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5~13>
보통 건강에 관련된 여러 가지 보험을 들려고 하면 보험회사에서 따지는 게 많습니다. 그 사람의 건강상태나, 과거 병력 심지어 가족들의 병력까지 다 조사해 보고 가입을 받아주는 겁니다.
저 역시도 작년 11월에 갑상선 암 수술을 했었는데, 갑작스럽게 그런 병에 걸리고 나니깐 ‘여기저기 보험을 좀 들어 놓을 걸…’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담임목사가 아프니깐 우리 성도님들이 저를 걱정해서 ‘목사님 보험을 좀 들어드리자’고 마음을 모았고, 우리 집사님 한 분이 유명한 보험회사에 연락해서 저의 건강관련보험을 좀 들려고 했더니, 앞으로 5년 동안 저는 그런 보험을 들 수 없다는 결과를 통보 받았습니다. 5년 동안 암이 재발하지 않아야 완치된 걸로 보고 그 때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십여 년 전에 탤런트 이순재 씨가 노인들을 위한 실버보험 광고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광고에 기발한 카피문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아 걱정 없이 가입할 수 있습니다. 무진단 무심사.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OK’ 이건 가입자들에게 ‘복음(Good News)’과 같은 광고카피문구였던 겁니다.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들을 달지 않고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가입해 준다는 겁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기가 막힌 광고카피입니다. 아마 그 회사 돈 좀 벌었을 거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5절)’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6절)’에 대해서 비교하며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시면,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그러니깐 누구든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킨다면 그 사람은 의롭다함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로마서 3:10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에서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율법을 완전하게 지킨다면 분명 그 사람은 그것이 그의 의로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죄성(罪 性)때문에 그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온전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종종 경험하는 바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은혜 받아 울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굳은 결심을 하고 예배당을 떠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믿음의 결심들이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게 너무나도 연약한 우리 인간의 현실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수많은 규율들을 나열합니다. 인간은 그것을 지킴으로 율법적 의를 얻어내려고 시도합니다. 그래서 그 중 몇 개를 지켰다고 그 의를 얻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마치 한 주간 죄 속에서 실패하고 엉터리로 살았으면서 주일날 교회 다녀왔다고 ‘천국은 가겠지’라고 위안을 삼는 것입니다. 율법적 의는 인간의 불완전함 때문에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그 수많은 규율들을 통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율법은 구원 받으려면 많은 규율들을 철저하게 지켜야만 구원 받는다고 말합니다. 구원은 쉽게 받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6,7절). 이게 ‘종교’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수많은 종교들 가운데는 그렇게도 많은 규율들이 있고, 반드시 그것을 행해야지만 구원 받기 때문에 그들은 어쩌면 크리스천들보다 더 철저한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8절을 보시면,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그러나 ‘복음’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율법’ 곧 ‘종교’와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 구원이 그렇게 어렵고 멀리 있지 않다는 겁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시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입으로 예수를 주(LORD)로 시인하기만 하면,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 사람의 과거와 죄와 능력과 신분… 그 어떤 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행위를 통해서 자기의 힘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고, 복음은 예수를 믿음으로 시인함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종교는 여전히 자기를 의지하는 것이고, 복음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신, 나의 죄를 위해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12절과 13절을 보시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의 죄가 많고, 하나님 보시기에 형편없이 부족하고 연약해도 더 이상 소망이 없는 나를 의지하지 않고, 나의 죄를 위해 율법을 만족시키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이들을 얼마든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지금도 그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 내 삶에 어떤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나를 의지하지 않고 예수 이름 부를 때,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