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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아래(Under Cover)”

<시편 91:1~3> 

 

 

[Audio 말씀]

 

 

지난 수요일 다니엘기도회 4일차 강사였던 어떤 교수님이 어린 시절 대나무비닐우산 들고 다니던 어린 시절을 얘기하셨는데, 이 우산은 비가 올 때 바람만 조금 세게 불어도 뒤집어지고, 우산살이 꺽이고, 얇은 비닐이 찢어져서 못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 이런 비닐우산이라도 있으면 다행입니다.

저 역시도 1970년대 당시 100원, 200원 하던 대나무비닐우산 조차도 없어서 비를 쫄딱 맞고 학교를 오가던 생각이 났었습니다. 우산이 싸구려든 비싼 것이든 우산은 우리를 비로부터 지켜주는 겁니다.

필리핀은 6월부터 11월까지가 ‘우기(雨期, Rainy Season)’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자동차로 운전해서 어디 심방을 가거나, 어디에 이동을 할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질 때가 있는데, 그 때 제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보,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우린 자동차 안에 있으니 너무 감사하네요.’라고 말하곤 합니다.

필리핀에서 폭우가 쏟아질 때 밖은 난리가 납니다.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처마 밑으로 피하고, 그 많은 오토바이들은 다리 밑 같은 곳에 임시로 주차하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배수가 좋지 않아 도로 여기저기는 물이 잔뜩 고여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차가 값싼 차든, 고가 승용차든 자동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쏟아지는 비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영어로 ‘Under Cover’라는 말은 ‘덮개아래’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under God’s cover’라고 하면, ‘하나님의 보호아래’ 라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 인생 속에는 천둥을 동반한 새까만 비구름과 폭풍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아무 보호 장비 없이 그 폭풍과 비구름을 맨몸으로 맞게 될 때, 우리는 당황스럽고 두려울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래에서는 보호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보호 아래 들어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주님의 권위아래 있으라

우리나라에서 ‘권위(權威)’라는 말은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닌 거 같습니다. ‘저 사람은 참 권위적이다’라고 하면, 왠지 그런 사람은 좀 멀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의 발표에 의하면…’이라고 하면, 그런 말에는 거부감 보다는 거기에 더 신뢰를 갖게 됩니다.

사실 권위(權威)라는 말은 ‘다른 사람을 지휘하거나 통솔하는 힘’ 또는 ‘사회에서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를 의미합니다. 권위라는 말 자체는 결코 나쁜 말이 아니지만, 내적인 권위가 갖춰지지 않은 연약한 인간이 그 권위라는 이름으로 갑질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이 단어가 별로 인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여기서 ‘지극히 높은 분’이라는 뜻의 ‘지존자’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라는 뜻의 ‘전능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의미합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바로 그 지존자와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4절 말씀에서는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종종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새들의 왕인 독수리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독수리는 두발로 자기 몸집만한 사냥감을 움켜쥐고 하늘을 날아갈 만큼 강하고 커다란 날개를 갖고 있는데, 그 큰 날개의 깃으로 자기 새끼들을 덮어 보호하듯이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는 것입니다(참조, 이사야31:5).

 

 

우리나라에는 『관계』, 『순종』, 『존중』, 『동행』 등의 책들을 통해 잘 알려진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존 비비어(John Bevere, 1959~)’ 목사님은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거하는 자’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보호아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다”

 

