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7~24
한국에서 사역했던 의정부광명교회는 대형교회였기 때문에 성도수가 아주 많았고 그래서 제가 섬겨야 하는 교구식구도 참 많았습니다. 그렇게 성도들이 많다 보니깐 경조사가 참 많습니다. 축하할 일도 많았지만, 특히 아픈 환자들을 위로하고 기도해 드리기 위해서 전국의 병원을 돌아다니며 심방을 다녔었습니다.
그런데 환자 심방 때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것은 ‘암’과 같은 중환자들의 경우 생존율이나 완치율이 다른 질병에 비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로 기도하고 올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암 종류 중에 ‘갑상선(샘)암’의 경우는 1기부터 3기까지는 98.5~92%가 넘는 생존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암 환자들 중에 그나마 마음의 안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폐암이나, 췌장암의 경우는 4기까지 가면 생존율이 1~2%대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거의 살 소망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들도 그런 통계 때문에 많이 절망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의 생존율에 관한 그런 통계들 때문에 환자들이 소망을 갖기도 하지만, 절망을 하기도 하는 겁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밀리는 겁니다.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명의 선례를 통해 소망을 갖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는 겁니다. ‘확실히 낫는다’는 통계와 선례가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암이라도 그나마 마음이 편한 겁니다. 갑상선암이 그런 경우에 속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일들도 있겠지만, 그 중에는 내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불안 속에 빠져 살 수 밖에 없는 일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너 죽지 않는다. 너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너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너를 도와 주신다. 하나님이 너를 붙들어 주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마치 생존율이 아주 높은 병의 경우와 같이, 마음속에서 두려움들이 밀려나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생존에 대한 확신과 같이, 소망을 갖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은 지금 큰 어려움 속에 있는 겁니다.
-(19절)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22절)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23절)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지금 시인은 어떤 사람들로부터 큰 환난을 겪고 있었던 겁니다. 주변에 시인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없는 겁니다. 나그네처럼 외로움을 겪고 있고, 비방과 멸시를 받고 있고, 권세가 있는 사람들도 그를 비방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시인이 갖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함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나는 더 이상 재기할 수 없는 것인가? 내가 과연 사회에 복귀할 수나 있을까?’이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시인이 붙들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의 증거’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증거와 선례들인 것입니다. 생존율이 높은 어떤 통계와 선례들을 보며 그것이 어떤 환자에게는 마음의 안정을 갖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시인의 경우에는 그런 통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성을 붙들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믿음의 역사를 살펴봤을 때,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그 말씀은 실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을 보시면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들에서 떠나는 자들은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교만한 자들은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의 증거를 통해서 확신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은 너무 어려운 지경이지만, 그는 환난 속에서 말씀을 붙드는 겁니다. 그래서
-(17절) 주의 종을 후대하여(너그럽게 대해 나를) 살게하소서
-(18절)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19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20절)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합니다.
-(22절)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켰사오니
-(23절)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그리고 24절에서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Counselors)니이다’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그 말씀의 증거들 때문에 지금의 환란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고, 위로와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의 증거에 대한 분명한 확신은 어떤 통계에 대한 생존율을 믿는 것과 다릅니다. 어떤 작은 가능성이 아니라, 말씀의 증거는 확실한 겁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는 겁니다. 그리고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 가지 환경적인 어려움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말씀의 증거들로 세상을 이기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