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4:15~23>
보통 ‘인간은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다’라고 하는데, 여기 한자에 보시면, ‘영장(靈長)’에서 쓰여 지는 ‘영(靈)’자가 ‘신령 영’자를 씁니다. 사람이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영적인 존재로 지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피조물)들 중에 가장 신령하고 으뜸이 가는 존재이다’라는 것입니다. 가장 신령하고 으뜸이 가는 존재인 것은 분명한데, 우리 사람이 성장하는 속도는 다른 피조물들보다 많이 느립니다.
사람하고 가장 친숙하고, 지능도 우수한 개의 경우, ‘갓 태어난’ 새끼는 눈도 감겨있고, 귀도 막혀있습니다. 2~3주 정도 지나면, ‘강아지’는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귀여울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강아지는 6~8주 정도 지나면, ‘어린 개’가 되어서 이빨이 나고 밥(사료)을 먹기 시작합니다. 이 정도까지가 참 예뻐요. 여기서 그냥 안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 예쁜 강아지가 9~12개월 정도가 되면 다 자란 ‘성견’이 됩니다. 그러면 짝짓기를 해서 새끼를 낳아 키울 수가 있습니다. 성견이 되는데 1년도 안 걸립니다.
이에 비해 ‘사람’은 성장의 속도가 어떤 피조물들보다 늦습니다. 보통 사람의 성장 과정을 ‘유년기(0~7세)’, ‘소년기(8~17세)’, ‘청년기(18~30세)’, ‘장년기(31~59세)’ 그리고 ‘노년기(60세 이상)’ 이렇게 구분합니다. 개의 경우는 1년이면 성견이 되어서 새끼까지 낳는데, 사람은 태어나서 1년 정도까지는 잘 걷지도 못합니다. 모든 피조물들 중에 가장 오랫동안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적어도 한 20년 이상은 부모의 돌봄과 양육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 걸린 것, 정성을 많이 들인 것일수록 가치가 그만큼 큰 것입니다. ✓ 마가복음 8:36절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하시면서 ‘한 사람의 영혼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사실을 깨우쳐 주시려 우리 인간을 어떤 생물보다 더 오래토록 성장기를 갖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성장기를 갖는 것과 같이, 우리가 어느 날 어떤 꿈을 갖기 시작했다고 해서 그 꿈이 하루아침에 또는 강아지의 성장기처럼 몇 주 만에 뚝딱하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꿈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위해 치루어야 할 댓가는 더 크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비전을 성취해 가야하겠습니까?
1. ‘기도(Prayer)’로 장애물을 제거하라
B.C. 586년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유다왕국은 멸망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 성의 왕궁과 성벽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후에 바벨론 포로에서 유다백성들이 귀환했지만 성벽재건은 너무나도 큰 비전이었고, 어느 누구도 감히 그 성벽재건에 대한 꿈을 꾸지 못했었습니다.
또 바벨론에 이어 패권을 잡고 있었던 페르시아의 황제 아닥사스다 왕은 ‘예루살렘 성벽재건 금지명령(에스라4:21)’을 내렸었습니다. 국법으로, 황제의 명령으로 금지된 사안이 예루살렘 성벽재건이었습니다. 그렇게 140여년 동안 예루살렘 성벽은 전체가 무너진 상태로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재건에 대한 그 엄청난 비전을 받은 겁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날 나눴던 말씀에서 ‘장애물이 없는 비전은 없다’라는 소주제를 나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갖고 있는 비전은 너무 좋은 것이지만, 그것에 대한 저항을 뚫고 나가야 했습니다. 북쪽에서는 사마리아족속, 동쪽에서는 암몬족속, 남쪽에서는 아라비아족속, 서쪽에서는 아스돗족속이 군대를 동원해 은밀하게 기습적으로 예루살렘을 치고, 사람들을 죽이고, 성벽 공사를 중단시키려는 계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15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일하였는데”
성벽재건을 방해하려는 대적들의 기습작전을 누가 눈치챘어요? 느헤미야가 눈치를 챈 겁니다. 그들은 은밀하게 기습하려고 했는데, 이미 느헤미야는 그 은밀한 작전을 다 파악하고 있었던 겁니다.
