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13-120
딸하고 아들을 키워보면 그렇게 가르친 것도 아닌데 성향이 참 다릅니다. 적어도 저희 아이들의 경우는 그랬던 거 같습니다. 아이들이 3~4살이 되면 자기 고집이 좀 생깁니다. 그래서 어디 외출하면 엄마 손을 뿌리치고 자기 혼자 막 가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꼭 넘어져 다치는 아이는 언제나 아들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딸 아이는 아들보다는 좀 겁도 많고 그래서 그런지 늘 아빠나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자라면서 저희 딸은 한 번도 뼈가 부러져 깁스를 한 적이 없었는데, 아들아이는 팔과 다리를 번갈아 가면 네 다섯 번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져 깁스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팔에 깁스를 이미 하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풍선 터뜨리기 게임을 하다가 발목을 다쳐서 동시에 다리까지 깁스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제 걸음마를 막 배우는 아이들, 아직 자기 앞가림을 하지 못하는 유아, 유년기의 아이들에게 부모의 손이 꼭 필요하듯이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붙드심이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0:12절 말씀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하셨습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도, 인생의 전성기, 영적인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도 한 순간에 넘어지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가 주님의 손을 붙들고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음을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붙들어 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116~117절 말씀에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 하리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실 때, 비로소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서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것을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116절) 주의 약속에 따라 나를 붙잡아 주소서, 그래야 내가 살 것입니다….
(117절) 나를 붙드소서. 그러면 내가 무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붙드심이 있을 때, 그것은 곧 나의 생명과 구원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주님께서 붙잡아 주실 때 내가 살아나고, 환란 속에서도 내가 무사할 것을 알았던 겁니다.
끊임없이 세상은 우리가 어떤 위기를 만났을 때,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것을 유혹해 옵니다. 그래서 시인은 115절에서
너희 행악자들이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
주변에서 어떤 유혹이 있다할 지라도,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겁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떠나는 자들이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8절에서 “주의 율례들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라고 되어 있고, 119절에서는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찌꺼기 같이 버리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지금 큰 어려움을 만나 고난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의 붙드심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 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113절)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114절)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115절)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
-(117절)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 하리이다
-(119절) …내가 주의 증거들을 사랑하나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붙드심을 간절히 구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세상을 승리할 수 있는 비결,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임을 믿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붙드심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붙드는 것임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을 때, 고난 속에 있는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붙드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