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18:5~8>
어떤 방송사에서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과 함께 재밌는 실험을 하나 했습니다. 20대 방청객 100명, 40~50대 방청객 100명을 초대해서 심리학 강의를 듣게 했습니다. 그리고 방송 중에 사전 고지를 하지 않고 방청객 사이에 두 가지 소문을 흘렸습니다. 하나는 ‘어느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부정적인 소문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어느 연예인이 아기를 입양했다’는 긍정적인 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지켜봤습니다.
실험 결과 20대의 청년층과 40~50대의 장년층이 통계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20대의 경우에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소문이 곧바로 확산되었는데 81%가 그 소문을 들었고, 86%는 그 소문을 다른 사람에게 전했습니다. 반면 ‘아기를 입양했다’는 선행에 관한 소문을 들은 사람은 18%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40~50대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는데, 부정적 소문은 84%가, 좋은 소문은 16%가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속담에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의 전파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겁니다. 그런데 ‘좋은 소문은 걸어가고, 나쁜 소문은 날아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만큼 사람은 부정적인 소문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본성 즉 ‘원죄(原罪)’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이 나보다 잘되는 것 보다, 남이 나보다는 잘 안되기를 바라는 심리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을 보시면,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에 대한 비유적 표현입니다. 마치 ‘별식(別食)’ 즉, 맛있는 특별한 요리와 같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어디 맛있는 요리가 있다고 하면, 자기 돈을 내가면서 찾아가 먹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맛있는 음식이 목으로 들어갈 때 그걸 뱉지 않고 잘 삼키는 것과 같이 사람들은 ‘남의 말하기를 좋아한다’는 겁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습성이야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말이 좋은 말들이 아니라, 나쁜 말들을 더 빨리 퍼뜨리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니 사실은 이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말들, 칭찬의 말들, 축복의 말들이야 얼마든지 많이 하더라도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남을 향해 험담을 하고, 악담을 하고,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또는 병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자기가 말하는 거짓이 진실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그는 거짓에 치우쳐 악에 지배받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5절 말씀을 보시면,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
어떻게 이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도 재판할 때 위증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분명 누군가 위증을 할 것이고, 변호사 같은 사람은 자기가 변호하는 사람의 죄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를 위해 여러 가지 거짓 변론자료들, 거짓증인들을 세우기도 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짓을 싫어하십니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따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지 않다고 말씀하시고, 그것을 싫어하실 때에는 거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6절과 7절 말씀을 보시면,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미련한 자의 입술’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6절) 다툼을 일으키고
-(6절) 매를 자청하느니라
-(7절) 멸망이 되고
-(7절)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그 말 때문에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 말들 때문에 피해를 보기도 할 겁니다. 더 심하게는 그 말 때문에 망하게 되고, 그의 인생이 마치 새가 그물에 걸리는 것처럼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의 습성이 죄 아래 있어서 남의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잠언 17:27절에서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는 ‘믿음의 의지’가 있는 겁니다. 그 믿음의 의지를 작동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입이 선하고 아름다운 말의 통로로 쓰여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의 통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