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빈 교회, 빈 무덤”

<마태복음 28:1~10> 
– 2020 부활주일 –

 

 

[Audio 말씀]

 

 

지난 1월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유럽에 70만 명, 미국에 50만 명 등 전 세계적으로 170만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그 중 10만 명의 사람들이 지난 두 달 반 사이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히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세계적 재난 중에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하거나, 생필품과 의약품과 관계된 업종들 외에는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게 하고 있는 ‘사회적 격리’가 시행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든 기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인간들과는 대조적으로 지구 환경과 생태계에는 새로운 변화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유명한 위성사진을 잘 아실 것입니다. 나사(NASA)와 유럽우주국(European Space Agence)에서 발표한 인공위성 관측 사진을 보시면, 코로나19가 시작된 지난 1월부터 2월 사이에 중국 주요도시를 중심으로 발전소와 공장들 그리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통해 배출되는 이산화질소 배출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겁니다.

 

 

지난 3월 이탈리아에서 감염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정부는 전국 봉쇄령을 내렸고, 유럽 여행을 갔을 때 꼭 한 번 들른다고 하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게 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베네치아는 자동차 대중교통이 따로 없고, 도시 사이사이로 뚫려 있는 수로를 ‘곤돌라’라고 하는 배로 이동을 합니다. 매해 2~3천 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에 하나입니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베네치아는 그 동안 환경오염이라는 몸살을 앓아왔는데 그러나 코로나사태로 인해 수질이 맑아지고, 물고기 떼가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빌 & 멜린다 자선재단을 설립한 빌게이츠는 이미 몇 년 전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전염 위험을 경고했었습니다. 때문에 최근 세계 언론으로부터 집중 조명도 받고, 매일같이 세계적인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세부지역 사회격리가 시작되던 지난 3월 28일 우리 성도님들에게 빌 게이츠의 “코로나19는 정녕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라는 묵상 글을 보내드렸던 적이 있었는데, 빌 게이츠는 모든 일에는 어떤 영적인 뜻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열세 가지의 개인적인 깨달음을 거기서 나누고 있었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코로나 19는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딱히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에도 감염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는 인생이 짧다는 것과 우리가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의 바이러스로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 위주로 변했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정작 필요한 것은 허영심을 채우는 사치품들이 아니라 단지 오늘 먹어야 할 식료품이나 물, 약과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코로나19는 가족과 가정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얼마나 무시해 왔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내었고, 가족의 유대를 더 튼튼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더 중요했던 것을 많이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코로나19는 이 시간이 종말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기간을 통해 자신을 잘 성찰하고 배우는 사람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거대한 재앙으로 보지만, 저는 위대한 교정자로 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코로나가 그 동안 우리가 잊고 살아온 중요한 교훈들을 다시 일깨워주기 때문이고, 이것을 교훈으로 받을지 말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우리를 포함한 전 세계 사람들은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때문에 3주 만에 1,680만 명의 실직이 발생하고, 세계경제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하락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교회 역시 이 어려움을 피할 수 없고, 많은 교회들이 큰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오늘이 부활주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교회에 성도 한 사람도 없이 부활절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만의 상황이겠습니까? 큰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여기에 분명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 것입니다.

 

1. 빈 무덤은 부활의 소망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 내려 자신의 가족묘로 사용하려고 파 둔 바위 동굴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매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절입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여인들이 지금의 주일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었던 이유는 시체 썩는 냄새를 막기 위해서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러 갔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절 말씀을 보시면,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그런데 여인들은 무덤을 막고 있던 돌문이 열려져 있고,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제자들에게 달려가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슬퍼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무덤 앞으로 돌아와 무덤 밖에 서서 슬피 울고 있었던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이 이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다시 살아나셨으니, 무덤 안으로 들어와 그 누우셨던 곳을 확인해 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가들이 말하는 ‘세계 4대 성자’는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B.C.551~479)와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B.C.624~544)와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A.D.570~632) 그리고 우리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네 사람을 어떤 종교를 창시한 매우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성인정도로 말합니다. 그러나 이 네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 유교의 창시자 공자는 72세에 죽었고 중국 산둥성에 지금도 공자의 묘라고 알려진 무덤이 있습니다.

– 석가모니(고타마 싯다르타) 또는 부처는 80세까지 살다 죽었고, 그의 몸은 불로 화장을 해서 거기서 나온 사리라고 하는 뼈조각들은 탑 아래에 묻었습니다. 그게 무덤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를 따르던 그 제자들이 불교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 또한 기독교 외에 세계 최대의 종교라 할 수 있는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멧 역시 62세 때 건강이 악화되어 갑자기 어린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었고, 그의 무덤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디나에 지금도 있습니다.

이 세 사람 모두 결혼도 했고, 부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살만큼 살다가 죽었고, 무덤도 있습니다. 그들이 묻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들의 시체는 모두 흙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들의 무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이 없습니다. 그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있기는 있지만,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는 없습니다. 그 무덤은 비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공자도, 부처도, 마호멧도 이기지 못한 그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현재 7만4천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 중에 약 9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격리 중이었는데, 증상 악화로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도, 가장 크게 성공했어도, 가장 큰 부를 이루었어도,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누구도 죽음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보시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장 24절과 26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빈 무덤을 보고 오늘 본문의 여인들은 절망하고 슬퍼했지만, 빈 무덤은 곧 우리에게는 부활의 소망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무덤이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빈 무덤을 보고 주님의 부활을 믿고, 그 부활의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2. 빈 교회는 새로운 시작이다

 

 

보시는 사진은 3월15일 세계 최대의 교회라고 하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주일예배장면입니다. 화면이 작아서 잘 안보이시지만 마스크를 쓰고 뜨문뜨문 앉아계신 분들은 이 교회의 목사님들이시고, 앞에서 찬양 인도하시는 찬양팀이 있구요. 하늘색 성가복을 입은 성가대원들 십여 명이 성가대석에 앉아 있는 것이 보입니다.