느헤미야가 눈치 챘다고 했는데, 그런데 15절 말씀에 보니깐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으므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원어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계획을 부수셨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정확히 말하자면, 느헤미야가 대적들의 계략을 눈치챈 것은 ‘하나님께서 그 대적들의 계획을 부숴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를 도우셔서 그가 그들의 모든 계략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서에 보시면 느헤미야가 모든 상황 속에서, 어떤 일들 앞에서 그리고 생활 속에서 항상 기도했던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의 황폐함을 들었을 때’ 느헤미야는 바로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다(1:4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황제에게 성벽재건에 대한 요청을 할 때’도 보면, 왕이 느헤미야에게 ‘내가 어떻게 널 도와줄까?’ 이렇게 말하는데,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런데 느헤미야가 바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요? 느헤미야 2:4절 말씀에 보시면,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기도)하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느헤미야는 기도했던 겁니다.
또 느헤미야가 본격적으로 성벽을 재건하려고 하니깐, 대적들이 느헤미야의 계획을 조롱하고 비방하게 됩니다. ‘대적들의 조롱과 비방의 내용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합니까?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 그런 장애물을 만나면 낙심하는 경우가 많은데, 느헤미야는 바로 기도의 자리로 들어갑니다. 4장4절에 보시면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하며, 그 장애물도 넘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낙심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비전을 성취하도록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그 이후 대적들의 적극적인 방해가 시작되는데, ‘대적들의 기습공격 계획을 알게 되었을 때’ 느헤미야가 첫 번째로 한 것은 기도였습니다. 4장9절에 보시면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 받아 예루살렘에 오게 된 것입니다. 페르시아 황제에게 인정받던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똑똑했겠습니까? 아는 게 얼마나 많겠습니까? 경험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느헤미야는 어려운 일들 앞에 무릎부터 꿇는 겁니다. 그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울며 밥도 굶고(금식) 기도하며 도움을 구하는 겁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알고, 경험이 많다고 할지라도 우린 사람일 뿐입니다. 오늘 하루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 알 수 없는 게 연약한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렇게 기도했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4장에 등장하는 ‘느헤미야의 기도’ 세 번째, 네 번째의 경우는, 대적들이 느헤미야가 없는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했던 비밀스런 얘기였습니다. 또 그 기습작전 역시 그들만의 1급 비밀이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이미 그 계략들을 다 알고, 백성들과 함께 대비하고 있는 겁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경구절 예레미야33:3절 말씀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할 때, 대적들의 은밀한 계획들까지 눈치 챌 수 있었던 것이었던 겁니다. 느헤미야에게 있었던 큰 비전은 기도로써 이루어 갔던 겁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할 때 그 앞에 있었던 장애물들도 제거할 수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무릎을 꿇을 때, 여러분 앞에 있는 모든 장애물들도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비전이 있어도, 아무리 좋은 비전이 있어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을 어떻게 하시려 합니까?
그러나 기도할 때 그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장애물을 부숴버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기도의 무릎을 꿇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비전의 고속도로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로 장애물을 제거하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비전을 성취해 갈 수 있겠습니까?
2. ‘최선(Best)’으로 승리를 준비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비전을 성취해 나가기 위한 중요한 요소는 기도와 함께 ‘최선의 자세’입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재건을 좋은 환경 속에서 하지는 못했습니다. 140여년 동안 무너져 있었던 예루살렘 성벽 전체를 재건한다는 것은 엄청난 공사였습니다.
<지도부>라고 할 수 있는 총독 느헤미야와 그와 함께 페르시아에서 온 수행원들 중에 절반은 성벽재건에 투입되었고, 절반은 완전무장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16절).
<건축부>라고 할 수 있는 ‘건축하는 자, 짐을 나르는 자’가 17절에 나오는데, 그들은 한 손으로는 일을 하고, 한 손에는 무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18절에도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일을 했다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대적들이 쳐들어올 것을 대비해 그들은 칼과 창을 들고 긴장상태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비상사태>를 대비해 나팔 부는 자는 느헤미야 곁에 서서 비상시 나팔을 불게 했고, 그 때 동서남북 성벽 전체에 흩어져 일하고 있던 백성들이 그곳으로 모여 함께 싸운다는 작전을 준비했습니다(18~20절).
<백성들> 온 백성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동틀 때부터 별이 뜨기까지 창을 잡고, 성벽공사를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야간에도 파수꾼들을 세웠습니다(21~22절).
