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작은 능력으로 충성할 때…”

<요한계시록 3:7~13> 

– 이 시대의 교회들에게(6) –

 

 

[Audio 말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를 4강까지 끌어올린 명장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1946~)’는 우리 축구 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축구감독일 것입니다. 지금이야 손흥민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지만, 2002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축구는 서구 사람들이 얕잡아 보는 그냥 아시아 축구일 뿐이었습니다.

그 때까지 월드컵 본선 예선전에 나가 무승부나, 패전 경험만 했었지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이겨본 경험이 없었던 축구 후진국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월드컵을 앞두고 수년 동안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은 세계무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유럽 팀과 붙으면 5대 0으로 깨지길 일수였고, 그만큼 기본기와 실력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팀의 감독을 맡아봐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고, 히딩크는 대한민국의 축구 영웅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대기업 중에 하나인 현대그룹의 창업자 ‘故 정주영 회장(1915~2001)’은 가난해서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는데, 막노동을 하다가 열아홉 살 때부터 쌀가게에서 쌀 배달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물세 살 때 그의 성실함을 좋게 본 주인 아저씨한테 쌀가게를 넘겨받게 되었지만, 중일전쟁으로 몇 년 못해보고 망했습니다. 스물다섯 살 때부터 자동차 공업사에서 일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현대자동차의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입지전적인 일생은 많은 샐러리맨들에게 영감을 주고 도전과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마윈(Jack Ma, 1964~)’은 중국 최고의 부자이기도 하고, 아시아 경제인 중에 아이콘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 분 역시 아시아에서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대학도 삼수를 하고, 163cm의 작은 키에 취업이 되지 않아 힘든 20대 시절을 보낸 평범한 청년이었지만,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라비바를 창업해 중국 최고의 부자를 넘어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분들은 결코 좋은 조건과 상황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안 좋은 조건에서 시작했습니다. 부모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아 재벌 2세, 3세들도 많지만 사실 그들은 아무리 잘 해도 사람들로부터 그리 박수를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맨땅에서 그리고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했지만 그 어려움을 돌파하여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 사람들은 누군가의 인생에 도전과 희망을 주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계시록 3장 8절에 보시면,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 오늘은 여섯 번째로 빌라델비아(필라델피아) 교회를 함께 살펴보게 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책망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많은 칭찬과 약속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는 농업이 주업이었고, 여러 차례의 지진이 있어 어려움이 있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켜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칭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가진 게 많지 않았습니다.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남들보다 많이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냥 평범한 시골의 농부들이 교회의 주 멤버들이었지만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님께 충성한 성도들이었습니다.

남들보다 능력이 부족합니까? 남들보다 탁월하고 뛰어난 무엇이 없습니까? 크게 성공을 했거나 큰 부자도 아닙니까? 남들보다 똑똑하지도 않은 거 같습니까?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들 중에 여러 부자 도시에 있었던 부유한 교회들은 주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지 못했지만, 작은 능력을 갖고 있었던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께로부터 크게 칭찬을 듣고, 약속과 축복을 받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약속과 축복이 주어졌을까요?

 

1. 열린 문을 두었다

문이 열려있다는 것은 엄청난 기회와 축복이 우리 앞에 있다는 의미를 말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12년 동안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노력했는데, 원하는 그 대학의 문을 열기란 쉽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어떤 대학에서 입학을 허락하고 4년 장학금까지 준다고 하면 이것만큼 좋은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국에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데, 청년 중에 70% 이상이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상당수는 모두 대기업에 취업하길 원해요. 하지만 그 문이 쉽게 열리겠습니까? 또는 안정적인 직장이라 할 수 있는 공무원 시험 같은 경우는 보통 동사무소나 구청 같은 곳에서 근무하게 될 9급 공무원은 40:1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합격할 수 있는 겁니다.

청년들에게 입시와 취업과 연애와 결혼과 출산과 주택마련 등등 열고 들어가야 할 관문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해도 해도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 힘드니깐 3포 세대니, 5포 세대니, N포 세대와 같은 절망적인 신조어들이 생긴 거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단지 학생들, 청년들 뿐의 일이겠습니까? 우리 장년세대들 역시 열고 나가야 할 인생의 관문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어쩌면 지금 사방이 꽉 막힌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 나가야 할지 우리 모두의 큰 숙제이기도 합니다.

