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려갈 길”

<디모데후서 4:1~8> 

 

 

‘올림픽의 꽃’이라고 할 수 마라톤은 올림픽의 모든 경기가 끝나고 폐막식 직전에 스타디움에 가득한 관중들의 환호와 함께 피날레(Finale)를 장식합니다. 모든 경기가 사력을 다하겠지만,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야만 완주할 수 있는 경기입니다. 때문에 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풀코스를 완주한 마라토너들은 박수와 환호를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라톤 경기가 유래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도 나오는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오 왕은 BC.490년 지금의 터키 건너편에 있었던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사신을 보내 무조건 항복할 것을 권고합니다. 페르시아의 항복 요구에 화가 난 그리스 사람들은 그 사신을 우물 속에 넣어 버린 뒤 산채로 매장해 버립니다.

이에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오 왕은 전함 6백 척, 보병 10만 명 등의 실로 대규모 원정군을 조직해 아테네의 마라톤에 상륙시키게 됩니다. 아테네는 불과 1만 명의 군사로 페르시아 군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테네는 ‘페이디피데스’라는 사람을 용맹한 전사들이 많았던 동맹국인 스파르타에 사신으로 보내게 됩니다. 페이디피데스는 국가의 존망이 달린 위기 속에서 아테네에서 약 200여km나 떨어진 스파르타까지 전력으로 달려 단 이틀 만에 도달했습니다. 이틀 만에 200여km를 달렸다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걸고 그 엄청난 거리를 달렸던 용맹한 전사 페이디피데스를 기리며 만들어진 운동경기가 올림픽의 마라톤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조국을 위하여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용맹한 전사들이 있었던 아테네는 열배나 더 많은 페르시아의 대규모 원정군을 이 마라톤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올림픽의 마라톤의 유래가 이렇다보니 그 페르시아의 후손들인 오늘 날의 이란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올림픽에서 마라톤 경기에 선수를 출전시킨 적이 없었습니다. 이란에서는 마라톤은 금기시 되는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출전시킬 일은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0:24절을 보시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아테네의 페이디피데스가 조국의 위기 앞에서 생명을 걸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달려갔던 것과 같이 사도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위해서 달려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전도하는 일에 매진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사도바울은 생명을 아끼지 않고 복음 증거 하는 일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요?

 

1. 심판의 날이 오고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구약 성경의 역사적 배경이기도 한 고대 근동에는 막강한 대제국들이 일어났었습니다. 역사학자들마다 견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BC.722년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앗시리아제국)’가 성경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제국입니다.

앗수를 제국 이후에 ‘바벨론(바벨로니아 제국)’이 등장하는데, BC.586년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남유다 왕국을 침략해 점령했고, 근동 지역의 수많은 왕국들을 정복하여 광활한 영토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을 멸망시킨 것은 ‘페르시아 제국’이었습니다. 특별히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 같은 경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70년 포로생활 이후에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서 성전을 건축하도록 도운 왕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에 걸출한 인물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제국’이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게 됩니다. 제국이 세워질 때마다 그들은 세계 최강의 힘을 자랑했고, 그들의 나라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최대의 영토를 차지하고, 전성기를 보내다가 나라가 몰락해 갔던 기간들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앗루르는 109년 만에, 바벨론은 87년 만에, 페르시아는 220년 만에, 알렉산더의 헬라는 80년 만에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가 좀 길었던 이유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세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위해 그들을 쓰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들어선 헬라제국은 80년 만에 찬란했던 제국의 역사를 마감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계 역사의 주권자이신데 아무리 강대하고 영원할 것 같은 나라라 할지라도 영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을 보이게 된다면 그 나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배경으로 한 고대 근동의 제국의 역사 뿐이 아닙니다. 오늘 날에 세계에서 가장 부강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예외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부강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배경으로 등장한 애굽(이집트)는 수천 년간 북아프리카의 가장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함께 하나님을 대적했던 바로(파라오) 왕의 나라 이집트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오늘날 이집트는 우리나라 GDP의 1/3밖에 되지 않고, 국민의 60%가 빈곤층으로 분류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심지어 이 나라는 석유도 많이 나오는데도 국민들이 가난하게 살고, 세계에서 그리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 나치가 유태인 600만 명을 강제 수용해 잔인하게 학살한 장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70년이 넘게 지난 오늘 날에도 우리에게 그 역사를 기억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는 이런 경구가 써 있습니다.

“역사를 잃어버린 자에게는 다시 그 역사가 반복된다”

 

성경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는 분명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역사를 잃어버린 자에게는 다시 그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거울로 삼아 다시는 그런비극을 반복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 개인에게도, 한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맞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권세를 자랑하는 강대하고 부강한 나라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아무리 잘났고 잘나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점점 가까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알려야만 했습니다. 지금 그대로 가다가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데 그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언젠가 KBS에서 흡연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방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30년 동안 담배를 핀 사람과 비흡연자의 폐 사진을 비교하는 것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걸 보고 충격을 좀 받으라는 겁니다.

