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감사의 인생”

<하박국 3:16~19> 

– 2019 추수감사절 –

 

 

30대 직장인에게 어머니에 대한 고마운 생각들을 5분간 들려줬습니다. 이 때 심장박동을 체크해 보니 심장박동이 규칙적으로 안정적이었고, 얼굴은 편안해 졌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자신을 자책하고, 누군가를 원망하라는 메시지를 5분간 들려줬습니다. 나를 화나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서서히 얼굴이 굳어지고, 심박 수가 증가하고, 뇌파에도 불규칙적인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왜 이런 변화들이 있나면, 우리의 뇌와 심장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뇌가 정보를 받아서 심장을 뛰게 하는 거 같지만, 사실은 뇌와 심장이 상호 정보들을 주고받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는 이것을 ‘신경심장학의 발견’이라고 말합니다. 신경심장학이란 것은 심장을 신경기관의 하나로 연구하는 학문분야를 말합니다. 그러니깐 쉽게 말해서 우리의 심장에도 뇌와 같은 신경이 있고, 그렇게 반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크게 화가 나는 일이 있고 마음이 불완전하고 감정이 진정이 되지 않고 그럴 때 큰 숨을 내시고 명상을 하거나 하면 약간 진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주환 교수는 ‘어떤 명상보다 어떤 즐거운 생각보다 사람의 몸과 마음과 호흡과 심장과 혈압과 뇌파 등등 모든 신체 기능을 완벽하게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훈련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겁니다.

이 감사하는 마음의 훈련은 ‘몸과 마음을 가장 편안하고 이상적인 상태로 유지시킨다’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의 훈련을 하게 될 때, 심장 박동과 호흡이 안정이 되고, 혈압과 뇌파 등도 규칙적이고 안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 헨리(John Henry)라는 사람은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감사하며 살 때 몸에 있는 큰 질병들까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3대 절기는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인데, 이것은 모두 추수와 관계가 있습니다(출23:16). 그 중에 마지막에 지키는 것이 ‘수장절’인데, 이 절기는 한 해의 모든 추수를 끝내고 그것을 저장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연중에 상반기의 추수를 마쳤다는 의미로 7월 첫 번째 주를 ‘맥추감사절’로 지키고, 11월 셋째 주를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30년간의 애굽 노예생활 그리고 출애굽 이후 40년간의 광야생활을 할 때 그들에게 추수의 기쁨이란 게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 땅에서 곡식을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추수를 할 때 내가 잘나서도 아니고, 내 능력이 커서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가장 큰 관심거리 중에 하나가 ‘먹고 사는 문제’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부모가 자녀의 먹거리를 늘 챙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살피시고, 돌보시고, 공급하시고, 채워주시는 그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 환경을 넘어서 감사하라

하박국 선지자는 남유다 왕국의 몰락기에 활동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신흥 바벨론 제국은 점점 그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고, 남유다 왕국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박국 선지자의 조국은 점점 몰락의 길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16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하박국은 자신의 창자가 흔들렸고, 목소리와 입술이 떨리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재앙의 날이 가까이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그 환난의 날을 환상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뼈가 썩는 것 같고, 온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을 정도로 그 재앙은 무시무시했습니다.

 

17절을 보시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전쟁은 잔인무도합니다. 모든 생명도 안전치 못하고, 모든 곡식과 과일과 가축과 재산도 약탈될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잃게 될 것입니다.

이 구절을 중심으로 만든 찬양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는 얼마나 경쾌하게 부릅니까? 하지만 사실 이게 현실이라면 이 노래는 절대 그렇게 신나게 부를 수가 없을 겁니다.

당시 농업과 목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거둘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이것을 요즘 말로 하면 학생들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이 하나도 안 오른 겁니다. 안 오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바닥으로 떨어진 겁니다. 우리 성도들 열심히 직장 생활했는데 회사에서 월급을 안 주는 겁니다. 우리 기업하시는 분들이 잠도 안 자고 열심히 일했는데 수입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오히려 점점 빚이 늘어만 가는 겁니다. 이럴 때 이 찬양처럼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여호와를 즐거워하리’ 이게 되겠습니까? 쉽지 않은 겁니다.

