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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를 품은 질그릇”

<고린도후서 4:7~10>

 

 

 

제가 필리핀 세부에 오면서 가까운 집사님 한 분의 소개로 안양에 있는 『샘 병원』이란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선교사들의 의료비를 할인해 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가서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이 병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 2층에 가면 휴게실 옆에 『히스빈스(HISBEANS COFFEE)』라는 커피숍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커피숍을 처음 봤을 때, 한국에 워낙 커피전문점이 많이 생기니깐 그런 것들 중에 또 다른 하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마닐라 쪽에서 『2019 필리핀 코스타』가 있어서 우리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고 왔는데, 이번 코스타 집회 중에 이 커피 전문점에 대한 히스토리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주목받아오고 있는 회사였는데, 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겁니다.

이 회사는 11년 전인 2008년 한동대학교의 몇몇의 대학생들에 의해서 『향기 내는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창립되었습니다. 자본금 한 푼 없는 대학생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 하나 붙들고, 1년 동안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며 사업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드디어 『히스빈스 커피』 1호점(2009년)을 자신의 모교며 기독교 명문 사립인 포항의 한동대학교 내에 오픈했는데, 학교 밖에 있었던 스타벅스 커피 보다 더 큰 매출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0년 동안 히스빈스 커피는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 나갔습니다.

2019년 최근 필리핀 마닐라에 1호점을 오픈하면서 히스빈스 커피는 18호점을 열었습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 매장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들이 대부분 장애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회사는 커피전문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커피 로스팅 공장과 장애인 고용 솔루션 컨설팅, 가상현실 장애인 직업훈련 키트 개발 및 교육, 히스빈스 디저트, 재료 유통업, 비영리 장애인 지원 활동까지 여러 사업과 봉사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엄청난 일들을 하는데 ‘장애인 직원 비율이 무려 70~80%’에 육박한다는 겁니다.

또한 ‘장애인 직업유지비율’이 대한민국의 경우 18.3%이고, OECD평균이 50%라고 합니다. 그런데 히스빈스의 경우 95%에 이르고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장애인 직업 유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대표는 30대 중반의 ‘임정택’ 씨입니다. 군대를 다녀와 대학 2학년생이던 그는 경영과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학교를 졸업한 후 과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일을 해야 할 지를 늘 고민하며 지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인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는 말씀 때문에, 무작정 학교 기숙사에서 나가서 그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누군지를 찾아 나섰다는 겁니다. 그러다 정신장애를 안고 있는 복지시설들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던 100여명의 장애인들과 6개월 동안 친구가 되어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다 그 분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그 분들에게 ‘선생님은 뭐를 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는데, 상당수의 분들이 바리스타를 하고 싶어 하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즈음에 ‘커피프린스 1호점’이란 드라마가 꽤 인기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런 분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분들에게 직업의 기회를 주고 싶었고, 그들이 바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당시 스물다섯 살의 임정택 학생은 친구 몇 명과 함께 돈 한푼 없이 그 일을 하기로 시작하고, 매일 두 시간씩 친구들과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적을 일으켜 주시길 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히스빈스라는 사업계획서를 꼼꼼하게 준비해서 포항의 포스코에 무작정 찾아가 그 회사의 ‘사회공헌예산’ 1억여 원을 받아내 결국 ‘히스빈스 커피 1호점’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매니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바리스타와 직원들은 장애를 갖고 있었던 분들을 훈련해서 채용하고, 지금도 이 회사의 여러 계열사들 직원들까지도 장애인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꿈도 비전도 없었던 대학 2학년 학생 하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고, 아직 공부도 끝나지 않았고, 부모님께 매달 25만원씩 용돈 받는 게 전부였기에 자본금 하나 없었지만, 그 말씀 붙들고 무작정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놀라운 일들이 진행되고 있고, 대한민국이 주목하고 있는 청년 사업가로, 미국의 메릴랜드 주립대 등에서 이 사례를 연구할 정도로 대단히 혁신적인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4장 7절을 보시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싸구려 질그릇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천한 질그릇 안에 ‘보배(보물)’을 품고 있다면, 그 질그릇은 더 이상 하찮고 비천한 싸구려 질그릇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예수께서 여러분의 능력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혜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적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예수의 능력인 것입니다. 보배이신 예수를 여러분 안에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보배를 품은 질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구절에 보면 ‘심히 큰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 그 심히 큰 능력에는 어떤 능력이 나타날까요? 짧게 두 가지만 나눠 보시겠습니다.

 