 

다시 8절 말씀을 보시면,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천국의 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가난과 시련과 고통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켰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서 ‘지켰다’는 말의 원어적인 의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켰다’는 뜻입니다. 가난했고, 능력도 부족했고,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이 있었고, 신앙을 지키지 못할만한 상황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천국의 문이 닫혀있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이럴 때 증명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 성도 몇 분하고 대화하다가 김치사업 하셨던 우리 권사님 얘기가 나왔어요. 권사님이 만든 김치가 최고로 맛있는데 어머니 병간호 때문에 한국으로 귀국하셔서 이제 권사님네 김치를 맛보기 어려워 아쉽다는 겁니다.

우리 권사님이 처음 세부에 오셔서 재정적인 독립을 하는 과정에서 재정적으로 너무 어려우셨습니다. 단독 100페소, 1천 페소도 없어서 재정적으로 정말 힘든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자본도 없고, 언어도 안 되고, 어디서 일하면서 월급 받을 곳도 없고… 그런데 월세와 자녀교육비를 비롯해서 매달 생활비는 적지 않게 들어갔습니다.

제가 교회 사무실에서 일을 보다보면 누군가 예배당에서 그렇게 울며 기도하는데 우리 권사님이셨어요. 매일 교회 오셔서 부르짖으며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권사님이 ‘김치를 만들어 팔아야 겠다.’ 생각하시곤, 간판도 없이 어디 광고도 하지 않고 집에서 김치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셨습니다. 먼저는 우리 성도들이 조금씩 팔아줬는데 성도가 얼마 안 되니깐 한 바퀴 쭉 돌고는 주문이 별로 없으니 수입이 별로 없어 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여기 한인교회연합회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각 교회별로 경품권 물품을 후원 받기로 했습니다. 우리교회는 사업체가 별로 없으니 그런 걸 후원할 분이 별로 없으셨습니다. 권사님이 어른이시고 그러니깐 없는 중에도 김치 1kg씩 20kg을 경품권으로 내놓으시겠다는 겁니다. 당시 권사님이 얼마나 어려운지 제가 알았기 때문에 제가 ‘어려우시니깐 10kg만 하시라’했어요. 그리고 다음 날 새벽기도 하는데 주님께서 권사님을 막은 저를 ‘어려운 중에 그 헌신이 복이 될 것이다’는 말씀으로 책망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새벽기도 마치고 바로 권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권사님, 죄송해요. 주님께서 이게 복이 될 거라고 원래 하시려고 했던 데로 20kg 경품권 하셔요.’ 했습니다. 그리고 권사님은 어려운 중에 경품권 20장을 만들어 내놓으셨습니다. 그리곤 그 때부터 권사님네 사업장이 정말 복이 되다 보니 월세 100만 원이 넘는 돈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비에 생활비까지 다 나오고, ‘세부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 가게’란 타이틀까지 갖게 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말씀을) 지켰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열린 문을 두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천국의 문뿐만 아니라, 인생의 닫혀있는 모든 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 말씀에 비슷한 표현이 있는데,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굳게 닫혀 있는 큰 문 앞에서 그 문을 두드려도 보고, 밀어도 보고, 발로도 차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도 그 문이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을 열수 있는 열쇠가 주어진다면,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닫혀있는 성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2. 이제 역전 되리라

앞에서 살펴봤던 8절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빌라델비아 교회에도 여러 가지 시험과 어려움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시험들 속에 어떤 이들은 믿음을 포기하거나 버린 사람들도 생겨났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한 사람들도 있었던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시면,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빌라델비아 교회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 구절을 통해서 볼 때 ‘자칭 유대인이라 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을 통해 교회가 어떤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었던 것 같습니다.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그들은 종교적 우월감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혈통적으로, 율법적으로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 앞에 교만했었을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혈통적으로, 율법적으로 그들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되어 영적으로는 위축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것도 거짓말이었고, 그들이 하는 여러 가지 종교적인 말들과 교리들과 같은 가르침들 역시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분열되고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 중에 이 두 가지는 큰 영향을 줍니다. 자칭 유대인들이라고 했던 사람들처럼 어떤 우월감과 교만한 마음이 있으면 그 주변은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잠언 13장 10절 말씀에서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누군가 교회 공동체 내에서 사람들 앞에 높아지려고 하고, 더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내 말이 맞다는 겁니다. 목사님도 내 말대로 해야 하고, 성도들도 내 말대로 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면 그 주변은 늘 평안합니다. 다툴 일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기꺼이 복종하시고, 다른 분들을 자꾸 세워주고 높여주는 공동체는 은혜가 가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또 다른 하나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하고, 되도록 말을 적게 하는 게 실수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특히나 거짓말은 교회 공동체의 관계를 깨뜨리는 주요한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거짓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

