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1:24~27>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 속에 개운치 않은 몇몇의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정부와 일본의 위안부 합의 문제로 우리나라의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일본의 아베 총리가 ‘더 이상의 사과는 없다’는 말을 했던 겁니다.
또 2015년에 일본의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된 겁니다. 미국 다음으로 유네스코에 많은 기부금을 내고 있는 일본은 이것을 메이지시대 산업혁명 유산으로 등재했는데, 하지만 이곳은 당시 수많은 조선인들이 해저 700~1,000m 탄광에서 하루 12시간씩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지옥 섬이었던 겁니다. 이것은 역사왜곡이고, 역사 은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과는 달리 2차 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은 끊임없는 사죄와 피해보상금 지급은 물론이고 영토반환과 공통 역사교과서 편찬을 통해서 주변국과 화해를 시도했습니다. 종종 독일의 정치인, 총리가 무릎 꿇고 나치의 범죄를 사죄하는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2009년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에서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습니다.
일본과 독일 과연 이 두 나라의 역사와 미래는 어떻게 평가될 수 있겠습니까?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은 나쁜 것의 모범이 되는 나쁜 사람들을 보면서 이것을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의 잠언을 통해 어리석은 자들의 모습을 보며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잠언에는 본받지 말아야 할 어리석은 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는 24절을 보시면,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교만한 자’를 가리킵니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망령된 자’라는 것은 히브리어에서 ‘레츠(Lets)’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입을 삐쭉거리는 자, 조롱하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듯이 경거망동하게 행동하고 말하는 자를 가리키는 단어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거만함과 교만함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24절에서 그를 가리켜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25절 말씀에는 ‘게으른 자’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는데,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대학을 다닐 때 친한 친구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제가 큰 깨달음을 얻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친구와 대화하다가 앞으로 해야 할 여러 가지 공부에 대해서 ‘이런 것도 공부하고, 저런 것도 공부해야 하는데…’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가 ‘해야 하는데 하지 말고, 해!’ 그러는 겁니다. 제가 습관적으로 자주 ‘이거 해야 하는데, 저것도 해야 하는 데…’하고 있었던 겁니다.
게으른 자의 특징은 늘 생각만 하고, 꿈만 꾸고 실천을 안 한다는 겁니다. 25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그렇게 꿈만 꾸다 죽는 사람을 잠언에서는 게으른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6절에서는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베푸느니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또 다른 어리석음은 ‘탐심이 가득한 자’입니다. 늘 갖고 싶은 게 많고, 심지어 남이 갖고 있는 것까지 탐내는 사람입니다. 자기 배만을 위하지 나눔을 모릅니다. 반대로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베푸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자꾸 나누려고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좀 여유 있게 갖고 있으면 나머지를 누굴줄까? 생각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27절을 보시면,
“악인의 제물(祭物)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물은 거룩하고 깨끗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악인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겁니다. 그런데 ‘악한 뜻(나쁜 동기)’으로 그 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왔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증하게 여기신다는 겁니다.
오늘의 잠언에는 부정적인 부분들이 나와 있지만, 이것을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 (24절) 망령된 자 –> 겸손한 자
– (25절) 게으른 자 –> 성실한 자
– (26절) 탐내는 자 –> 나누는 자
– (27절) 거짓된 자 –> 진실한 자
오늘의 잠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부분에서 오늘의 반면교사로 삼기 원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