즉,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권위를 거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보호와 유익함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분의 날개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가 큰 혼란에 빠져있었습니다. 각 나라들마다 비상이었고, 각 지역과 국경 봉쇄로 인해서 각 나라들마다 경제적으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국을 떠나 외국에 나와서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재외국민들 같은 경우는 경제적인 문제도 문제였지만 만에 하나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땅에서 외국인이었고, 이 나라로부터 제대로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필리핀 같은 경우도 외국인들을 치료해 줄 의무가 없었기 때문에 코로나에 감염된 외국인들의 경우는 4백만~6백만 페소(약 1억에서 1억5천만 원)에 이르는 엄청난 치료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필리핀 교민들과 유학생들 가정들은 일찌감치 고국인 대한민국으로 철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필리핀 정부에 ‘왜 우리에게는 의료 혜택을 안 주는 거냐? 이 비상시국에 너무한 거 아니냐?’라고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필리핀 국민이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필리핀 정부의 권위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권위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법을 지키며 살아갈 때 즉 그 권위 아래에 있을 때 그 보호와 혜택들을 누리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한다면 그는 우리 정부에게 보호를 요청할 수도 없고, 우리 국민으로서의 혜택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하나님의 명령과 법을 어겼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유익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나라의 법을 따를 의무도 없지만, 반대로 우리 정부에서 그 사람을 보호하고 혜택을 베풀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권위 아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에서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주님의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은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권위 아래 있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의 권위를 인정하면 가장의 말을 따르고, 회사 사장의 권위를 인정하면 대표자의 말을 따르게 되어 있고,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면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을 존중하면 그 가장이 그 가족들을 책임지려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회사 사장의 말을 따르면 그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물질적으로 보상해 주지 않겠습니까?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면 그 영적 공동체를 통해 위로와 중보기도와 도움과 사랑과 은혜가 그에게 흘러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할 때,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서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 필리핀에서 종종 한국인 범죄자에 대한 소식이 업데이트 됩니다. 필리핀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외국인으로서 지켜야 할 필리핀 법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어겼기 때문에 필리핀 경찰에 붙잡혀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필리핀 법을 지키면서 살면 우리가 외국인이지만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 뜻대로 살지는 않고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순종하지도 않으면서 믿는다는 것은 거짓일 뿐입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A.W.토저 목사님의 책들을 읽어보면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구세주(Savior)라고 하면서, 우리의 삶을 맡길 주님(Lord)이라고 인정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말을 정말 자주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가짜 믿음들을 버리십시오. 순종하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가짜 믿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앞부분에서 잠시 말씀 드렸던 존 비비어 목사님의 또 다른 책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을 섬길 것이고, 사람을 두려워하면 사람을 섬길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누구를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면, 하나님의 보호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로 들어가십시오!

 

2. 주님의 구원을 신뢰하라

주님의 보호아래 있기 위하여 필요한 또 한 가지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받을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시면,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사냥꾼이 새를 잡기 위해서 놓은 올무에 새의 발이 걸렸다면, 새가 자기 다리를 끊어버리지 않는 한 그 올무를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또 오늘 날 과학과 의학이 이렇게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라고 하는 전염병을 1년이 다 되어 가도록 아직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수천 년 전에는 전염병이 한 번 돌면 그 마을과 도시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위아래에 있는 사람은 주님의 보호아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서 새가 벗어날 수 없는 올무에서 벗어나게 되고, 살아남을 수 없는 전염병에서도 구원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편 91편의 5절, 6절을 보시면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있는 상황들과 비슷한 내용들인 거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아침마다 온라인기도회를 하고 있는데, 참여하시는 성도들이 얼마나 은혜를 받고 위로와 용기를 얻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기도회가 끝나고 ‘오늘은 이런 믿음으로 살아야지!’하고 하루를 보내지만, 순간순간 들려오는 이야기들과 부정적인 전망들과 상황들을 듣고 보노라면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와 낙심과 절망의 마음들이 내 마음을 짓누르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시의 표현처럼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 그리고 다시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점점 닥쳐오는 재앙을 보고 있는 요즘인 거 같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결론은 ‘(그런 부정적인 상황들이 있지만 나는) 재앙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라고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7절에서는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이 땅에 임한 엄청난 재앙으로 천명, 만 명이 주변에서 쓰러져 나가는 겁니다. 하지만 Under Cover 즉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믿음의 사람은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11절 말씀도 보시면,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섬기라고 지으신 천사들을 동원하셔서 우리의 인생길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생업과 기업에, 우리의 교회에, 우리의 도시에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사들에게 명령하셔서

 

– 저 믿음의 사람을 보호해 줘라!

