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알려고 하지 말라”

<전도서7:19~22> 

제가 좀 더 젊을 때 했던 실수가 하나 있습니다. 그 때는 젊어 혈기도 좀 있었던 것 같고, 옳고 그름에 대해서 분명하게 구분하기도 좋아했던 것 같고, 억울한 일에 대해서는 그 진실을 밝히는 게 맞다 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섬기던 교구에 저를 도와 권사님과 집사님 몇 분이 헌신적으로 함께 섬겨주셨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분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함께 일하던 중에 사소한 오해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누가 무슨 말을 했는데…’ 그 가운데 저도 끼어 있고,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고 누군가는 정말 진실이 아닌 말을 하는 거 같았습니다. 그러니깐 저를 포함해서 스텝들 간에 좋지 않은 감정들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지만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하기 때문에 결국 진실은 알기 어려웠던 겁니다.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고 마음들은 상처 입고… 결국은 진실을 밝히자고 해서는 안 될 일을 제가 했었습니다. 바로 ‘삼자대면’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후회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목사 때문에 마음에 상처 입었을 성도들에게 여전히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진실이 밝혀지느냐? 답은 ‘진실은 모른다’는 겁니다. 또 만약 진실이 밝혀진다면 누군가 한 사람은 죄인이 되는 것이고, 우리는 누군가를 ‘정죄’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때 알았습니다. 삼자대면은 계속 볼 사람들 사이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하겠다는 것은 그 모든 관계를 끝낼 각오로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삼자대면의 결과가 어떠하든지 나는 나를 지독히 미워할 한 사람을 만들게 되는 겁니다. 모든 진실을 밝힐 지혜가 있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지나치게 알려고 하는 것이 내게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한 창 진행 중인데 그런 국가혼란사태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을 말합니다.

19절을 보시면,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한 도시에 힘이 있었던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지혜자 한 사람이 더 큰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요즘 정치인들 중에서 토론을 잘하는 사람이 인기 있습니다. 토론을 잘 한다는 것은 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이 그 만큼 많다는 말이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논증해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면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 문화, 교육, 군사와 안보 그리고 외교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어느 정도의 전문적 지식이 있어야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겁니다. 토론을 통해서 그런 부분들이 어느 정도 검증되어 질 수 있는 겁니다.

서구사회의 최초의 제국이라 할 수 있는 헬라제국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20세에 왕이 되어서 30세쯤에 이미 세계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대왕의 스승이 누구냐면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가장 영향력 있었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였습니다. 그는 알렉산더에게 물리학, 형이상학, 시, 생물학, 동물학, 논리학, 수사학, 정치, 윤리학, 미학 등을 가르쳤습니다. 헬라제국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알렉산더라는 인물을 있게 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걸출한 지혜자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혜는 이처럼 강력한 겁니다.

그런데 21, 22절(쉬운성경)을 보시면,
“누가 뭐라 하건 모두 알려고 하지 마라 그러다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말까지 들을까 두렵다. 너도 알다시피, 때로는 너도 남을 저주하지 않았느냐?”

궁금한 것을 못 참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어떻게든 그 궁금증을 해결해야 잠을 편히 잘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대? 나한테만 말해줘 제발…’해서 결국은 들어야 속이 풀리는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다 들어보니, 거기에 나에 관한 얘기도 포함되어 있어서 괜히 그 말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고, 그 일로 인해 또 다른 갈등과 다툼 그리고 문제들이 시작되기도 하는 겁니다.

그래서 22절에서 “때로는 너도 남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느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절에서는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나 역시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다른 사람의 좋은 점과 좋은 소식 보다는 나쁜 점과 잘못을 말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좋은 소식보다는 스캔들처럼 나쁜 소식이 훨씬 빨리 전파되기도 합니다. 내가 실수했을 때에도 나쁜 소식은 훨씬 빨리 전파되어 사람들의 가십거리(gossip)가 될 것입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알려고 하는 지식에 대한 욕구가 우리 인간에게 더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알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는 겁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지식은 더 풍성해져도 좋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너무 지나치게 알려고까지 할 필요가 없는 지식도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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