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3:1~4>
전라남도 남원을 배경으로 지어진 소설이 하나 있는데, <춘향전>입니다. 이 도시에 새로 부임한 사또 ‘변학도’는 그 지역에서 유명한 기생들을 불러 매일같이 술판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용모도 아름답고, 시와 그림에 뛰어나 온 고을에서 칭송을 받았던 춘향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변사또는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강요합니다. 당시 ‘사또’는 그 도시의 정치적, 행정적인, 민형사적인 면에 있어서 거의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또에게 많은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겪어도 어디 하소연할 때가 없는 겁니다. 그 때 한양에서 장원급제한 이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서 신분을 숨기고 변사또가 잔치를 벌인 장소에 가서 변사또에게 ‘시’를 하나 지어 보이게 됩니다.
『황금술잔에 담겨있는 맛좋은 술은 천명 백성의 피요,
옥쟁반에 담긴 맛있는 고기는 만 맥성의 기름이라.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피눈물이 떨어지고,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울려퍼지는 곳에 원망소리 드높아진다.』
암행어사였던 이몽룡은 변학도의 악행을 다 지켜보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도령은 암행어사로 출두해서 악을 행했던 변학도를 징벌한다는 것이 춘향전의 스토리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권세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위에 더 큰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권세에 의해 반드시 심판 받을 날이 오게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시편123편의 시인은 세상의 힘있는 어떤 권세에 의해 억울한 일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3절 말씀에 보시면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4절 말씀도 보시면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말 성경>을 통해 보시면 ‘안일한 자(proud)’는 ‘거만한 자’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런 성공으로 어떤 부와 권세를 얻게 된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권세로 연약하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위에서 거만함과 교만함으로 그들을 억압하고, 조롱하고, 멸시하는 겁니다.
그 악인들로부터 있는 멸시와 조롱이 얼마나 시인을 힘들게 했으면 3절에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또 4절에서도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라고 했겠습니까?
큰 권세를 갖고 있는 거만하고 교만한 자들로부터 그런 심한 멸시를 받는데도 상대적으로 시인에게는 그것을 대항할 어떤 힘도 없는 겁니다. 때때로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들에 직면할 때가 있는 겁니다. 내게는 그런 힘에 대항할 어떤 능력도 없음을 보고, 자신의 무능력함을 탓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세상에서 아무리 힘과 권세가 많은 사람이 거만함과 교만함을 가지고 나를 멸시하더라도 그 위에서 그 교만한 자를 지켜보시고 심판하실 하늘의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확신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집중하고, 세상의 어떤 권세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겁니다.
1절과 2절 말씀을 보시면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나에게는 악인들을 대항할 아무 힘도 없어서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바라보는 겁니다. 그래서 3절에서도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임할 때, 우리의 모든 억울함이 벗어지는 겁니다. 우리를 조롱하고 멸시했던 거만하고 교만한 자들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주로 오셔서 거만하고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하늘에 계신 이에게 비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현실 속에 있는 모든 관계의 어려움들에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