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18:16~19>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이슈는 11월14일에 있었던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벌어진 하나의 사건입니다. 경찰이 시위대 해산을 위해 쏜 살수차의 강한 물살에 69세 된 백모 할아버지께서 그 자리에서 쓰러져 뇌진탕으로 위중한 상태에 빠지신 겁니다.
민주노총 주도하에 총 53개의 단체가 결성되어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와 정치적 현안들에 있어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내자는 대회였습니다. 그런데 경찰의 우려는 집회참가자들이 ‘청와대까지 진행하겠다’고 하는데, 그 53개의 단체 중에 ‘이적단체’로 지목된 단체(민족 자주평화통일 중앙회의, 조국통일 범민족 연합 남측본부…)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경찰은 버스로 차벽을 치고 막아섰고, 시위대는 그 방어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과의 무력충돌이 일어난 겁니다. 아무리 평화적으로 시위를 한다고 해도, 막상 그 상황에 가면 그게 평화적으로 시위한다는 게 참 어렵습니다. 또 경찰도 과거에는 체류탄 같은 것을 시위대를 향해 쏘곤 했는데,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살수차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시위를 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위를 막는 이나, 시위하는 이들 간에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서로 간에 이런 불상사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서로 더 잘못했다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정치와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19절 말씀을 보시면,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어떤 사람과 어떤 문제로 인해 갈등과 다툼이 생기게 되면, 다시 좋은 관계로 회복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본문에서는 차라리 ‘강력한 성을 정복하고 빼앗는 것이 더 쉽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버린 겁니다. 그렇게 상한 마음을 다시 되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어떤 감정적인 대립이 있었고, 그 일로 인해 서로 감정에 어떤 상처가 생긴 겁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감정에 상처가 생기게 되면 그 관계가 회복되기가 어려운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감정을 끝내고 싶은 겁니다. 그 상한 감정을 털어버리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상대에 해를 끼치고자 하는 복수심이란 동기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16절 말씀을 보시면,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어떤 힘 있는 사람(존귀한 자)에게 선물 혹은 뇌물을 바치는 겁니다. 그래서 그 힘 있는 자와 친분을 맺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배경으로 삼아 그 상황을 뒤집으려고 시도하기도 하는 겁니다.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누구 때문에 겪었는데, 제 편에서 좀 말 좀 해 주세요’ 그러는 겁니다.
17절 말씀을 보시면,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한 쪽 말만 들어보면 그 사람의 말이 언제나 옳은 것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그 상대자가 와서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겁니다. 이 사람이 얘기하면 이렇게 들리고, 저 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또 다른 모습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깐 이 싸움의 결론이 쉽지 않은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이렇게 끝이 없는 싸움에 휘말릴 때가 있는 겁니다. 정말 미운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생기기도 합니다. 마음속에 ‘저런 사람은 하나님이 혼좀 내 주셨으면 좋겠다’ 할 만한 사람도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18절 말씀을 보시면,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시비를 가리기 어려운 문제의 해결을 ‘제비뽑기’로 결정하도록 한 사건들이 종종 나옵니다. 잠언 16:33절 말씀에서도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의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제비뽑기 자체가 ‘원시적인 방법이다 아니다, 합리적인 방법이다 아니다’를 말하기 이전에 여기에 담겨있는 신학적인 의미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공의(公義)의 하나님이시다’는 겁니다. 때로는 여러분이 억울하고 분해서 여러분이 복수를 하려고 시도하고 싶으실 겁니다. 하지만, 다윗이 사울의 생명을 끝까지 하나님의 손에 맡겼던 것처럼, 여러분이 복수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믿으십시오. 지금은 그 상대를 생각할 때마다 힘들고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공평과 공정과 의로움으로 행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