– 저 기도의 사람을 지켜줘라!

– 저 믿음의 자녀를 붙들어 줘라!

– 저 믿음의 백성을 대신하여 싸워줘라!

– 저 믿음의 기업을 다시 일으켜라!

– 저 믿음의 사람을 도우라!

– 저 믿음의 사람과 함께하라!

 

분명 지금 우리는 여러 가지 악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아가는 상황들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미래가 그리 밝아 보이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미래가 불안하고, 재정적인 압박도 크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처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코로나 때문에 이제 여기 남아 있는 성도들이 얼마 없는데, 그 얼마 없는 중에 최근에 한국으로 돌아간 성도도 계시고, 생업을 위해서 4~5시간 떨어져 있는 멀리 시골로 이사 간 가정도 있고, 역시 생업을 위해서 다른 섬으로 떠난 성도도 계시고 또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하고 계신 가정도 있습니다.

그럼 요즘 같은 경우는 여기 교민도 얼마 없기 때문에 전도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 ‘이런 상황으로 가다가는 우리 교회 성도는 정말 손가락으로 셀 정도 밖에 남지 않게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불현 듯 들면, 어찌되었건 저는 교회를 지키면서 성도들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며 사역하고 있어야 하는데…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저 조차도 마음이 답답하고 낙심이 될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겁니다.

여러분 당연히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탄은 목사든, 집사든, 성도든… 끊임없이 우리를 불안케 하고, 두렵게 하고, 염려케 하고, 낙심케 하고, 절망케 하고, 포기하게 하고, 실망과 분노와 억울함과 열등감에 빠지게 해서 우리의 믿음을 뿌리 채 흔들어 버리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열두 살 난 딸이 죽을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야이로는 절박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집에 모시고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 가까이 왔을 때 그만 그의 딸이 죽어버리고 맙니다. 사람들이 야이로에게 사람을 보내 ‘이미 당신 딸이 죽었으니, 선생님을 더 이상 괴롭게 하지 말라. 이제 다 끝났다. 이제 포기해라’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는 말을 예수님께서 곁에서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눅8:50)”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권위아래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구원을 100% 신뢰하십시오.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대로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선포대로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것입니다.

15세기 콜롬부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처음 발견이 되었고, 그의 말을 통해 스페인과 포루투갈 등에서는 많은 개척자들이 아메리카를 향해 수개월에 걸친 항해를 하게 됩니다. 목사이자, 시인이며 저술가였던 ‘존 던(John Donne, 1572~1631)’은 젊은 날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을 여행했다고 합니다. 그의 글에 수개월의 험난한 항해 끝에 남미 대륙에 도착했던 스페인 선원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페인의 돛배는 남미 아마존 강의 상류에 도착했는데, 그곳의 강폭이 워낙 넓어서 그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은 그곳이 아직도 대서양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아마존 강은 6,400km로 나일 강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지만, 유량으로 보자면 세계 최대의 강입니다. 강 하구의 폭이 330km나 되니깐 서울에서 대구를 지나가야 되는 넓이인 겁니다. 강 하구에서 1,600km를 올라가도 강폭이 16km나 되니깐 거기가 바다인지 강인지 구분 못할 수도 있는 겁니다.

스페인의 선원들은 수개월에 걸친 험난한 항해를 하고 아마존 강에 도착해 그 강을 한참 거슬러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도 짠 바닷물 위에 배가 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물을 떠 마실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몇몇 선원들은 갈증으로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야고보서 1장 6절과 7절에서는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페인 선원들은 자기네 배가 지금 세상에서 가장 풍부한 생수의 원천 한 가운데에 둥둥 떠서 가고 있는데, 거길 바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갈증으로 죽고 만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과 생수의 은혜가 매일 매주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스페인 선원들이 아마존 강을 알고 믿었다면 바가지를 내려 그 생수의 원천수를 퍼서 마시고,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시편 91편 14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지금의 상황들과 환경들 때문에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권위 아래에 있으며, 주님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주님께서 결코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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