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망했을 때 시작되는 것”

<이사야 6:1~5>

 

 

[Audio 말씀]

 

 

1910년 8월 29일은 우리 국민이라면 꼭 기억해야 하는 날인 ‘경술국치(庚戌國恥)’일입니다. 경술년이었던 1910년, 일본제국은 무력으로 우리나라의 국권을 찬탈했고,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우리나라를 일본의 한 지방으로 흡수해 버렸습니다. 우리민족 4천300년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완전히 상실한 비극적인 날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치욕이라는 의미로 ‘경술국치’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35년 만에 독립하게 되었고, 민주주의 정치도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세계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어 오늘 날의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1988년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Paul Micael Kennedy, 1945~)’가 『강대국의 흥망』이란 책을 발표하면서 미국이 발칵 뒤집혔었는데, 이 책에서 20세기의 절대 강자이며, 거대 제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쇠퇴를 예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예견대로 신흥강국들의 등장으로 미국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국은 2050년 1인당 GDP 세계 2위 국가로 성장해 동아시아 경제를 주도할 것이다.”

 

라고 예견했고, 그의 말대로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 경제는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선전하고 있고, 이 작은 나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세계에 점점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예측이 있지만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 우리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가 망했을 때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망했다는 것은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망했지만 뭔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일제 35년의 강점기 동안 아시아 전체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며 점점 강대해 지는 일제를 보며 우리 국민들은 절망적인 나날을 보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권자 되신 하나님께서는 악하며 불법적인 권력을 오래토록 참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실 민족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의 인생 속에도 흥망이 있습니다. 형통하고 성공할 때야 좋겠지만 때로는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망했다고 다 끝난 건 아닙니다. 망했다고 생각하는 그 때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 있습니다.

 

1.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

이사야서 6장을 [이사야의 소명장]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의 성전에서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됩니다. 때는 남유다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고,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천사들이 하늘을 날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 웅장한 찬양소리로 성전의 문지방이 진동을 하고, 거룩한 연기가 성전 안에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5절입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선지자 정도면 일반 백성들보다 얼마나 더 거룩하고 믿음도 좋고 신실하게 살아왔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마주할 때 그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성경 속에는 종종 나오는데,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어부였던 베드로가 밤새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허탕치고, 새벽에 항구로 들어와 그물을 씻고 있는데 이른 아침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함께 듣게 됩니다. 그리곤 예수님의 말씀대로 다시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는데, 그 때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가복음 5장8절을 보시면,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방금 전까지 만해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냥 설교 잘하시는 율법선생님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곤 그 거룩한 분 앞에 서니 자신의 죄가 낱낱이 드러났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서 10장을 보면, 다니엘도 환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는데, 그 때 온 몸의 힘이 다 빠지고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빛은 마치 썩은 듯 한 상태로 기절하게 되고 깊이 잠들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사도 요한 역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때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1:17)’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연예인 옆에 서면 오징어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예쁘고 잘생겼는데 그런 일반인들이 TV에 나오는 연예인 옆에 서면 왜 그렇게 촌스럽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연예인들은 인형처럼 생겼고, 만화를 찢고 나온 사람처럼 생겼고, 뒤에서 후광이 이렇게 비친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 역시도 저 혼자 있으면 제가 키가 작은 지 잘 모르는데, 저보다 10센티미터 이상 큰 사람이 옆에 서면 제가 얼마나 작아 보이는지 모릅니다.

기독교 초대 교부였던 성(聖)어거스틴은 종교개혁자들인 ‘장 칼뱅’과 ‘마틴 루터’와 같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그의 책들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신학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의 신학과 저술들과 업적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성(聖)어거스틴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히 숨이 멎고 심장이 멈추었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도 조용히 그의 임종을 슬퍼하며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죽었던 어거스틴이 눈을 번쩍 뜨더니 흥분된 얼굴로 “난 주님을 보았소! 내가 지금까지 쓴 모든 글들은 지푸라기에 불과하오.” 라고 소리치고는 다시 조용히 눈을 감고 다시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지난 2천년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신학자이며 저술가가 쓴 글들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는 한낱 지푸라기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사야 선지자가 왜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이제 끝났구나. 나는 이제 죽었구나’라고 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첫 번째 증상인 것입니다.

– 인간이 많이 배웠다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게 한낱 지푸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고, 크게 죄 지은 것 없이 양심껏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 앞에 설 때,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고, 사회에서 성공도 해 보고, 돈도 좀 벌어보고, 사회적 지위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암(癌)병에 한 번 걸려보고 나니깐 세상의 자랑들이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겁니다.

– 내 힘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정말 성공할 자신이 있었는데 처참하게 실패하거나 망하게 되면 비로소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닫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망했다고 생각될 때 시작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때부터 사람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유일하게 왕궁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사람을 죽이고, 바로 왕을 피해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비천한 목동으로 생활하면서 꺽어지고 낮아진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바리새인 청년 사울도 교회를 박해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말에서 떨어져 눈을 멀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눈이 멀어졌을 때부터 주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바울사도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예수님이 있었고, 바울은 이제 자신은 죽고 오직 예수께서 내 안에 사시고 계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한 해의 반 이상을 살아가고 있고, 벌써 연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전에 조금 어려우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여기서 돈 조금 빌리고 저기서 조금 빌려서 이렇게 막아보고 저렇게 막아보고 그랬었던 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힘을 의지하며 그렇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이 장기화 되고, 쉽게 끝나지 않으니… 이게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재확산 될지 모르고, 백신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게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겁니다. 전세계의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몰려 있는 유럽은 또 다시 코로나가 재확산되고 있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 역시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이 있고,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돌보아 주셔야만 이 일의 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망해보니깐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2. 새로운 사명으로 산다

