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초월(超越 : Supernatural)”

<마가복음 9:22~24> 

 

[Audio 말씀]

 

[세계 3대 종교] 라고 하면, 불교와 기독교와 이슬람을 가리킵니다. 기독교가 전 세계 인구의 약 33%정도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합니다. 두 번째가 23%를 차지하는 이슬람이구요. 그리고 약 14%를 차지하고 있는 흰두교는 숫자적으로는 세 번째 많은 종교지만, 인도라는 한 나라에 국한된 종교이기 때문에 세계3대 종교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3대 종교의 세 번째는 세계 인구의 약 7%를 차지하고 있는 불교입니다. 불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과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고, 아시아 여러 나라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종교입니다.

창시자인 인도의 고타마 싯다르타는 인도의 브라만교(Brahman)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성장했는데, 그래서 불교에도 힌두교와 같이 윤회 사상이 있는 겁니다. 어쨌든 싯다르타도 인간 세계에 끊임없이 가난과 질병과 고통이 있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29세에 부인과 아들을 버리고 6년간의 고행과 수행을 하게 됩니다.

그리곤 깨달은 것이 ‘중도(中道)’ 또는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공(公)’이란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 어떤 집착과 욕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런 자아를 버리고 비우면서 어떠한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에 이르러야 고통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기본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기독교에도 돈에 대한 탐심과 여러 가지 잘못된 탐욕과 같은 것들을 경계하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불교의 사상과 같은 선상에서 대조되는 기독교의 가치와 사고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초월(超越 : Supernatural)’이라는 것입니다. 불교는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모든 자아를 버려라. 얌전하게 조용히 욕심 부리지 말고 살면 좋은 생명체로 윤회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초월 즉 초자연적인 것(Supernatural)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는 그냥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유일한 참된 신이시고,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시고, 실패한 자도 다시 일으키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그 사상을 지배한 나라들을 보면 수천 년 동안 발전이 안 되는 겁니다. ‘중도(中道)’ 혹은 비워라 ‘공(公)’으로 사니깐 발전과는 거리가 먼 사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들마다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문화, 과학… 등등의 모든 영역에는 놀라운 발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처럼 ‘비워라. 욕심내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라고 하지 않고, ‘너는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너를 도우신다. 너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은 없다. 초자연적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믿음과 가치들이 있으니깐 계속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겁니다. 때문에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나라들과 대륙들은 지난 2천 년 동안 꾸준하게 문명의 발전을 이루어 왔고, 그 발전된 문명을 통해 세계를 지배해 왔던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바탕에는 ‘초월’, ‘초자연적’, ‘수퍼내추럴(Supernatural)’과 같은 믿음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과 정신은 우리의 내면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우리는 그 정신과 마음과 가치를 갖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삶에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들을 만나지만 우리는 그 모든 상황들을 초월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1. 현실을 보며 절망하지마라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으셨는데 종종 제자들과 함께 산에 가셨었습니다. 이번에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었습니다. 그런데 그 산 위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되었는데, 예수님의 옷에서 밝은 광채가 나고, 그 자리에 엘리야 선지자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는 것을 제자들이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곤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에 너무 놀라고 두려워 정신을 잃을 뻔 했습니다. 제자들은 마치 천국 안에 들어가 있는 듯 했던 것입니다.

그 놀랍고도 엄청난 영광스러운 사건을 목격하고 세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다른 제자들이 있는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마을에는 큰 무리가 제자들을 둘러싸고 모여 소란스러웠습니다. 온 무리가 예수님이 오신 것을 발견하고 예수님께로 몰려 왔습니다. 무리 중에 어떤 한 남자가 예수님께 자신의 아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18절 말씀입니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에서는 이 질병을 ‘간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간질 증상은 예고 없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킵니다. 환자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심할 경우에 길을 가다가 갑자기 쓰러지기도 하는데, 사지가 마비되고, 순간 정신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이 아들은 매우 심한 케이스 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때마침 아들을 예수님 앞에 데려 왔더니 그 때 발작이 와서 쓰러져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신음하면서 엎어져 구르며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왔습니다. 21절에 의하면 이 아들은 어릴 때부터 간질을 앓아왔던 것입니다. 당시에 별다른 치료법도 없고, 아들은 멀쩡히 성장했는데 순간순간 찾아오는 간질 발작은 아버지의 가슴을 찢어놨습니다.

 

22절 말씀을 보시면,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어떤 경우에는 아들이 불과 물 앞에서 발작했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고, 본문을 통해 봤을 때 이 아들에게는 간질이라는 뇌질환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배후에 귀신이 그 질병으로 한 아들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깐 이 아들의 문제는 육체적인 질병과 영적인 귀신들림, 이 두 가지가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그런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병든 자를 치료해 준다는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한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이 기도도 해 보고 이렇게 저렇게 해 보는데도 아들은 전혀 치료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쩌면 고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는 이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나마 아들을 치료할 수 있었던 유일한 희망의 불꽃이 꺼져가는 거 같았습니다. 그리곤 예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귀신이 아들을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NIV 영어 성경에서는 ‘If you can do anything’이라고 되어 있는데, ‘만약 예수님이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완치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만 있다면 그거라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마을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큰 기대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귀신이 쫓겨나고, 수많은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치료 받고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제자들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주었다고 했는데 그 기대가 큰 실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기대했던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거기서 큰 실망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일들이 내 생각과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낙심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일이 더디고, 우리가 큰 기대를 갖고 간절히 기도했던 제목이 응답되지 않을 때 절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실망과 낙심과 절망에 빠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눈이 현실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의 실패한 현실, 지금 당장 뭔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지금 당장 어떤 성과가 없는 현실을 바라보니 낙심이 되고 실망스럽고 낙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에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필리핀이란 곳을 한 번도 와 본적이 없었습니다. 처음 낯선 이곳에 개척을 할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도 있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명을 안고 시작하는 기대감도 많이 컸었습니다.