사람은 좋은 환경을 만나면 감사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시련과 고난 속에서는 쉽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좋은 환경을 만나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감사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만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요즘 [2019 다니엘 기도회] 중에 있는데, 지난주일 저녁에 간증자로 나선 분은 다큐멘터리 영화 『교회오빠』의 주인공인 故이관희 집사의 아내 ‘오은주 집사님’이었습니다. 오 집사님이 딸아이를 출산할 때 남편 이관희 집사는 대장암 4기에 걸린 겁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3년간 투병생활이 시작되는데, 이관희 집사님은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사이에 이 집사님의 어머니는 아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고, 아내 오은주 집사마저 혈액암 4기 판정을 받고 함께 암 투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고난이 와도 이렇게 한꺼번에 이 한 사람에게 왔는지, 사람들은 그를 현대판 욥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없었습니다. 보통의 간증자들의 간증은 ‘그런 죽을병에 걸렸었는데, 하나님이 치료해줬다…’ 그렇게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신실한 믿음으로 투병했던 이관희 집사님에게는 반전이 없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사람들은 ‘기도해도 소용없네. 예수 믿어도 별거 없네. 교회 다녀도 별거 없네…’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故이관희 집사님이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눈부신 삶을 사는 사람도 증거로 삼으시기도 하지만, 고통 속에서 주님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을 통해서도 증거로 삼으신다.”

 

눈에 보여 지는 좋은 환경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환경 속에서도, 그 환경을 넘어 감사하는 것은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들은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해 풀무 불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풀무 불에서 반드시 건져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믿음의 말 뒤에 어떤 말을 덧붙입니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들 역시 환경을 넘어 감사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올해 여러분들의 삶 속에 눈에 보여 지는 풍성한 축복이 있는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뜻하지 않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고난을 겪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앞이 막막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랫동안 준비했던 일들에 도전했는데 실패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주일에 감사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과 환경 속에서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감사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관희 집사님처럼, 욥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들과 같이 그리고 오늘 본문의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환경을 넘어 믿음으로 감사하는 진정한 감사의 인생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2.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라

저희 딸과 아들이 네 살, 두 살이었을 때 우리 네 식구는 영등포구의 신길동이란 동네의 작은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교육전도사 생활을 하면서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였기 때문에 아주 적은 돈을 갖고 한 달을 생활했었습니다.

가난했지만 천사 같은 두 아이를 주신 것으로 인해 감사하고, 아이들 손을 잡고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그 때 인형 뽑기가 한참 유행했었는데 어쩌다 뽑힌 싸구려 인형을 들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집 앞에 쌀 한 줌을 뿌려 놓으면 여지없이 날아와 그 쌀알들을 쪼아 먹는 참새 떼를 보며 아이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추운 겨울에도 아이들을 이불에 싸서 함께 새벽기도회에 가기도 했고, 그 좁은 방에 발 냄새 풀풀 풍기는 청소년들, 청년들을 데려다가 떡볶이를 해 주며 깔깔대며 즐거워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때는 경제적으로 정말 너무 힘들고 어렵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과 관계없이 참 행복했었던 겁니다. 저 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런 기억과 추억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어느 날 우리 집에서 3분 거리에 모교회의 청년부 선배가 우리 동네에다가 옷가게를 하나 오픈했습니다. 그 때는 교회 집사님이 되어 있었는데, 오고가며 종종 인사도 나누고 교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집사님의 얼굴 표정이 너무 안 좋은 겁니다. 집에 무슨 큰 일이 일어난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물었더니 주식이 떨어졌다는 겁니다. 이 집사님이 주식거래를 했었는데 그 주식이 폭락한 겁니다. 이렇게 지켜보니깐 주식이 오르면 싱글벙글했다가 떨어지면 세상 다 잃은 표정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깐 이 집사님의 행복은 주식이 오르고 내리는 거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거였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여러분의 행복의 기준이 됩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의 하박국 선지자를 보니깐 그는 행복의 기준이 이 세상의 외적인 어떤 환경과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17절 말씀을 이미 나눴지만 무화과나무가 마르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게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그는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보시면,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세상적인 기준, 눈에 보여 지는 어떤 환경과 조건과 상황들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기준이 하나님께 있었던 것입니다. 기쁨의 근원(뿌리, 이유)도 하나님이고, 지금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상황 속에서도 구원하실, 일으켜 세워주실 하나님을 믿으며 기뻐할 수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일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계신 송태근 목사님이 옥한흠 목사님의 생전에 있었던 일화를 설교 중에 하나 소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건강하게 부흥하는 교회를 목회하시고, 존경 받고 계신 옥한흠 목사님께 송 목사님은 후배목회자로서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셨습니다.

