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비우면 채워진다”

<마태복음 5:3~10> 

 

 

[Audio 말씀]

 

케이블 방송인 TVN에 『신박한정리』 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방송 정보를 알아보니, 원래는 8회 정도로 기획했는데, 은근히 시청률이 높게 나오고 호응이 높다 보니깐 벌써 25회까지 방송하고 있다고 합니다. 살다 보면 집에 이것저것 물건들이 쌓이고 나중엔 너무 많은 물건들 때문에 정리를 못하고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제가 그 프로그램을 두세 편을 봤었는데 집이 넓고, 좁고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정리팀이 물건들을 정리하고, 가구를 새롭게 배치해 주면서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주는 그런 TV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어떤 유명 격투기 선수는 방 하나, 거실 하나인 집에서 아내와 아이 이렇게 세 가족이 삽니다. 아이들 키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들 어렸을 때 아이들 물건들이 자꾸 들어오면서 집이 깨끗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보기에도 참 답답해 보이던 그 거실이 정리를 하고 나니 완전히 깨끗하게 변합니다.

여긴 욕조가 포함되어있는 욕실입니다. 집은 좁고 물건은 많다 보니 아이의 커다란 장난감이 욕조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옷들이 욕실에 걸려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리를 하니 당장이라도 목욕하고 싶은 예쁜 욕조도 보이고, 이제야 제대로 된 욕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위해 이 프로그램에서 항상 진행하는 코너가 하나 있는데, ‘필요’, ‘욕구’, ‘버림’이라고 이름표가 붙은 박스들을 가져와서, 그 쌓여있는 물건들 중에 의뢰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구분하고,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데 갖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욕구에 의해 3년이고 10년이고 쟁여놓은 것들을 구분하게 하고(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 줍니다.), 그리곤 버려야 할 것들을 구분해서 초록 박스에 넣게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필요’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눈다 든지(ex. 예수전도단의 플로잉_Flowing), 아예 버리든지 하는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의뢰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기도 하고, TV 시청자들에게도 그런 감정들이 이입되는 것 같았습니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유곤 PD(TVN, 신박한정리)는

“단순히 정리하는 게 아니라 비우면서 내 삶을 돌아보는 과정이 그 울림을 크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 분석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는데, ‘새로운 공간을 얻으려면, 그 공간이었던 곳에 가득 채워져 있던 것들을 비워야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야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뭔가를 내려놓고, 비우고 또 비우는 시간들을 보내왔고,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흘러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1년을 돌아보며 올해 마지막 주일예배로 모였습니다. 올해 여러분은 많은 것을 비우고 내려놓으면서 많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비워야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새로운 것이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1. 옛것을 비움

우리가 새로워지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비우는 것이 첫 번째로 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모습과 다른 삶을 살길 원한다면 그동안 살아왔던 과거의 옛것을 비우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이상 그 과거의 삶을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옛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 버림과 관계된 인물 세 사람을 살펴보자면,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 앞에 왔었던 부자 청년은 영적인 것, 특별히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고 누리는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솔루션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2절에서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기록하면서 그 청년의 이야기는 그렇게 마칩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의 엄격한 학파에서 율법적으로 철저하게 교육받은 바리새파의 청년 리더 였습니다. 자신이 어려서부터 배우고 익힌 지식으로 보니 예수님은 메시야가 아니었고, 바울이 보기에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사이비 광신도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을 하기까지 그는 그가 배운 바리새파의 율법이 진리인 줄 알았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들의 질투로 열일곱 살에 노예로 팔려갔고, 그곳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서 오랫동안 극심한 고난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아마도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그는 형들을 향한 분노와 원한과 미움으로 치를 떨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인생을 그런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뜨린 형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왔었던 부자 청년이 영생을 누리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비워야 할 것이 무엇 이었겠습니까? 그는 돈을 의지했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돈을 내려놓아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지만, 그는 재물이 많아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할 때 청년 바울이 비워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는 자신이 배우고 알고 믿고 있는 지식에 대한 교만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내려놓지 못했을 때, 그는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나는 경험은 그가 그 동안 붙들고 있고, 의지했던 모든 지식과 경험이 한순간에 깨지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외에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오면서 총리가 되기까지 약 13년 동안 그를 그렇게 극심한 고난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형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와 원한과 복수심을 내려놓을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총리가 되어서 그 땅에 7년의 풍년이 있었고, 2년의 흉년이 있었는데, 높은 지위에 있었던 그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나안 땅에 가서 아버지와 형제들을 만날 수 있었겠지만 형들이 애굽 땅에 곡식을 구하러 올 때까지는 그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의 마음은 가족 같지도 않은 형제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약 22년간 굳어진 마음으로 그 형제들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평생을 마음에 한쪽 구석에 앙금과 상처로 남아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 모든 과정 속에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22년 만에 만난 형제들을 용서하기로 결정하고, 그의 형제들과 가문을 구원하여 장차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비우지 못하는 것들 중에는 물질적인 것들도 있고, 자기 지식과 교만도 있고,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계속 안고 있으면 결코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들이 지금의 상황과 다른 어떤 변화된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면, 지금 여러분들이 움켜쥐고 있는 것들, 여러분의 삶 속에 가득한 것들, 내려놓지 못하고 비우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비우고 내려놔야 비로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내 삶에 없어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에 비워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62절 말씀에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쟁기를 잡고 소를 몰며 밭을 가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며 엉뚱한 곳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은 제대로 그 밭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잡생각들을 내려놓고 쟁기를 잡고 앞을 똑바로 보며, 밭을 갈아야 옥토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우리의 마음에 뭔가 다른 게 가득하면 믿음이 생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는 믿음이 성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오래 토록 다녀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마음에 예수님 말고 뭔가 다른 게 가득한 겁니다. 그게 부자 청년처럼 돈일 수도 있고, 청년 바울처럼 자기 교만과 지식과 같은 것들일 수도 있고, 요셉처럼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와 복수심 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믿음이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 옛것을 버리고 심령이 가난한 자 즉 마음이 비워져야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 서론에서 잠시 말씀드렸던 신박한정리 라는 TV 프로그램처럼 어떤 환경이 만들어지고, 어떤 장치가 만들어지면 비로소 비워냄을 이룰 수 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일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올해 코로나19는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붙들고 있었던 것들, 내가 의지하고 내가 사랑했던 것들, 내 안에 가득했던 것들을 어쩔 수 없이 내려놓는 시간이었던 거 같습니다. 우리 성도들 여기서 잘 지내시다가 사업을 내려놓고, 돈 버는 것도 내려 놓고, 꿈을 접고 한국으로 철수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꿈인 성도들이 많았을 텐데 ‘정말 이곳에서 공부 잘 시켜서 훌륭하게 키워야지’했던 계획들도 모두 한 순간에 일시정지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내 힘대로 안 되고, 내 경험과 지식도 소용이 없고, 내 계획 대로도 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비우고 내려 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내년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하나? 무슨 계획을 갖고 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지만 막막하기만 합니다. 차라리 나의 모든 생각들과 계획들을 내려놓고, 성령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에 맡기고 사역하는 것이 최상의 목회 플랜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우리는 옛것에 너무 집착하며 살아왔습니다. 물질적인 것, 내 경험과 능력과 지식들, 어떤 환경적인 것들… 우리가 과거에 하나님보다 지나치게 의존하고 사랑하며 살아왔던 모든 것들을 비우고, 이제 그 안에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시길 축복합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비워야 하나님의 것이 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 새것을 채움

