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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사회적 책임”

<마태복음 5:13~16> 

 

 

[Audio 말씀]

 

한국은 지금 코로나 2차 대유행 중에 있고,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동안 한국은 그래도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 등의 자율적 생활방역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1천명에 이르는 감염자가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발 코로나 2차 대유행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게 된 것입니다. 이젠 교회도 현장예배를 드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배달과 픽업 외에 사람들은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할 수 없고,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행정명령에 관한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 ‘Dream’이란 아이디를 갖고 있는 사람이

“기독교와 전OO에게 2조 원대 소송을 걸어야 한다. 손해가 막심하다.”

 

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 분은 교회와 교인들에 대해서 좋게 볼 수가 없는 겁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교회는 공공의 적과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위하여 받는 핍박이라면 달게 받고 순교자의 마음으로 감사하겠으나, 저는 목사로서 이런 사실이 수치스럽고 얼마나 민망한지 모릅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 얘기를 들어보니 어디 가서 교회 다닌다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는 지경이라 합니다.

 

 

지난 목요일(8월27일)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개신교계 연합기구들의 목사님들을 청와대로 초청해서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CBS와 같이 기독교계 언론이야 ‘문 대통령, 정상적인 신앙생활 돌아가도록 힘 모아 달라’ 이런 정상적인 기사 제목을 달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기사제목과 영상 썸네일에서 대통령과 목사님들이 크게 충돌한 것처럼 기사들을 왜곡해서 올렸습니다. 뉴스전문채널인 Y사는 [문대통령, “특정 교회 몰상식·적반하장”… 기독교계, “방역 협조하지만 예배 포기 못 해”] 그리고 올린 사진을 보세요. 대통령은 몸을 앞으로 숙이고 정중히 요청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고, 목사님은 고개를 쳐들고 아래로 깔보는 듯한 사진을 일부러 올렸습니다. 제가 뉴스들 여러 개 봤는데 저 목사님께서 교회의 입장을 말씀하실 때 아래로 고개를 숙인채 준비해 간 원고를 조용히 젠틀하게 읽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사와 사진을 보는 이들이 교회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갖겠습니까?

그 밑에도 보시면 공중파 방송인 S사 역시 [“사과 대신 음모설”… 문 대통령 앞에서 “예배 포기 못해”]라고 되어 있죠. 이것만 보면 대통령과 목사님들이 서로 눈을 부라리며 크게 소리라도 지른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 밑에도 또 다른 뉴스 전문 채널인 YH사 역시 [문대통령, “특정교회, 적반하장”…한교총 “예배 못막아” 작심발언]

이런 기사들만 보면 대통령이 모든 교회를 몰상식한 집단으로 강하게 비판한 것 같고, 교회는 종교적 이기주의에 꽉 막힌 그런 집단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언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국민들이 교회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할 언론이 기자로서의 선을 넘는 자기감정과 주관에 따라 보도를 한다면 ‘기레기’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뉴스들을 다 봤는데 대통령도 목사님들도 결코 그 기사들의 늬앙스와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 언론들이 대통령과 기독교 교계가 충돌한 것처럼 기사들을 쏟아내니깐 지난 금요일에 청와대는 ‘문대통령이 교회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고, 강경한 발언은 일부 교회를 염두 해 둔 발언이지 기독교 전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정정했습니다.

왜 우리나라 사회 속에서 한국교회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죠? 그것은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반증인 것입니다. 교회는 산 속에 들어가 있지 않고, 세상 속에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상에 파송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때문에 교회는 세상 속에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1.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12절까지를 통해 팔복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듯이, ‘~~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시작되는 8가지의 복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13절부터 16절까지는 믿는 자들 곧 크리스천들의 사회적 책임,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13절 말씀을 보시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음식의 맛을 내야 하는 것에 소금이 없으면 안 됩니다. 거의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야 그 음식이 맛있어지고 비로소 완전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금이 맛을 잃었어요. 요리할 때 소금 한 꼬집을 넣든지, 한 큰 술을 넣든지, 한 줌을 넣든지 그 소금이 음식의 맛을 내지 못한다면 그 소금은 맛을 잃은 겁니다.