“목사님, 목회자로서 제일 행복할 때가 언제 입니까?”

그랬더니 옥 목사님께 의외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나 같은 죄인이 구원 받아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네”

송 목사님은 자신 같았으면 교회가 부흥하고, 성도들에게 어떤 열매들이 나타나고…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의외의 말씀에 적잖게 놀라셨답니다.

그래서 송 목사님은 “그러면 교회가 성장하고 성도들에게 열매가 나타나고 하는 것은 행복의 요인은 아닙니까?”하고 다시 물으셨습니다. 옥 목사님도 ‘왜 좋기야 좋지. 그걸 싫어할 목회자가 어디 있겠나?’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되물으시더랍니다.

 

 

“송 목사, 그러면 열매가 안 나타나면 어떻게 할 건가? 열매가 안 나타날 수도 있지, 그 목회는 실패한 건가?”

하시더랍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스테반의 순교 장면이 나옵니다. 전도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순교했다면 그는 실패한 건가요? 우리 조선의 최초의 선교사로 오신 토마스 선교사님은 대동강변에 성경책 하나 던지시고, 목이 베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도 실패한 건가요?

사람들은 늘 외적인 기준을 갖고,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 얼마나 좋은 대학에 들어갔느냐? 얼마나 크게 성공했느냐? 이런 거에 관심이 있습니다. 늘 기준을 그런 외적인 것에 두고 있으면 그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많던 돈이 어느 순간 날아가 버리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가 어느 날 그 성공의 지위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 때부터 그는 지옥 같은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고, 우리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못 들어가면 실패한 인생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37:4절 말씀에서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그 행복의 기준, 성공의 기준을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두고 살기 시작하면 그는 어떤 상황과 환경과 관계없이 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십시오. 즐거워하는 것은 늘 가까이 두고 싶은 겁니다. 재밌는 예능 프로나 드라마를 챙겨보기도 하고, 신나는 컴퓨터 게임을 자주 하면 거기서 얻게 되는 기쁨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즐거워하시면 그 하나님께로부터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과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즐거워했던 다윗은 그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었던 것입니다.

 

3. 내일의 소망을 잃지말라

마지막으로 늘 감사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서 내일의 소망을 잃지 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19절 말씀을 보시면,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이 세상의 물질과 성공과 환경 등을 통해서 힘을 얻는 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는 이들은 마치 빠른 발을 갖고 들판을 뛰어다니는 사슴과 같다고 하박국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험하고 가파른 산악이라 할지라도 사슴들은 빠른 발로 여기저기를 힘차게 뛰어 다닙니다.

분명 우리의 삶에는 여러 가지 시련과 고난이 있지만 여호와를 자신의 힘으로 삼는 이들은 그 사슴처럼 험난한 시련들을 헤쳐 나갈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서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오늘 추수감사주일이지만 올 한해가 어떤 분에게는 너무나도 힘겹고 어려운 시간들이었을 것입니다. 정작 하나님께 올 한 해의 추수와 은혜를 생각하며 풍성한 감사와 예물을 올려드리고 싶지만, 지금의 형편들을 생각하면 감사가 잘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독실한 크리스천 개그우먼 이성미 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금이라는 것이 용광로에서 뜨거울 때는 불덩어리이지만, 식어지면 정금이 된다”

 

금광석이 용광로 안에서 녹아져 불덩어리 상태일 때는 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불덩어리가 식어지면 순수한 정금이 되어 사람들의 손에 들려진 보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즘 다니엘 기도회를 참석하면서 엄청난 기적적인 역사들을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며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항상 그렇게 불덩어리와 같은 간증만 있는 게 아닙니다. 때로는 식어진 사람과 같고, 아무 반전도 없고, 어떤 기적적인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앞에서 잠시 언급한 이관희 집사님과 같이 3년 간의 암 투병 중에서도 변함없이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다 그렇게 주님 앞에 가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의 찬양과 같이 ‘나의 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 같이 나아 오리다’ 지금 여러분은 용광로 같은 시험을 지나 정금으로 준비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일의 소망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기회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감사의 인생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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