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6:1~3>
– 믿음의 기업(49) –
1950~1960년대 미국의 상업 영화들이 큰 성공을 거둘 때 세계적인 스타가 된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는 20세기 최고의 스타였고, 만인의 연인으로 불리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난 여자로써 가질 것을 다 가졌습니다. 난 돈도 많고 사랑도 많이 받았습니다. 나는 하루에 편지도 300통 이상 받습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난 공허하고 외롭습니다. 난 파장하여 문을 닫는 해수욕장과 같습니다”라는 말을 남겨두고 자살로 삶을 마쳤습니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었던 또 한명의 세계적 스타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 1929~1993)’도 죽음을 1년 앞두고 두 아들을 불러놓고 Sam Levenson의 시 <Time Tested Beauty Tips>라는 시를 읽어주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해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봐라.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남을 돕는 손이다.”
그녀는 이 시처럼 인생의 반은 영화배우로 그리고 반은 Unicef의 친선대사가 되어 전 세계의 빈민들을 돌보는 봉사자로 살다가 아름다운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릴린 먼로와 오드리 햅번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세계적 스타였고, 가장 아름다운 헐리웃 스타였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가치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 사람은 비극적 결말로, 다른 한 사람은 아름답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어떤 가치를 갖고 사는가?’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 후에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한 여정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어떤 가치를 갖고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바로 이전 구절인 출애굽기 15:27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엘림’이란 큰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그곳에 머물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증을 해결할 물과 쉴 수 있는 충분한 그늘이 있었던 사막의 대형 오아시스였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약 두 달간을 머무르다가 시내 산 방향을 향해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엘림이란 오아시스를 떠나 시내산으로 가던 중간의 신광야라는 지역에 이르렀을 때
2절, 3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들이었던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5장22~25절에 등장하는 ‘마라(쓰다)’라는 지역에서는 물을 얻지 못해서 원망했었는데, 이제는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3절을 보면 그들이 이런 표현을 씁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라고 하는데, 그들은 노예였습니다. 그들이 고기 가마 옆에서 고기를 삶았었지만 그 고기는 주인들인 애굽인들에게 바치기 위한 거였습니다. 몰래 몰래 살점을 뜯어 먹었을 수는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배불리 먹을 만큼은 결코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은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지 못했었습니다. 당시 노예들의 삶은 아주 비천한 신분이었고, 하루하루가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2:23). 지금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노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과장해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분명 두 달여 전만 해도 그 노예로서의 비천하고 비참한 삶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었습니다. 그 부르짖음의 소리가 하늘에까지 닿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져서 모세를 중심으로 출애굽 시켜 새로운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게 하신 겁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음식물이 없어서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 음식도 고기 가마 옆에서 뼈에 붙어 있는 살을 주인 몰래 뜯어 먹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겁니다. 지극히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 겁니다.
영적인 믿음의 사람들은 육체적 요구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초월하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떡 부스러기 조금 주워 먹고, 뼈에 붙은 고기 살점이 그리워서 다시 노예가 되겠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주 어리석은 불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적 가치’와 ‘영적 가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체적인 필요(돈, 쾌락, 세상 즐거움)를 위해서 영적인 복(구원, 죄 사함, 자녀됨, 천국과 영생…)을 발로 차고 있는 겁니다.
어떤 두 영화배우의 가치가 달랐고, 그것은 그들의 인생을 결정지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면 영적인 가치와 믿음의 가치로 전환하십시오. 그 가치의 전환은 우리의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