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라(23) –

<느헤미야 8:1~12>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때까지 가나안 땅에서 그들은 하나의 가문이요, 부족으로 지냈었습니다. 그런데 기근으로 애굽(이집트)에 내려가 430년 동안 지내면서 성인 남성만 60만명에 이르는 큰 민족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후에 출애굽을 하고, 40년의 광야생활을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고 하나의 국가 형태를 이루었지만, 거의 500년 동안 그 땅을 통치하는 이스라엘의 왕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명기 17장14~20절까지의 말씀을 보시면 약속에 땅에 들어가 왕을 세우게 될 때, 그 세워진 ‘왕이 하지 말아야 할 3가지’를 언급해 두셨는데, 첫째, ‘병마(兵馬)를 많이 두지 말라’ 둘째,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셋째, ‘은금을 많이 쌓아 두지 말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있는데 ‘병마’는 왕과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사력을 의지’하게 될 것을 경계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신 것은 왕이 ‘육체적 정욕’에 치우쳐 범죄 하게 될 것을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하시는 것 역시 왕이 ‘물질적 탐심’에 눈이 멀게 될 것을 경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왕이 꼭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는데, “율법서의 등사본을 ①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②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③율법의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라” 하셨습니다. 군사력도 의지하지 말고, 육체적 정욕에 치우치지 말고, 물질적 탐심을 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말씀을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①그의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②범죄 하지 않게 되리니, ③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 때에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었고, 큰 부를 갖고 있었지만 다윗은 늘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반면 하나님께로부터 큰 지혜를 받았던 솔로몬은 왕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모두 범했습니다(참조, 왕상10:26~11:3). 결국 솔로몬 왕의 집권 후반기부터 나라가 흔들리더니, 결국 그 아들 르호보암 왕 때에 나라는 두 동강이 나게 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 우리는 치우치게 되어 있고, 그것을 즐거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힘을 얻기도 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돈(물질)’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하고, 어떤 ‘환경’이기도 할 것입니다. 위에 말씀드렸던 신명기17장은 ‘왕을 향한 경계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왕을 향한 축복의 말씀’이기도 한 겁니다.

이것은 왕의 경우 뿐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무엇을 하든지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기뻐하며 살아야 복된 인생을 살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민생활이 녹녹치 않은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도 모르고 그나마 알고 있던 지인 한 사람보고 여기 왔는데, 내가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그 사람에게 어느 날 크게 실망하고, 이민생활의 환멸을 느끼는 경우가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많습니까?

돈도, 사람도, 어떤 권력도, 세상 즐거움도 그 어떤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지켜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큰 실망감만 안겨주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하시는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1. 누구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느헤미야는 기적적으로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했습니다. 성벽을 완공하고 유다 사람들은 그들이 성벽 완공 이전에 원래 살던 곳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7월이 다가오는데, 유대인들에게 7월은 ✓ ‘나팔절(7월1일)’, ‘대속죄일(7월10일)’, ‘초막절(7월15일)’ 등의 큰 종교적 기념일들과 절기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7월이 되면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절기를 지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했지만, 예루살렘 성벽이 파괴되어 있었고,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유대 사회의 여호와 신앙을 중심으로 한 영적 공동체성을 잃고 살아왔던 겁니다. 그래서 과거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에 가졌었던 그런 종교적 절기들을 제대로 지켰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유다왕국이 멸망할 때 허물어졌던 예루살렘 성벽이 140여년 만에 재건된 것입니다. 그리고 흩어져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적인 갈망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장겸 율법 학자’였던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와 들려줄 것을 요청하게 됩니다(1절).
본문 2~3절 말씀입니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2절과 3절에 반복하고 있는 문장인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말을 알아듣는 모든 사람들이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그 말씀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날 어린이 예배를 드리는 우리 집사님의 딸이 어느 날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더랍니다. “엄마 치사해, 왜 엄마는 주일예배도 있고 금요예배도 있고, 특별저녁기도회도 있는데, 왜 어린이 예배는 일주일에 한번 뿐이야?” 그러더랍니다. 또 엄마가 너무 아파서 교회 못 오는 날에는 ‘나는 아파도 교회 갔었는데, 왜 엄마는 안가?’ 그러더랍니다. 우리교회 어린이들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얼마나 말씀을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정말 복 받을 어린이입니다.
아이들이 어리다고 말씀을 안 듣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겁니다. 누구나 말씀을 들어야 회복되고, 치유 받고, 다시 일어나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은 ‘왜, 누구나, 그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여러 증거들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 시편119:2절에서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 인생이 복되길 원한다면 그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겁니다.

