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0:1~11>
기복신앙(祈福信仰)과 기독교의 참된 신앙과의 차이를 간단히 말하면 ‘기복신앙은 초점이 자기 자신에게 맞춰져 있고, 참된 신앙은 그 신앙의 초점이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에 맞춰져 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기복신앙은 한자로도 ‘빌 기(祈)’자에 ‘복 복(福)’자를 쓰고 있어서 그냥 복을 비는 겁니다. 기복신앙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신앙과 종교 그리고 신(神)을 이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복신앙은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참된 신앙은 나를 끌어다가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에 맞춰가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에 나를 비춰보니 잘못된 부분이 드러나고, 고쳐야 할 것이 보이면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복신앙과 달리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춰가는 생활이 진정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때문에 참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될 때 그의 삶은 달라지 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겁니다. 생각과 태도와 말투와 표정과 행동과 가치와 꿈과 비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내는 삶이 주님을 따르는 진짜 믿음 생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여섯 번째 천사의 나팔과 일곱 번째 천사의 나팔 사이에 벌어질 사건입니다. 1절과 2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거기서 ‘힘 센 다른 천사’가 등장을 하는데, 사도 요한은 이 천사를 묘사하기를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머리에는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와 같고, 그 발은 불기둥과 같고, 손에는 펼쳐진 두루마리가 들려져 있고,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있고 왼발은 땅을 밟고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사들 중에 어떤 큰 권세를 갖고 있는 우두머리 천사 중에 하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6절을 보시면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그 천사는 천지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죄악 된 세상을 멸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실 때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체하지 아니하리니”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것이 참된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는 모든 눈물이 그 눈에서 씻겨 지며 위로와 축복의 때가 될 것이나, 믿지 않으며 불순종했던 자들에게는 저주와 책망과 큰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요한에게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리는데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과 10절을 보시면,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여기서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먹으라는 겁니다. 에스겔 3장 1~3절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그 두루마리를 먹었더니 그것이 꿀 같이 달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119편103절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요한은 꿀 같이 단 말씀의 두루마리를 먹은 후에 내 속에서는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레미야 15;16절, 시편119편103절, 에스겔3:1~3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꿀과 같습니다. 그 말씀으로 위로와 힘을 얻기도 하고, 약속과 축복을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 말씀이 심판의 말씀으로 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주님을 멀리 떠난 이들에게는 쓰디 쓴 저주와 심판으로 임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말씀은 인생의 쓴 맛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경 속에 있는 축복과 약속의 말씀들을 들으면 소망이 없던 이들도 다시 힘이 솟아 재기할 꿀과 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기복신앙인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달고 좋은 말씀만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영광 이전에 책임과 의무가 있듯이,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 안에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살아내야 할 삶은 결코 가볍지 않고, 때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십자가를 져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 말씀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를 원하는 자는 고난도 함께 받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작은 고난 앞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축복만 좋아하고 말씀으로 살아내야 할 믿음의 삶을 멀리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려워도 힘들어도 말씀으로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인을 맞은 진정한 144,000인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