마태복음 5장은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고 해서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 장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오늘 본문은 여덟 가지의 복에 관한 말씀이라 ‘팔복’이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는지 간단히 먼저 살펴보시겠습니다.

 

3절부터 10절까지 소개하고 있는 여덟까지의 복(팔복)은

(1) 심령이 가난한 자

(2) 애통하는 자

(3) 온유한 자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5) 긍휼히 여기는 자

(6) 마음이 청결한 자

(7) 화평하게 하는 자

(8) 의를 위해 박해 받은 자

 

(1)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말 그대로 그 마음이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습입니다.

(2) 애통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와 슬픔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온유한 자가 복이 있는데, 세상에서는 이기적으로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차지했어도 한 개인도, 큰 회사도, 큰 나라라 할지라도 한순간에 그것들을 불어버리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겸손하며 온유한 사람들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부으시고,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시고, 영적으로 배부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누군가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연약한 사람들을 향해 완고하고 불쌍히 여기지 않고, 돕지도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겠습니까?

(6) 하나님은 마음이 깨끗이 비워져 있는 사람, 그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의 눈을 밝히셔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세계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7) 또한 하나님은 화평의 사람들을 좋아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평화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화평을 깨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양보하고, 이해하고, 섬기는 사람이 있는 곳은 평화로운 것입니다.

(8)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자 역시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복음으로 인해 고난을 받으나, 그에게 천국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덟 가지를 찬찬히 살펴보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세속적인 복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세상에서는 성공하고, 형통하고, 부유하고, 유명해지고, 강하고, 능력 있어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을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깨끗한 자, 화평한 자, 박해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많은 것들을 비우고 또 비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비워냄과 관계가 깊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란 책은 미국에서 60년 동안 최고의 베스트 셀러로 미국민들에게 읽혀졌습니다. 이 책을 쓴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께서는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늘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훈련하셨습니다.

그렇게 성자와 같은 분이 ‘영적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어렵게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싶고,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며 기도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삶은 도리어 하나님께 집중하는데 어렵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고난은 거의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반면, 축복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것을 보게 하기 쉽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믿음이 가장 좋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성령으로 가장 충만했을 때는 모든 일들이 형통하고 아무 걱정이 없을 때가 아니라 가장 힘들고 어려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깊은 고난의 터널 안에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까? 그때는 나를 도와 줄 사람도 없고, 비빌 언덕도 없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했었습니다. 하지만 숨 좀 쉴만하고, 좀 살만하다 싶으면 이것저것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올 한해를 살면서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왔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서는 필리핀에 10년, 20년을 사시며 기반을 다져오신 분들도 계셨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멈추고, 이 엄청난 재앙과 같은 상황은 견고했던 삶의 뿌리마저 흔들어 놓았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고, 애통하며 하나님 앞에 절박하고 간절할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우리의 믿음도 점검해 보기도 하면서 날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이 시련의 날들을 견뎌 가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많은 것들을 비워낼 수밖에 없었던 한 해를 살아왔지만,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과 절박함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사도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하였습니다. 1년 간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그동안 우리가 붙들고 있고, 의지하고, 사랑했던 많은 것들을 비우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온유하고, 겸손하고, 청결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 주님과 더 가까워지게 하셨습니다. 겉사람은 낡아 지지만 우리의 영은 날로 더 새로워지고, 썩어지지 아니한 하늘의 것들로 채워져 나가게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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