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삶”

<잠언 28:9~11> 

독일은 세계 최강국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날의 독일이 있을 수 있게 된 것은 폭스바겐(Volkswagen)을 비롯해서 BMW, 아우디, 메르세데스 벤츠…와 같이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아는 세계적인 명차들의 왕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중에 폭스바겐 그룹은 또 다른 유명 자동차 회사들(아우디, 람보르기니, 포르쉐, 벤틀리…)을 인수합병해서 명실공이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입니다.

그런데 2015년 미국에서 폭스바겐의 골프를 비롯한 몇몇의 차량이 배출가스를 조작한 혐의로 수사에 들어갔는데, 폭스바겐 쪽에서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서 엔진 테스트 시에는 배기가스가 저감되도록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실제 주행에서는 허용기준의 40배 이상 이산화질소가 배출되었던 것이 발각이 된 겁니다.
그래서 미국 법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벌금을 22조원 가량을 부과했습니다. 그리고 약 60만대의 차량을 리콜해서 수리하도록 했습니다. 또 호주에서도 45조원을 벌금을 부과한다고 하고, 우리나라 역시 수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고 전세계적으로  하면 천문학적인 벌금과 리콜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 폭스바겐이 영업 최대이익을 냈는데 그 금액이 14조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수년간 열심히 자동차 만들어 팔아도 그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인 겁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2014년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의 경우도 미국에서 연비를 과장해서 표기한 것 때문에 3천억원의 벌금을 선고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폭스바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와 같다고 하겠지만, 무엇인가 감추었다가 드러나면 부끄러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더 큰 것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잠언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시면,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겁니다. 아예 거기에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정욕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엉망으로 살면서 하나님 앞에 도와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가증스럽다는 겁니다.

야고보서 4:2절, 3절 말씀에
“너희가 얻지 못함을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잘못된 기도의 대표적인 예를 말합니다.

또 이사야서 59:1~2절 말씀에서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하나님 앞에 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삶이 따르지 않는 기도는 가증스러울 뿐입니다.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10절을 보시면,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받느니라”

악한 자는 감추고 숨기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파 놓은 함정에 순진한 자를 유인하여 빠뜨려 그의 것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계획 자체가 악합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악인은 자기가 파 놓은 그 함정, 자기가 벌여 놓은 그 말들과 계략들에 도리어 자기가 걸려드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실한 자는 복을 받느니라(but the blameless will receive a good inheritance_NIV : 그러나 부끄러움이 없는 정직한 자는 좋은 기업을 받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악을 꾀하는 악인도 그리고 정직하게 살지만 어려움 속에 있는 의인도 하나님께서 다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아셔야 하는 겁니다. 부끄러움이 없이 정직하게 성실하게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기업을 주실 것이라는 겁니다.

11절을 보시면,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

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의 생각이 거만하고 교만한 겁니다. 그러나 가난할 지라도 ‘명철한 자(discernment : 분별력)’는 스스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분별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조금 잘 나가고, 조금 가진 게 있다고 거만한 사람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입니다. 가난할 지라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분별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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