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광야에서”

<출애굽기 13:21~22>

 

 

[Audio 말씀]

 

혹자는 우리의 인생을 가리켜 ‘인생은 광야와 같다.’라고 말합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넓은 들판, 누구도 살지 않는 황무지’를 말합니다. 왜 누구도, 아무것도 없겠어요?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좋은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농사를 짓기도 어렵고, 밤과 낮의 기온차가 커서 추위와 더위가 반복되고, 거친 황무지에 사는 독사와 전갈과 같은 맹독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사막 길을 가로질러 여행하는 여행자들을 약탈하는 도적 떼가 숨어있는 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광야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인생이라는 것이 이 광야와 같이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고, 직장생활하는 것도, 돈 버는 것도 또는 결혼생활까지도 쉽게 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쉬운 길을 찾고, 쉬운 일을 찾지만 따지고 보면 쉽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끊임없이 우리는 광야를 개척해 나가듯 여러 가지 힘든 일들과 위험들을 감수하며 인생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인생이 광야와 같다고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의 인생 그리고 신앙생활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야곱의 자손 70명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 살다가 애굽인들의 노예로 생활하며 430년을 보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그들은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것이 성경에 나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의 ‘죄의 종’ 아래에 있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 출애굽하게 되는데, 우리가 죄의 종이었으나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의 피로 죄에서 구원(출애굽)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는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구원받아 거듭나게 되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것 처럼 우리도 인생의 광야에서 예수님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천국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광야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듯이, 우리는 인생의 광야를 살아가면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영적인 가나안 이라고 할 수 있는 천국에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거듭남)’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광야와 같다는 말은 참 일리가 있는 표현이라 생각이 듭니다.

2020년인 작년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계획들이 틀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는 이정표 없는 광야를 걷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셨고, 그들이 주리지도, 헐벗지도 않게 돌보셨던 것과 같이 이 인생의 광야에서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1. 나는 너를 인도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사건을 통해 급히 출애굽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출애굽하여 광야 길로 들어가면서부터 특별한 현상이 그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21절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그들이 광야로 들어가면서 그들 앞에는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라는 것이 나타나 그들의 길을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역할 중 첫 번째는 길도 없고, 이정표도 없고, 어디로 어떻게 갈지 모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길을 인도하는 인도자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21절의 주어는 ‘여호와께서’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인도하고 계신다고 하는 상징적인 특별한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 그들 앞에서 그들을 인도했고, 약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멀리서도 그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40장 36절과 37절 말씀에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중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을 만들게 되는데, 그 이후에는 구름기둥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었고, 밤에는 그 구름기둥이 불기둥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진을 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깐 구름기둥이나 불기둥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다가 더이상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멈추어 있으면, 바로 그곳에 성막을 쳤고, 백성들은 그 주변 사방에 세 지파씩 열두 지파가 진을 치고 머물게 됩니다.

그러다가 구름이나 불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움직이라는 하나님의 신호였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장막을 거두고 짐을 싸서 구름기둥이나 불기둥을 따라 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하루 만에 이동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경우는 한 달이고, 석 달이고, 1년이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지 않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백성들도 구름이 떠오르는 날까지 움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 있어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바라보며 움직였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생을 살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멈추면 우리도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가실 때,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해 나가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분이 움직이라고 사인을 주실 때는 또 움직이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것이 하나님의 사인인지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어떤 내적인 확신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참 존경하는 A.W.토저(Aiden Wilson Tozer, 1897~1963) 목사님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 놓은 사람은 행복한 삶을 그리스도께 맡긴 것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신다면 내 생각과 내 계획조차도 내려놓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삶을 온전히 맡기십시오.

걱정이 없는 인생, 염려가 없는 인생은 단순합니다. 내가 너무 많은 계획과 욕심이 있어서 염려와 걱정이 자꾸 커지는 것입니다. 그걸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를 인도해 가시는 것을 경험하시길 축복합니다.

제가 30대 젊은 목회자로 사역할 때, 제 미래가 답이 없는 거 같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매일 새벽마다 답답함 속에 기도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새벽을 제가 잊지 못하는데, 주님께서 제게 ‘너의 인생은 누구 것이냐?’라고 물으시는 겁니다. 저는 ‘제 인생이야 주님의 것이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너는 왜 나의 것을 갖고 네가 염려하고 걱정하느냐?’라고 책망하시는 겁니다. 그 응답 이후로 막막했던 제 인생과 사역이 활짝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가라’하는 데까지 가고, ‘멈추라’하는 곳에서 멈추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믿으십시오. 지금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를 이끌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우리의 눈이 열려 주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기도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 인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일부터 40일 동안 ‘새 일을 행하소서’라는 기도 제목으로 작정해서 기도하자는 거 아닙니까? 40일 동안 주님의 놀라운 인도와 응답과 지혜가 임하는 시간 되시길 축복합니다.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모든 계획을 틀어지게 했습니다. 새해가 되었지만 우리는 미래를 계획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음 달에는 상황이 좋아질지, 두 달 뒤에는 어떻게 될지, 아니 올 한해가 어떤 식으로 바뀌게 될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길도 없고, 이정표도 없는 광야의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편 37편 5절에서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맡기지 않으면, 길도 없고 이정표도 없는 인생의 광야 길을 이리저리 방황하며 인생을 낭비할 뿐입니다. 광야 같은 인생 길에 들어선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될 것이다. 나는 너를 인도할 것이다. 나는 너를 도와 줄 것이다. 나는 너를 이끌어 줄 것이다. 네 길을 맡기라. 나를 신뢰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우리 주님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 맡기십시오.