그러면 그 소금은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는 것입니다. 아무 맛도 내지 않는 그 하얀 양념을 뭐에 쓰겠습니까? 오히려 집에 그런 소금 한 자루든, 열 자루든 있으면 짐이 되는 겁니다. 쓸 데 없으니 밖에 갖다 버리는 겁니다.

음식이 제대로 맛이 안나 소금이 정말 필요할 때 그 소금이 음식의 맛을 바꿔주면 그 소금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래서 고대 사회에서는 소금이 황금과 같은 가치였다고 합니다.

 

이 소금을 의미하는 ‘쏠트(Salt)’와 관계된 흥미로운 단어가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군인들에게 봉급을 줄 때 일부분을 소금으로 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돈을 라틴어로 ‘Salarium(소금을 사기 위한 돈)’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라틴어 샐라리움(Salarium)이 영어로 옮겨갈 때 ‘샐러리(Salary)’ 그리고 ‘샐러리 맨(Salaried man)’이 된 것입니다.

소금은 사람들의 생존과 직접 연결되는 물건이었던 것입니다. 이게 없으면 굶어 죽는 겁니다. 소금은 인간 사회 속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거였다는 거죠.

오늘 날 왜 교회가 사회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죠?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이유는 사회 속에서 맛을 내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 세상 사람들이 교회가 쓸 데 없다 생각하는 겁니다. 교회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14절을 보시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우리는 세상의 소금일 뿐만 아니라, 빛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는 겁니다. 빛 때문에 어둠이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있는 곳, 그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그런 곳이 점점 더 악해져 간다면 세상의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한 교회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있는 지역은 변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있는 직장은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가정에 누군가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 그 가정의 분위기가 달라져야 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내가 빛이 되고, 소금이 되면 그게 가능해 지는 겁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교회의 담임목사는 1년 전에 그가 속한 교단에서 면직과 제명 처리가 된 사람입니다. 면직이라면 ‘목사직 박탈’이라고 할 수 있고, 제명이라고 하면 그 교단 소속 교회와 목사의 지위를 박탈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 교단에서 나와서 자기가 무슨 교단을 하나 창설했습니다. 그러니깐 엄밀한 의미에서 그는 목사가 아닌 겁니다. 때문에 그 전 교단은 그를 ‘전OO’씨라고 하지 ‘목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합니까? 자기는 ‘교인들에게 광화문 집회 참석하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도 안 참석했다.’라고 했는데, 그 교회에서 1천명의 감염자가 나와 한국사회가 발칵 뒤집혔어요. 그런데도 교인들이 코로나 의심증상이 있는데 목사라는 사람이 (교회 이미지 때문에) 그런 교인들에게 검사 받지 말고 감기약 먹고 버티다가 3일 뒤에나 검사 받으라고 독려합니다. 이게 그 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감염된 사람이 가족들에게, 친구와 동료들에게, 이웃들에게 2차, 3차, N차 감염으로 순식간에 확산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지금 이 교회 문제는 한국교회 전체 문제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주부터 대면예배를 금지했는데, 1천여 교회가 대면예배를 했다 적발됐다는 겁니다. 한국에 5만5천 교회가 있으니깐 2% 밖에 안 되는 수치지만, 그 교회들 때문에 98%에 이르는 5만 5천 교회가 비난을 받고, 복음의 문이 닫히게 된 것입니다.

이 시국에 교회가 모범이 되어야 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예수 사랑을 실천해야 할 교회가 죽음의 바이러스를 확산하는 데 앞장선다면 어찌 칭찬이 있겠습니까? 비난과 지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사회를 어지럽히고, 세상을 더 위태롭게 만들고, 죄 없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지탄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3절에서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교회가 열심히 선을 행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면 누가 교회를 욕하겠습니까? 오히려 욕하는 자들이 더 부끄러워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 가정에 놀라운 변화들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술 먹고 방탕하던 남편이 예수 믿고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겁니다. 화를 잘 내고 우울하던 아내가 예수를 믿더니 가정이 평화로워 지는 겁니다. 부모에게 대들던 자녀가 부모를 잘 공경하는 겁니다. 온유해지고, 겸손해지고, 사랑과 배려와 이해가 가득한 가정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든 거짓과 음란과 탐욕과 교만과 미움과 다툼과 시기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세상의 대안이 되는 교회

