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4:9~12>
지난 토요일 TV 뉴스에서 “북한의 김정은이 매주 사나흘씩 밤새도록 술 파티를 벌인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북한에 있는 해외 주재원의 증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번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자제를 못한다”고도 언급했습니다. 또 북한의 한 간부가 “김정은에게는 생사를 함께 할 심복도 없으며 권력층조차 자신의 안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충성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황에 대해서 진단하기를 “아버지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후계자 수업 없이 어린 나이에 권좌에 올라 공포 통치를 통해 스스로 백투 혈통의 정통성을 만들려고 많은 사람을 처형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크고, 주변에 믿을 사람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에 자주 술에 기대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권력서열 2위인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기도 했고, 친형인 김정철과 이복형인 김정남은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정적이기 때문에, 가족이건 가까운 고위 인사건… 믿고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술로 그 외로움을 달래는 것으로 보여 지는 겁니다. 핵도발을 통해 국제적으로도 고립 되고 있고, 공포정치로 인해 북한 내에서도 외톨이가 되고 있다는 겁니다.
김정은은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점점 혼자가 되었고, 점점 외톨이가 되어갔던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큰 힘이 있어도,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더라도,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나은 겁니다.
오늘본문 9절에 보시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하셨습니다. 왜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더 나은 지에 대해서 세 가지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10절에서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사람은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실수도 하고, 때로 넘어지기도 하는 겁니다. 물론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졌을 때 도저히 내 힘으로 또는 내 의지로 일어날 수 없을 정도일 경우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누군가 옆에 있으면 넘어진 나를 붙들어 일으켜 줄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본가도 처가도 시댁도 친정도 없고, 형제도 없고, 학창시절 때부터 함께했던 친구도, 회사의 동료도 없는 곳입니다. 자칫 깊은 외로움 속에 신음하며 살수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한 겁니다. 얼마 전 이른 아침에 우리 집사님의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으니깐 집사님의 목원에게 SOS를 보냈는데, 그 목원이 자신이 할 수 없으니깐 교회 단톡방에 다시 도움 요청을 올렸고, 마침 제가 그걸 보고 바로 가서 밧데리 점프를 해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저 역시도 급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 이곳에 친구와 형제가 없을지라도 우리 집사님들이 계시니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이것뿐이겠습니까? 주일예배만 드리고 또는 혼자서만 신앙 생활하는 것과 비교해서 목장모임이 중요한 것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서로가 의지가 되는 겁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 사랑하는 집사님하고 터놓고 얘기도 나누고 기도제목도 나누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겁니다. 가정에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로 인해서 목사님께 심방 요청해서 심방을 받고 나면 다시 소망이 생기고, 기도의 응답도 받게 되고, 믿음도 더 크게 자라는 겁니다.
11절도 보시면,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팔레스틴 주변의 광야나 사막의 밤 기후는 갑자기 떨어지는데, 그 때 누군가 함께 붙어서 누워있으면 따뜻한 겁니다. 육체적인 것도 그렇고, 그 따뜻한 체온으로 인해서 마음에도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겁니다.
12절에서도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두 사람, 세 사람의 힘으로는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혼자 하려고 하는 것은
–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겁니다.
–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 내 결정만이 바르다고 생각할 위험도 있습니다.
– 그는 점점 교만해 져 갈 가능성이 큽니다.
예수님께서도 인류를 구원하는 이 위대한 사역을 열 두 제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마28:18~20). 물론 능력이 부족하셔서 그러셨던 것은 아니지만, 하물며 연약한 나는 누군가와 함께하고, 우리라는 공동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누군가의 도움이 되어 주십시오. 오늘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힘든 인생의 여정을 함께 가시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