 

2. 나는 너를 보호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셨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두 번째 역할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3장 22절 말씀을 보시면,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사람들이 ‘사막’이나 ‘광야’를 생각하면 ‘모래 언덕’과 같은 것을 상상하는데, 그곳은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고, 무척 더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사막과 광야는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모래 언덕과 광야가 된 것입니다. 사막이나 광야의 밤은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의 열기로부터 보호받고, 밤과 겨울의 영하의 추위로부터 살아남으려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무 그늘 하나 없는 광야와 사막의 길을 걸어갈 때 구름기둥이 없었다면 며칠 내에 모두 열사병으로 쓰러져 죽었을 것입니다. 또 사막의 밤에 찾아오는 영하의 날씨에 불기둥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저체온증으로 얼어 죽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22절 말씀에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했다’라고 왜 말씀하셨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떠나지 않고 늘 함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8장 9절에서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도 ‘자신에게 속한 자들 중에 하나도 잃지 않으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서도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겠다는 것은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아니하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결코 우릴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늘 함께 하셨던 것처럼,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엉망이 되어 버려 광야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들과도 여전히 함께하실 것입니다. 지켜 주실 것입니다.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어 단어 중에 ‘말하다(Dabar)’는 단어는 특별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말들이 파생되었기 때문입니다.

말하다(Dabar)의 명사형으로 ‘말씀(Dabar)’이란 말이 나왔고,

광야의 성막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보관한 가장 거룩한 장소였던 ‘지성소(Dbyr)’라는 단어가 파생되었습니다.

그리고 Dabar(말하다)에서 ‘광야(Midbar)’라는 단어 또한 파생되었습니다.

 

이 단어들을 종합하면 이런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해석하자면 ‘광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광야는 주님을 섬기는 지성소가 있는 곳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테반 집사님은 사도행전 7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을 ‘광야교회’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광야를 걸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시련과 고난의 날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울릴 때도 없습니다. 불러 주는 사람도 없고, 만나자 하는 사람도 없어 날마다 성경을 읽는데 그 말씀 속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 선명하게 들립니까?

 

– 과거 평안할 때는 그냥 평범했던 말씀이었는데, 인생의 광야를 걸을 때 그 말씀은 내게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생명의 말씀으로 다가와 주시는 것입니다.

– 과거 어려움이 없을 때는 교회는 그냥 교회였는데, 시련과 고난의 광야 길을 걸을 때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위로의 말씀, 소망의 말씀, 비전의 말씀이 있는 하나님의 지성소로 바뀌게 됩니다. 스테반 집사님의 말씀처럼 내 인생의 광야는 내 평생에 하나님을 가장 깊이 만나는 거룩한 지성소로 변하는 것입니다.

 

광야는 의지할 사람도 없고, 의지할 환경도 없고, 기댈만한 어떤 조건도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 인생의 광야에서 우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고, 주님의 돌봄과 보호 그리고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틴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성경을 읽다가 교황청의 가르침이 성경에서 너무나 벗어나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의 반박문을 붙이면서 종교개혁의 불꽃을 지핀 인물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했을 때, 교황청으로부터 파면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신앙 양심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교황청에 의해 파면되었지만, 그를 통해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지금 우리 개혁주의 교회들이 성경을 통해 바른 믿음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손으로 모든 것을 움켜쥐려 했을 때 내게 남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을 때, 나는 여전히 소유하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가 벌써 1년 동안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언제 과연 백신을 맞게 될 것이며, 집단 면역은 언제 가능해 질 것이며, 나는 언제 다시 일상의 삶을 회복할 것이며, 우리 성도들은 언제 다시 세부로 돌아와 다시 일터로, 생업의 현장으로, 학교로, 교회로 돌아올 수 있게 될지, 언제 다시 예전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하는 그래서 여전히 광야와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야는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고, 비우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린 이 광야에서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으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되어 주셔서 우리를 이 광야에서도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공급해 주시고, 돌봐 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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