그런데 개척해서 사역을 하다 보니 필리핀 그것도 세부라는 지역의 이민교회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쳤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이 땅에서 영원히 살고자 하는 한국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거주 기간이 1~2년 정도로 짧은 경우가 많았고, 한 가정이 이곳에 와서 새롭게 정착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고, 어렵게 정착한 이들도 재정적인 문제나 인간관계의 문제가 생기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정말 많았습니다.

– 특히나 사업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국인들이 월급 받으면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열악했기 때문에, 청년들도 머물 수가 없고, 안정적인 재정환경이 안되니 우리 성도들도 이곳에 머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또 이곳에 오셔서 우리교회를 만나 신앙을 회복하시고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시면서 더 오래 있고 싶지만 한국에 있는 남편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짧은 기간 동안 정들었던 교회를 뒤로 하고 철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또 이번 코로나 사태는 우리 교회를 더 코너로 몰아붙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게 어쩌면 세부에 있는 한인교회들의 현실일 겁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분명 이런 어려운 환경들이 있을 것입니다.
– 요즘 청년들은 취업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찾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저희 아들이 군대 가려고 한국에 들어갔는데, 지금 청년들이 코로나 상황에 군대나 갔다 오자는 마음으로 잔뜩 몰려 있다고 합니다.

– 작년에 여기서 어학연수 하고 승무원 시험 보려던 자매님은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항공업계가 문을 닫게 생겨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 역시 작년에 이곳에 왔던 신혼부부는 여기서 어학연수하고 캐나다로 이민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모든 길이 다 막혀서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아이를 출산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요즘 같은 때에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현실만 생각하고, 매일 그것만 묵상하고, 그 상황만 바라보며 불평하고 있으면 낙심과 절망만 될 뿐인 것입니다.

지금의 이 상황이 현실인 것은 맞지만, 매일 매일 암담하고 소망이 없는 현실을 바라보고, 그것을 묵상하고만 있으면 낙심과 절망의 마음은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벗어날 첫 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초월(超越)’입니다. ‘뛰어 넘을 초(超)’에 ‘넘을 월(越)’자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현실과 그 생각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분명 지금 우리는 암담한 현실의 상황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거기에만 갇혀 있지 말고, 매일 불안한 상황만 묵상하지 말고 그 현실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3장 14절, 15절에서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지금 당장 아브라함에게 좋은 조건은 없었지만, 하나님은 거기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현실만 바라보고 낙심하고 있지 말고, 믿음의 눈을 들어 바라보는 것들마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의 현실과 상황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육신의 눈외에도 믿음의 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들마다 진정한 미래의 현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현실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과 현실들이 있으나 그런 것들로 인해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믿음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시고, 초월하는 믿음의 삶을 살기 시작하십시오.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2. 초월의 능력을 활용하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체 중에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장 풍성하게 받은 피조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입니다.

다른 생물들은 상상하거나 창의적으로 무엇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본능적으로 또는 직관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사는 것과 상상력으로 살아가는 두 생명체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문명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 중에 아이큐가 좋다고 하는 생명체들도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나는 동안 어떤 문명의 발전이라는 게 없습니다. 그냥 수백 년 전에도, 수천 년 뒤에도 똑같은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상상력과 창의력을 어떤 생명체보다 가장 풍성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뭔가를 새롭게 창조해 내기도 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문명의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 오늘 날에 이른 것입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이후로 최근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사람으로 평가 받는 ‘일론 머스크(Elon R. Musk, 1971~)’라는 사람을 잘 아실 겁니다. 영화 아이언맨을 만들 때, 일론 머스크 라는 사람을 모델로 아이언맨의 캐릭터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는 24세 때 사업을 시작했고, 인터넷 결제 ‘페이팔(PayPal)’을 만들어 31세 때 그걸 1조8,700억 원에 팔아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우주여행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최초의 민간인 우주 로켓 회사인 ‘스페이스X(SpaceX)’를 설립했고, 전기 자동차 테슬라(Tesla)도 창업했고, 올해 1월만 해도 세계 35위 부자였는데, 며칠 전 2위로 올라섰습니다. 앞으로 2030년에는 화성에 8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기자가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반지의 제왕 속 히어로들을 보면서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판타지 소설을 통해 늘 상상하고 꿈꾸는 사람이 되었고, 그것을 지금 현실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가졌던 꿈과 상상이 오늘의 세계 최고의 혁신가를 만든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것은 우리를 초월적인 존재로 지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초월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를 갖고 있어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지난주에 말씀 드렸던 바와 같이 그 한계들을 깨뜨리며 계속해서 발전하고 또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23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오늘 본문에서 귀신에 묶여있고, 간질이라는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들을 데려온 아버지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병을 고칠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했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오시자 그 아버지는 ‘만약 예수님께 뭐라도 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이 질병이 나아질 수만 있다면 그거라도 괜찮으니 고쳐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만약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불가능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계는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력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 재능이 특출난 사람… 이란 조건은 없습니다. 조건이 있다면 단 하나, ‘믿는 자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이제 자격은 충분한 것입니다.

지금 당장의 현실이 아무리 암담하고 막막할 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든지, 내가 지금 어떤 환경 속에 처해 있든지… 우리에겐 초월의 능력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지금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실패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필리핀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땅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 코로나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 라고 생각이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생각부터 초월하십시오. 그 부정적인 마음에서부터 초월하십시오. 그리고 이미 우리에게 주신 초월의 능력을 활용하십시오.

 

29절 말씀을 보시면,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초월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현실을 초월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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