이렇게 자신에 대해서 망한 자의 심령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인생이라는 것은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지 않고,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가치가 달라졌습니다. 꿈이 바뀌었습니다.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행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 이하에 보시면, 여섯 날개로 하늘을 날던 그 천사들 중에 하나가 제단에서 불타고 있는 핀 숯 하나를 손에 가지고 이사야에게 날아오더니 그것을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이사야는 이미 죽은 겁니다. 과거 죄 짓고 방탕하던 사람은 그 죄로 인해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씻으시고 그를 다시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8절을 보시면,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의 패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잘 나가던 사람이 큰 시련과 고난 속에서 망하거나 죽음의 문턱 바로 앞에 가거나 하면서 ‘망한 자의 심령’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죽었구나, 나는 이렇게 끝났구나, 나는 망했구나, 나는 실패했구나…’라고 자신에 대해서 더 이상 소망을 갖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때 하나님께서 그를 붙잡아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를 씻어 주시고, 그의 과거의 죄들을 용서해 주시고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인생의 새로운 소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40년은 왕궁에서 잘 나가던 왕자처럼 살았고, 그 이후 40년은 도망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에서 비천한 목동으로 살았습니다. 40년의 세월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그 전의 모든 자신감도 잃었고, 그 누구 하나 의지할 배경도 없었고, 이젠 80세의 노인이 되어서 뭔가 새롭게 도전한다는 것은 무리인 시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그렇게 시골에서 양떼나 치다가 인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80세의 노인인 그가 어느 날 양떼를 몰고 광야에 나갔을 때, 광야의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있는데 그 불이 꺼지지 않았고, 떨기나무에도 불이 붙었지만 나무는 재가 되지 않고 계속 그 떨기나무에서 불이 활 활 타 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시는 시각적 메시지였습니다.

모세는 광야의 마른 떨기나무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더 이상의 어떤 소망도 없는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불이 그에게 임하고, 그의 남은 인생은 불꽃과 같이 쓰임 받게 되리라는 메시지를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남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위대한 지도자로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짐 엘리엇(Philip James Eliot, 1927~1956)이란 사람은 1927년에 독실한 신앙의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나, 17세에 명문 휘튼대학에 들어갔습니다. 19세 때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남미의 한 나라에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았고,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성경 번역을 위해 헬라어를 공부했습니다.

1952년 에콰도르에 도착해 같은 비전을 가진 4명의 청년들을 만나 아우카(Auca)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현지에서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현지적응 훈련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교하고자 하는 곳은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험난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경비행기를 타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수개월 동안 아우카 부족에게 먹을 것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선물을 공중에서 떨어뜨려주었습니다.

그러다 1956년 1월 경비행기를 아마존 정글에 착륙시켜서 아우카 부족 원주민들과의 접촉을 시도하게 되는데, 극도로 외부인에 대한 증오심과 경계심을 갖고 있었던 아우카 부족에게 다섯 명의 청년 선교사들은 제대로 복음을 전해보지도 못하고 모두 원주민들의 창과 칼에 찔려 순교 당하게 됩니다. 그들의 주머니에는 권총이 있었지만, 그들을 향해 창을 던지는 원주민들을 쏘거나 방어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 짐 엘리엇의 나이는 29세 였습니다.

그들은 복음 한 번 전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선교가 헛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후 그들의 부인과 여동생과 아들과 가족들이 들어가 아우카 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희생과 헌신으로 그 부족 전체를 복음화 하게 됩니다.

짐 엘리엇의 부인은 남편이 대학시절부터 썼던 글과 일기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했는데, 거기에 깜짝 놀랄만한 글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짐 엘리엇이 19세 때 적은 일기였습니다.

“이 부족한 나무토막 같은 인생에 주여! 불을 붙여 주소서. 제가 주를 위해 탈 수 있도록 나의 삶을 소멸시키십시오. 나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열아홉 살의 짐 엘리엇은 자신은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으며, 나무토막 같은 자신의 인생에 불을 붙여 주님을 위해 불타는 인생이 되도록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일기에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He is no fool who gives up what he can not keep to gain what he can not lose.)”

 

열아홉 살에 쓴 그 일기는 10년 뒤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짧은 인생을 불꽃처럼 살다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열아홉 살에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폐결핵을 앓게 되었고, 2년여 뒤에 또 다시 재발했고, 그 때부터 삼십여 년이 넘도록 아주 건강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늘 건강이 약했고, 넘치는 힘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주님의 은혜고, 이렇게 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통로로 써 주신 것만으로도 늘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광야의 마른 떨기나무와 같이 보잘 것 없고, 자랑할 만한 것도 없으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불이 광야의 마른 떨기나무에 붙어 타올랐던 것처럼, 모세는 실패한 인생이었지만 다시 불타오르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고, 실패했고, 망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쓸모없는 마른 나무토막 같은 인생에 소명과 사명의 불이 붙으면, 새로운 사명을 이루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나는 망했지만, 이제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로 사시길 바랍니다. 과거의 내가 죽을 때, 내 꿈도 실패했지만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꿈과 소명으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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