 

오늘 본문 15절 말씀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등불을 켜서 바가지로 덮어 놓거나, 침대 밑에 갖다놓지 않는다는 겁니다. 등불은 등경 위와 같은 높은 곳에 두어 집안 모든 사람들이 그 빛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영적인 눈, 성경의 눈을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불신자들이 보지 못하는 하늘의 세계, 믿음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 죄인지 아닌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못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빛을 세상에 비춰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대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6절을 보시면,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주님께서 우리의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 빛을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즉, 예수 믿는 사람은 착하고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뭐 대단하고 거창한 거 아닙니다.

제가 처음 신앙 생활하던 1980년대 까지만 해도 교회 다니면 ‘착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잘 웃고, 친절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고, 거짓말을 못하고, 다투지 않고, 술과 담배를 즐기지 않고, 가정에 충실하고, 기초 질서를 잘 지키고, 누가 보지 않아도 바르게 살고, 그 사람 자체가 믿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 교회 다니는 사람의 특징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의 빛이었습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와 변화되는 세상의 빛이었습니다. 교회는 정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영적인 기관이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참 복 받은 나라라는 것이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기독교인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도 매년 마다 대통령을 모시고 [국가조찬기도회]라는 것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1966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인 김준곤 목사님이 당시 20명의 국회의원들과 함께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데, 미국보다는 9년 뒤늦게 시작했지만,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국가조찬기도회라는 것을 시작한 나라입니다. 1966년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약 3천만 명 정도였는데, 기독교 인구는 약 120만 명이었으니깐 기독교 복음화율은 전체 인구의 4%밖에 되지 않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4%가 대통령을 움직이고, 국회를 움직이고 있었던 겁니다. 소수의 크리스천들이 그 만큼 영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의 폐허 위에 있던 우리 조국의 대안이 교회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기대할 만한 게 있었던 것입니다.

 

백범 김구(金九, 1876~1949)선생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을 이끌던 독립 운동가였습니다. 독립운동가 중에 가장 존경 받는 분 중에 한 분이기에 어떤 분들은 ‘만약 김구 선생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면 우리나라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는 평생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며 살아오다가 1945년 해방이 되자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함께 귀국했고, 상해임시정부 주석의 자격으로 당시 현대식 건물인 ‘경교장’을 사저로 사용하여 머물렀습니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그는 귀국한 다음 날부터 암살당하시던 날 아침까지 새벽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1945년 귀국하여 그 해 11월 한 대중연설에서 김구 선생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동포 여러분! 이제 세워질 대한민국은 기독교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앞으로 세워질 나라에서는 경찰서 열개 짓는 것보다 예배당 하나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청년 시절 절에 들어가 승려생활까지 했던 그가 예수를 믿고 보니 경찰서 10개 짓는 것보다 예배당 하나 세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교회 하나가 경찰서 10개 보다 더 낫기 때문입니다. 경찰서는 죄 지은 사람을 잡아다가 벌을 주지만 범죄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전과자가 또 전과자가 되지만, 교회는 그 죄인 하나를 회개시키고 변화시켜 새 사람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 주석이었기 때문에 지금으로 말하자면 대통령과 같은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담대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소수의 교회와 소수의 크리스천들이 세상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때 전 국민이 예수를 믿던 영국교회는 몰락했고, 그렇게 교회가 몰락하자 종교적 대안으로 이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2050년에는 성공회를 국교로 갖고 있는 기독교 나라 영국이 이슬람국가가 된다고 예상하는 종교학자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그 역할을 못하니 사람들이 다른 대한을 찾은 것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썩어가는 세상의 부패를 막고,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 살맛나는 곳으로 만들 대안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전망을 밝게 보는 이들이 드물지만, 교회는 어두운 세상을 밝힐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가정의 소금과 빛이 되십시오. 우리 교회가 이 땅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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