 

잠언 18장 21절에서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하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자칭 유대인들이라 하는 자들의 우월감과 거짓말로 인해 성도들은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9절 하반절에서

“…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전에는 그들로 인해서 성도들이 고통스런 시간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역전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 앞에서 무릎 꿇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많이 못 배웠습니다. 성경도 많이 몰랐습니다. 사회적인 지위가 높지 않았습니다. 많은 재물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어디서 온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와 가난하고 연약한 성도들을 힘들게 했었고,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그들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로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역전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때로 억울한 일을 겪더라도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이제 역전되리라』는 찬양의 가사를 보면,

기도를 멈추지 마라 눈앞의 상황이 마음을 눌러도

원망치 마라 너의 입을 지켜라 저들은 너의 입을 보고 있다.

마음을 뺏기지 마라 내가 널 도우지 않는단 소리에

너의 모든 게 모든 게 불리해도 너는 기도를 계속해라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내가 너의 그 모든 상황을 바로 역전시키리니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내가 잠시도 쉬지 않고

모든 걸 지켜보고 있으니 바로 역전되리라…

 

우리는 때로는 어떤 상황들 속에서 너무나도 무능력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기도뿐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무능력해 보이는 그 기도가 내 인생의 역사를 새롭게 쓸 것입니다. 이제 내 인생의 역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3. 너를 지켜 주리라

넉넉한 재정이 있거나, 언제든 나를 도와주고 후원해 줄 사람이 있거나, 뭔가 믿을 구석이 있는 사람은 상황이 안 좋아질 지라도 그가 믿고 있는 그 무엇 또는 사람 때문에 두려움이 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능력이 없는 사람들, 가진 게 많지 않은 사람들, 자랑할 만한 외적인 그 무엇이 없는 사람들, 의지할 만한 어떤 재정적인 능력이 되지 않거나 언제든 나를 후원하고 도와 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은 상황이 어려워지면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난하고 연약한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도 분명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두려운 마음이 밀려 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0절을 보시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주님께서는 비록 보잘 것 없는 작은 능력 밖에 없지만 우직하게 주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며 살아갔었던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작은 능력으로 주님 앞에서 충성했던 그들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 속에 시험의 때가 왜 없겠습니까? 작은 시험부터 커다란 시련과 시험도 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돌봐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시험들은 나를 고꾸라트릴 려고 하나 우리 주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겁니다.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낮의 해도 우리를 상치 못하게 하시고, 밤의 달도 우리를 해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시험을 넉넉히 돌파해 나갈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광명교회 성도들에게 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길 축복합니다. 코로나가 지금 우리의 모든 일상을 바꿔 놔 버렸습니다. 우리교회 여러 성도들이 이곳에서 뭔가를 해보려다가 갑작스럽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들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불안하게 합니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찰스 쿨리(Charles H. Cooley)’ 라는 사람에 의해 소개된 『거울 자아 이론(Looking-glass self)』이란 게 있습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것을 흡수하여 나의 자아상을 형성한다.’

그러니깐 사람이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잖아요? 그와 같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아가 형성되어,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부정적인 영향과 긍정적인 영향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평가하면 나의 자아는 점점 그렇게 바뀌어 가는 겁니다. 반대로 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평가하면 나의 자아 또한 점점 긍정적인 모습으로 형성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아가 형성되는 성장기 때 어떤 말들을 들으며, 어떤 평가들을 받으며 살았느냐? 에 따라 그의 인격과 인생이 달라지 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성장기 때 좋지 않은 말들과 평가 속에서 자라 마음이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것이 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틀렸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시며 축복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사람들의 눈에는 지금 절망적인 상황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보시며 그 상황 속에서도 나를 붙들고 계시고, 살피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지금의 이 상황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꿔 나가실 지를 기대하십시오.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1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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