느헤미야와 온 백성들이 어떻게 최선을 다해서 대비를 했는지를 23절 말씀 한 구절을 통해 정리하고 있는데,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23절)”
그들은 잘 때도 편안하게 옷을 벗고 쉬지 않았습니다. 물을 길으러 갈 때도 무기를 들고 비상의 사태를 대비하며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 3:10절 말씀을 통해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시면서, 그리스도인의 게으름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많이 하고, 성경은 많이 읽고, 교회생활은 열심히 하는데… 세상 속에서는 게으른 사람으로 보여 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가정도 잘 돌봐야 하고, 자녀들도 잘 키워야 하고, 직장과 일터에서도 늘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너무 피곤하셔서 배 뒤쪽에서 주무시고 계셨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광풍이 불어서 배는 거의 침몰할 거 같고, 물은 배에 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주무시고 계시는 겁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울 때까지 계속 주무셨었습니다. 주무신 척 하신 게 아니고, 정말 그렇게 피곤하셨던 겁니다. 얼마나 피곤하셨으면 그런 상황 속에서도 깊은 수면을 취하셨겠습니까? 그만큼 최선을 다해 일하셨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악하고 게으른 종아(마25:26)”라고 책망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예수님께서는 ‘게으름은 악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게으름도 죄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만 하지 말고, 열심히 기도했다면 하나님 앞에서 최선의 삶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최선’ 이 두 가지가 균형을 맞출 때 여러분의 꿈도 온전히 이루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시험 보고 나서 ‘아, 몇 번 문제 풀수 있었던 거였는데, 내가 어제 밤에 조금만 더 준비했다면, 조금만 책을 더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겁니다.
그거처럼 여러분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겁니다. 지금의 여러분의 모습보다 더 멋진 삶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안에는 이미 그 최상(Best)의 유전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BEST 라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서 그 비전을 향해 달려간다면 그 꿈은 여러분 앞에 더 빨리 성취될 것입니다.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기도하고 느헤미야처럼 최선으로 승리를 준비하십시오. 그 사람들이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믿음(Faith)’으로 승리하라
느헤미야는 큰 꿈과 비전이 있었습니다. 140여년 동안 중단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그 누구도 이룰 수 없었던 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유대인들에게 그 꿈과 같은 일, 상상할 수도 없었던 큰 비전을 느헤미야라는 사람이 받은 겁니다. 비전은 받은 자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꼭 그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그 비전을 성취해 나갔습니까?
‘느헤미야’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신임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그 위치까지 올라갔다면 그가 페르시아라는 세계 대 제국아래에서 얼마나 두각을 나타내야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대단히 총명하고 지혜롭고 경험이 많았을 것이고, 아는 것도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힘을 의지하지 않고, 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했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는 ‘최선의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일을 철저하게 준비해 나갔던 사람이었고, 앞으로 되어질 모든 일들에 대해 대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만 하지 않고, 모든 일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BEST)을 다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렸던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서 모든 일에 만반의 준비를 다했습니다. 모든 백성들도 낮에는 성벽을 쌓았고, 성벽을 쌓으면서도 칼을 허리에 차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또 깊은 밤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파수꾼들을 세웠습니다.
오늘 본문 20절 말씀을 보시면,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그들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무장한 상태로 성벽 재건공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문적인 군사들이 아니었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분명 전문적으로 군사 훈련을 받은 대적들이 쳐들어 올 경우에 승리할 확률이 떨어지는 겁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에게 어떤 믿음이 있었어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느헤미야는 군사적으로는 훈련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오합지졸 부대를 갖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을 위해 싸우시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그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믿음의 인물들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들이 지혜와 지식과 학력과 돈과 권력과 세상의 능력으로 살았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11장을 살펴보면 계속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By faith : 믿음으로>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는데, ‘믿음으로 아벨은, 믿음으로 에녹은,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은, 믿음으로 야곱은, 믿음으로 요셉은, 믿음으로 모세는…’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되는 줄 아세요?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그렇게 총 23회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쭉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하다가 38절에서 마무리하기를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싸운 사람들이 결국 승리하게 되었고, 이후로도 그들이 결국 최후 승리자가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대단하십니까? 여러분이 갖고 있는 능력은 얼마나 되십니까?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 있습니까? 그러나 마지막의 최후 승리자는 믿음의 사람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십시오. 느헤미야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요약>
“어떻게 비전을 성취해 가야 하는가?”
–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라(12) –
1. ‘기도(Prayer)’로 장애물을 제거하라
2. ‘최선(Best)’으로 승리를 준비하라
3. ‘믿음(Faith)’으로 승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