평소 같으면 1만 명의 성도들이 앉아서 함께 예배드려야 할 교회 본당에 온라인예배를 위해서 최소의 인원만 뜨문뜨문 앉아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집단감염과 확산방지를 위한 교회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모여서 예배하는 교회들은 사회적인 지탄대상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도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교회들은 예배와 집회를 최소화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지금 이렇게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고 있지만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는 것과는 너무 차이가 크다 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이렇게 교회가 계속해서 온라인으로만 예배를 드린다면, 신앙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성장해 나갈 성도들이 많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에서 이탈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교회는 존재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은 특별한 기간에 한 달 두 달 정도만 해야 하는 거지 더 오래 끌면 교회의 존립마저 어려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속에 등장하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쩔 수 없이 성전예배가 불가능해져버린 상황이 있었습니다. B.C.586년 바벨론 제국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였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파괴했고, 모든 제사장들과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러니 과거 민족이 망하지 않았을 때 예배를 소홀히 했던 백성들조차 과거를 후회하고 탄식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빼앗겼고, 성전이 파괴되어 이제는 예배하고 싶어도 예배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1장 4절에서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B.C.586년 남유다 왕국과 예루살렘의 멸망을 전후로 활동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에 의해 기록된 이 성경은 당시의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과거 절기 때가 되었을 때 예루살렘 성과 성전에는 전국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 몰려온 순례객들로 가득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절기가 되었어도 길에도, 광장에도, 시장에도, 성전 뜰에도 어디에도 사람이 없어 적막함만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탄식하는 모습은 마치 요즘의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신앙 생활한 이후에 부활절예배를 이렇게 드리는 것은 처음 겪는 일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포로생활 중에 그들은 후회하고, 회개하고, 예루살렘을 사모하는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26편 1절에서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2의 출애굽이라고 불리는 포로귀환을 하게 됩니다. 그들이 얼마나 사모했고, 얼마나 기도했으면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말하고 있겠습니까? 우리도 지난 2주간 그리고 오늘 3주째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성전에서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마음 깊이 새기는 기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볼 때 이런 상황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세상에 죄악이 가득 찼을 때, 하나님께서는 노아라는 사람을 선택하시고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홍수라는 대 재앙이 있었고, 홍수 후 하나님은 노아를 통한 믿음의 세대를 일으키셨습니다.

남유다 왕국과 예루살렘의 멸망 역시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포로귀환을 통해 새로운 믿음의 세대를 일으키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 8장 1절에 보면 스테반 집사님의 순교를 통해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흩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교회 입장에서는 큰 환란과 박해였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큰 그림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교회는 아무리 좋은 시설과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없습니다. 성도들도 교회를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이 있음을 믿습니다.

 

 

성경에서 ‘시간’의 의미로 ‘크로노스(Xronos)’와 ‘카이로스(Kairos)’라는 두 개의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오늘 하루 24시간이 있고,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는 그런 일반적인 시간입니다.

그리고 카이로스는 ‘기회’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기회의 때(시간)’을 의미합니다. 어제 제가 우리교회 단톡방에 링크를 걸어드린 연세대 김학철 교수님의 말씀에 이것을 쉽게 이해해 주는 예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떤 할머니의 칠순잔치가 있었는데, 이 할머니께서 30세 때 남편을 암으로 잃고 홀로되셔서 4남매를 훌륭하게 키우셨습니다. 그 40년이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그 할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남편이 암으로 죽기 전에 함께 여행을 가자해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1시간 동안 손을 잡았는데, 그 1시간이 지난 40년을 견디게 했다는 것입니다. 40년이라는 힘겨운 세월(크로노스)를 1시간의 의미 있는 시간(카이로스)이 견디게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활절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느 해 부활절 예배처럼 특별한 순서도, 성찬식도 없고, 부활절 달걀도 나누지 못하고, 오늘 온라인 예배를 위해 설교자 한 사람, 반주자 한 사람, 방송미디어 봉사자 한 사람 이렇게 세 사람만이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필리핀과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접속해 예배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계시지만, 성도들이 함께 예배하며 카이로스의 깊이 있고 의미 있는 만남과 교제가 부족한 듯하여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우리 공동체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소중한 분들이었는지, 우리 교회 예배가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깊이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부활절에 빈교회를 통해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 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영적 본질의 가치를 더 깊이 깨닫게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간이 지나면 우리 성도들의 믿음은 더 깊이 성숙해 질 것이고, 우리 교회는 더욱 새로워 질 것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도 비었고, 무덤도 빈 부활절은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과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도 부활의 소망과 새로운 시작의 역사가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빈 교회, 빈 무덤”
1. 빈 무덤은 부활의 소망이다
2. 빈 교회는 새로운 시작이다

 

Add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