우리의 무너진 삶이 다시 회복된다는 것은 쉽지 않기도 합니다.

 

13절 말씀을 보시면,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유산을 먼저 받아낸 둘째 아들은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그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게 생활하다가 한 순간에 유산으로 받은 모든 재산을 다 낭비하게 됩니다. 나중엔 먹을 것을 걱정할 신세가 되어, 농장에서 돼지를 치며 끼니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것으로 배를 채우려고 할 비참한 지경에 놓여지게 됩니다.

 

17절 말씀을 보시면,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이 구절의 상반절을 쉬운성경에서는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 말했다. …” 둘째 아들은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음식을 뒤적거릴 때,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의 품꾼들에게는 양식이 풍족하여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둘째 아들은 지나간 과거와 자신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유산을 받아 가지고 나온 일들이 너무 후회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후회할 거 같으면 후회할 짓을 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서 후회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후회가 있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후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서 후회하고, 거기서 자신을 비관하고, 낙심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절망에 이르는 후회가 있습니다. 이런 후회는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한 후회라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7:10절 말씀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여기서 두 가지 후회를 말하고 있는데, 하반절에 나오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은 그 후회를 통해 절망에 빠져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이것은 건강한 후회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근심과 후회는 결국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게 하여, 우리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건강한 후회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머레이(Christopher Murray, 1957~)’ 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후회는 수술을 하는 것과 같다. 마음의 더러운 조직을 잘라 내기 때문이다.”

건강한 후회는 우리를 병들게 했던 암 조직을 잘라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하고, 잘못 판단하고, 후회할 만한 짓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하지만 탕자가 후회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을 결단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건강한 후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후회를 통해 좌절하고, 비관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전의 모든 죄들을 끊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변화될 것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3.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면목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집을 떠났었기 때문에 그 아버지를 다시 뵌다는 것이 도저히 면목이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18절과 19절을 보시면,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아들이 아닌 품꾼 중에 하나로 받아달라고 부탁하려 했습니다. 그래도 돼지가 먹는 음식을 뒤져먹는 비참한 지금의 현실보다 그것이 나을 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20절입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게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아직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이런 태도와 자세와 모습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용기가 필요한 겁니다. 아버지가 날 받아주지 않을 거 같고, 과거의 잘못 때문에 내게 크게 역정을 내실 거 같고, 그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어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나는 새로워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의 모습과 태도와 신앙과 믿음과 마음에 문제가 있고, 영적으로 병들어 있다고 느껴져서 용기를 내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달려 나와 우리를 안아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든지, 여러분이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여러분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행했는지… 주님은 묻지 않으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기회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으로 실수하고, 실패하고, 내 잘못으로 또는 여러 가지 인생의 문제들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한 젊은 날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오늘을 살리』 라는 찬양의 가사를 보면,

빛이 없는 바다에 홀로 남겨진 채로

나는 주를 바라네 예수 내 손 잡아 주시네

빛으로 오신 그가 내 삶 밝혀주시네

나는 주를 따르리 내 평생 주 사랑하리라

세상은 날 버리고 소망 하나 없어도

나의 사랑 주 사랑 난 안아 주시네

그가 함께하시니 나는 오늘을 살리

나의 모든 소망 오직 주 예수

 

나의 실수이든, 나의 실패의 문제이든, 내 인생 속의 막막함과 캄캄함 속에서도 빛이신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날 버리고 소망 하나 없어도 주님은 날 안아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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