– 시편119:9절에서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말씀이 우리의 범죄를 막아주시는 겁니다.

– 시편119:25절에서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우리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 시편119:50절에서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난 속에 견딜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 시편119:105절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님의 말씀은 앞을 알 수 없는 우리의 인생길에 등불과 인도자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 시편119:114절에서 “주는 나의 은신처시오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우리의 환난 속에 피난처와 방패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 시편119:165절에서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평안을 주시고, 장애물도 제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그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는 겁니다. 그 말씀 속에 위로가 있고, 평안이 있고, 구원이 있고, 보호가 있고, 복이 있는 것입니다.

2. 말씀에 아멘 아멘 하라

성경을 갖고 있고, 읽는 것,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놀라운 구원과 축복과 위로와 평안과 소망과 은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말씀에 아멘 아멘(믿습니다. 그렇습니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것을 넘어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에스라는 높은 단 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여러 레위지파 사람들도 백성들 사이사이에 흩어져서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6절 말씀을 보시면,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중적 응답>을 보여주고 있는데, 첫째는 <손을 들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 하겠다’는 표현입니다. 둘째로 <아멘(Amen)>의 원어적인 뜻은 ‘참으로, 진실로, 믿습니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 말씀을 신뢰한다는 표현이 ‘아멘’인 것입니다. 셋째로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런 표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 말씀에 복종하겠습니다’라는 믿음의 행위이고, 표현인 것입니다. 말씀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알고 있는 말씀을 하나라도 순종하며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왜 순종하지 못하는지 아세요? 말씀보다 더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보다 더 달콤하게 손짓하는 거에 자꾸 넘어지는 겁니다. 교회를 백날 다니고, 성경 내용을 이것저것 많이 안다고 거기에 능력이 나타납니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아멘 아멘 하십시오.

3.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에스라가 낭독하는 말씀과 제사장들이 구체적으로 풀어주는 말씀을 통해 백성들은 마음이 찔리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었는지, 왜 그동안 이처럼 비참한 민족의 역사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달아 지면서 백성들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총독이었던 느헤미야와 제사장 에스라, 말씀을 가르치던 레위 사람들이 백성들이 너무 우니깐 그것을 말릴 정도였습니다.

10절 말씀을 보시면,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민족의 죄와 허물로 인해 유다왕국의 멸망과 함께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성벽이 다시 쌓여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모든 사실을 깨닫게 된 이들이 울기 시작합니다.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벽이 쌓여진 것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던 그 백성들을 향해 긍휼을 베푸시고 있는 것입니다. 징계하셨던 그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회복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 힘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이 구절에서 ‘힘’이란 단어는 원어에서 ‘Mauzek(마우제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뜻이 ‘방파제’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는 것이 곧 우리를 세상의 험한 풍파를 막아주는 ‘방파제’가 되어 주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바가 아닙니까? 돈을 기뻐해서 돈을 의지하지만 한 순간에 날아가기도 하고, 사람을 기뻐해서 사람을 의지하면 어느 순간 그를 통해 아픔과 배신을 경험하고, 세상의 쾌락을 기뻐하면 그 쾌락이 영원할 거 같지만 그 끝에서 깊은 절망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할 때, 그 말씀이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우리 인생의 방파제가 되어 주시는 겁니다. 여호와를 기뻐하십시오. 그 말씀을 기뻐하십시오. 그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 말씀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라(23) –
1. 누구나 말씀을 들어야 한다
2. 말씀에 아멘 아멘 하라
3.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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