1. 모든 시련을 이긴다

시련이라는 것은 많이 배웠거나 배움이 적거나, 많이 가졌거나 그렇지 않거나, 건강하거나 약하거나, 능력이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시련을 이기고, 누군가는 그 시련 앞에 해변에 쌓은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기도 합니다.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누가 시련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많이 배운 사람입니까? 많이 못 배운 사람입니까? 많이 가진 자가 시련을 이기나요? 아니면 가난한 사람이 잘 이겨낼 수 있나요?… 이런 것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여러 가지 외적인 조건 같은 것들의 많고 적음이 시련을 극복하고 못하고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시련의 극복여부는 누구든 시련을 이겨낼 만한 내면의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부자라고 해서 자신에게 찾아온 시련을 이겨내는 게 아닙니다. 내가 많이 배웠고, 많은 것들을 갖고 있다고 해서 시련을 이겨내는 게 아닙니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시련 앞에서도 의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시련을 극복해 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은 최초의 선교사로서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역을 집중하여 전도여행을 다녔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가는 곳마다 환영 받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시 마다 복음을 거부하고, 거부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복음전도사역을 대적하고 더 나아가 바울을 핍박하고 죽이려 했던 일들은 셀 수 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NIV 영어번역에 보니깐 ‘We are hard pressed on every side’라고 되어 있는데, 조금도 빠져나갈 틈도 없는 심각한 압박과 억압과 답답한 일을 겪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그 모든 시련도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9절도 보시면,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8절에서는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부분에서의 심각한 압박이 있었던 것이라면, 9절에서는 육체적으로, 외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괴롭힘과 박해를 받았던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적자들은 사도 바울과 전도단 일행을 거꾸러뜨리기까지 했지만,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 일행은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부분에 있어서 엄청난 스트레스와 불안과 공포를 느낄 만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적인 부분, 육체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박해라고 할 만한 심각한 죽음의 위협들을 당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내적이고, 외적인 모든 부분에 있어서 엄청난 시련 속에 있었지만 그것을 견디어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7절에서 읽었던 바와 같이 그들은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연약한 질그릇 안에 모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쉽게 깨지기도 하고, 질그릇처럼 보잘 것 없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울 일행은 보배이신 예수께서 함께 하시니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야서 40:30절, 31절에 보시면,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많이 배웠어도, 건강해도, 돈이 많아도, 재능과 능력이 많아도… 사람이 얼마나 약합니까? 그리고 그런 게 많아도 그런 사람들이 시련을 잘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면이 단단한 사람은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그 내면에서부터 새 힘이 임하는 것입니다.

 

– 시련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 가난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 실패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 열등감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 자존심이 상해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 물질적인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 모든 염려와 불안함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는 지치지 않고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 그의 마음은 믿음으로 단단해져 있는 것입니다.

– 그는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 가지 문제들이 여러분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러나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십시오. 여러분의 미래도, 진로도, 물질적인 문제도, 열등감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이겨내게 될 것입니다.

 

 

보통 피겨 퀸인 대한민국의 김연아 선수와 일본의 아사다마오 선수는 현역시절 내내 라이벌이었습니다. 아사다 마오 선수는 김연아 선수만큼 뛰어난 최고의 선수였고, 심지어 주니어 무대에서는 김연아 선수보다 높은 실력으로 평가되던 일본의 기대주였습니다.

그런데 아사다 마오 선수가 평상시에 잘 하다가 큰 경기에서는 흔들리거나 실수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는 큰 경기 앞에서도 준비한 것들을 멋지게 해 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연아 선수에게는 ‘맨달 갑’이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아사다 마오 선수에게는 ‘두부 맨탈’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었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자서전인 『김연아의 7분 드라마』에 보면 이 선수가 왜 멘탈 갑인지를 엿볼 수 있는 멋진 표현이 하나 나옵니다.

“내가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대상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나’였던 것이다.”

우리 외부에 있는 문제와 나를 힘들게 하는 시련들이 있겠지만, 그 전에 수도 없이 나를 넘어뜨리려고 하고, 낙심케 하기도 하는 내 안의 무수한 ‘나’라는 존재를 극복하는 사람은 불가능 한 게 없는 것입니다. 우리 청소년부에서도 중학생이 맘먹고 다이어트를 해서 36kg을 감량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극복하는 사람은 앞으로 대상과 목표만 바꾸어 한다면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걸 뭘 못하겠습니까? 자기를 극복한 사람은 앞으로 더 많은 기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4:13절 말씀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는 질그릇처럼 깨지기 쉽고 약한 보잘 것 없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가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안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무한한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시련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부활의 능력으로 산다

우리 안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숨 쉬고 역사하실 때, 우리는 모든 시련을 이길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 10절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의 희생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죽음을 늘 믿고, 기리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그 존재적인 믿음만을 갖고 있다면 그는 반쪽짜리 믿음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처럼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것처럼, 그 십자가 사건을 믿는 사람은 그의 죄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때문에 이 믿음은 예수의 죽음과 함께 그의 죄도 함께 심판을 받았기에 그의 모든 죄가 죽은 겁니다. 그의 모든 죄가 이미 벌을 받은 겁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구원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의 하반절에서 그렇게 예수의 죽음을 짊어진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나타나느냐 하면 ‘예수의 생명’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그 부활의 생명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극복하시고 부활하신 것이 부활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도 부활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죽음만큼 강한 게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들은 그 죽음만큼 강력한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 너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

– 너는 다시 일어날 수 없다!

– 너는 실패했다!

– 너는 이제 끝났다!

– 너는 실패자다!

– 너는 망했다!

 

라고 세상은 우리에게 말하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무덤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과 같이, 그 부활의 능력이신 예수라는 보배를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떤 실패 속에서도, 어떤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8절에 보시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은 여러분이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시 시작하고 도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재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서른여덟 살의 늦은 나이에 결혼한 ‘나다니엘(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이란 청교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가난에 매우 쪼들렸었습니다. 그나마 다니던 세관에서 근무하다 해고되게 되었는데, 남자는 그 사실을 부인에게 말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고민 끝에 해고된 사실을 부인에게 어렵게 말하게 됩니다. 그랬더니 그의 지혜로운 부인은 “난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어요. 당신은 재능이 있어요.”라고 격려합니다. 하지만 남자는 “(글쓰기는) 돈벌이를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생활을 유지해야 할지 걱정이오”라고 하자, 부인은 그 동안 조금씩 모아온 돈이 있으니 당분간 돈 걱정하지 말고 글 쓰는 데에만 집중하라고 하는 겁니다. 남편은 고마운 마음에 열심히 글을 썼고, 부인은 남편을 위해 열심히 기도로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발표한 첫 번째 작품이 세계적인 명작이 되어버린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위기와 시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안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있는 이들은 그 위기와 시련은 오히려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 능력으로 모든 시련을 이기고, 부활의 능력으로 날마다 승리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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