지난 주간에 심방을 갔는데 어떤 자녀는 ‘아빠 담배 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는 겁니다. 저런 걸 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빠가 담배 피다가 저렇게 폐가 썩어서 죽어 간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자녀는 ‘아빠가 예수님 믿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것을 이 어린이는 너무나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너무나도 순수한 어린이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천국과 지옥에 관한 말씀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믿는 교회 다니지 않는 아빠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픈 겁니다. 그래서 아빠가 지옥에 갈 걸 생각하니 이 어린 아이 마음에도 안타까움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금 아무리 큰 권세와 능력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누구도 예외 없이 심판의 날은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사명인 것입니다.

 

2. 혼란의 날이 오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정보가 항상 정확하면 좋겠지만, 어떤 정보는 바른 정보이지만 어떤 정보는 거짓 정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요즘 같이 언론을 불신하던 때가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과연 어느 방송국의 뉴스가 제대로 전하고 있는 것인가? 과연 어느 신문사의 기사가 진짜 팩트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의구심이 드는 것은 요즘 언론이 객관적이지 않고 조금씩 한쪽으로 치우쳐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이게 언론뿐이겠습니까? 종교적이고, 영적인 영역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요즘 유튜브를 통해 얼마나 많은 영상들이 업로드 되고 있습니까. 그 중에는 건전한 목사님들의 말씀 영상도 있겠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단 사이비 종교의 영상들도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말씀 영상을 보고 듣는 것이 좋을지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다니엘서 12:4절 말씀을 보시면,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오늘 날의 이런 정보 홍수의 시대를 이미 선지자 다니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디모데후서 4:3절과 4절을 보시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저 같은 사람은 식당에 가서 메뉴가 너무 많으면 뭘 먹어야 할지 고르는데 한참 걸립니다. 뭐가 맛있는 지도 모르겠고, 그 식당이 뭘 잘하는지도 모를 때는 그냥 주문 받는 분에게 ‘여기서 제일 맛있는 게 뭐예요?’라고 묻는데 그럼 ‘다 맛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일 많이 팔리는 게 뭐예요?’라고 묻고, 그걸 주문해서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구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그런 때를 살고 있는 거 같습니다.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영적인 정보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나름 공부도 많이 했고, 나름 똑똑한 사람도 많습니다. 무슨 선교단체에서 훈련 받은 사람도 많습니다. 때문에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아니하고 사람의 말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른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 말씀이 귀에 안 들어오는 겁니다. 자기가 원하는 말을 해 주는 설교자의 설교가 은혜로운 설교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설교를 찾기보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맛에 맞는 설교를 찾아 들으려 하지 마시고, 무엇을 말씀하시든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 지를 찾으셔야 할 것입니다.

한국에 지금 얼마나 많은 이단 사이비 종교와 교주들이 있습니까? 확연하게 드러난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야 경계를 하고 조심하겠지만, 애매한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말씀을 전하지만 그러나 잘못된 해석으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일수록 성경 중심의 좋은 교회, 좋은 목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영적 혼란의 시대에 살면서 잘못된 종교와 신앙과 이단과 사이비에 빠지기 전에 우리가 바른 믿음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3.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시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바울 사도는 지금 로마의 감옥에 투옥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 감옥에서 못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에 믿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과 같은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언이라고 한다면 가장 중요한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유언입니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그는 예수를 믿음으로 죽어도 천국에 가고, 죽어도 다시 부활의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될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우환 폐렴’으로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중국 전체 감염자수는 6만4천여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1500명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이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져버리게 된 것은 중국 정부의 폐쇄적인 언론탄압 때문입니다. 12월 중순에 코로나바이러스 의심환자가 나왔는데 이걸 중국정부는 숨기고 있었습니다. 2019년 12월30일 이것을 우연히 발견한 우환중심병원 의사 리원량이 동료와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 경찰은 리원량을 체포해 ‘사회를 어지럽히는 유언비어를 퍼트리지 말라’는 경고장에 지장을 찍게 하면서 강제적으로 리원량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리원량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조용히 병원으로 돌아와 이상 폐렴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돌보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본인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2월7일 새벽에 숨졌습니다.

그가 숨진 뒤 그의 유언으로 알려진 글이 소개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는데, 중국에서 하나님을 ‘상제(上帝)’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의 유언에는 몇 차례 이 표현이 있었습니다. 긴 내용 중에 몇 부분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본디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나에게 그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나에게 태평한 세상에 소란 피우지 말라며, 도시 가득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이 보이지 않냐고 말했습니다.”

 

 

“어젯밤… 하나님이 내 머리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착하지, 나와 같이 가자. 인간은 가치가 없어! 이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비록 인간은 빈한하고 하늘은 따뜻한 곳이더라도 말이죠.”

 

그리고 그는 자기 묘지에 작은 비석을 하나 세워달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그 묘비에 이렇게 써달라고 했습니다.

 

내 묘지명은 한 마디로 충분합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하여 말을 했습니다.”

 

리원량의 용기로 그나마 조금이라도 빨리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죽음의 바이러스가 세상에 퍼지고 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3월 1일 우리교회 설립7주년 감사예배를 ‘블레싱 세부 : 새생명 전도축제’로 준비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죽음의 바이러스가 퍼져가는 것을 막을 사명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그 죽음의 바이러스는 점점 많은 사람들 속에 전염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과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친구들, 이웃들을 초청하셔서 그 분들이 한 번이라도 복음을 들을 기회를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전하라 하신 말씀을 전하는 오늘 이 시대의 리원량이 되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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