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21>
우리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죄를 안 짓고 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이 올수록 세상은 점점 더 타락해 가고 있고, 우리를 범죄케 할 요소들은 도처에 널려있는 거 같습니다. 노아홍수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세상에는 죄가 가득했었는데, 우리는 그 때보다 더 심각한 죄의 오염지대에서 믿음의 산소마스크를 쓰고 겨우 겨우 숨을 쉬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7절에서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우리가 우리를 범죄케 하는 마귀를 어떻게 대적해야 하겠습니까?
그 방법을 야고보서 4:8절에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겁니다. 반대로 죄를 멀리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에 장소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죄의 장소에서 벗어나야 하는 겁니다. 그 죄에 장소에서 머뭇머뭇하다가는 쉽게 그 죄에 오염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1편1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죄인들의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음담패설을 하고 있는데 그런 음란한 자리에 끼어 앉아서 깔깔대고 웃고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자리에 계속 앉아 있으면 나도 어느 순간부터 비판적이고, 남을 판단하는 일에 물들기 시작합니다. 은혜가 되고 덕이 되는 말보다 다른 사람 흠집 내는 일에 익숙해지게 되는 겁니다.
요셉과 다윗 둘 다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지만 한 가지 사건에 있어서는 비교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요셉의 경우 보디발의 아내와의 사이에 성적인 죄를 범할 위기가 있었고, 다윗의 경우 신하의 부인인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자리를 뿌리치면서 뛰쳐나와 범죄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자리에 머물렀었고 결국 일생의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다윗은 그 자리를 벗어났어야 했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그 자리를 피하는 겁니다.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마귀의 속임과 교묘함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죄의 자리를 벗어나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던 것은 선악과 주변에서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아예 그 근처를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마귀로부터 어떤 속임과 유혹이 왔을 때, 귀를 닫아버렸어야 했습니다. 마귀의 말도 안 되는 그 거짓말을 계속 듣고 있었던 것이 화근이 된 것입니다.
7절을 보시면,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과의 계약을 깨뜨렸고, 하나님 앞에 범죄 했고, 범죄 하자마자 첫 번째로 나타났던 결과가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범죄 하기 전에는 수치심 이란 것을 몰랐습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어린아이와 같았기 때문에 수치심 자체가 뭔지도 몰랐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하자마자 수치심이란 것을 느끼기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범죄하고, 그것이 드러났을 때는 누구나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8절을 보시면,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있었던 에덴동산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부끄러워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있는 장면입니다.
그 때 9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셨습니다. 전지(全知)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셨기 때문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찾으시는 겁니까? 마태복음 10:30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고 계시다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모르시는 게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시지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네가 지금 어떤 자리에 서 있는 것이냐?’라고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류의 첫 사람 아담이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묻고 계신 것처럼, 지금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일까요? 주님께서 보시면서 안타까워하시고 진노하실 자리라면 우리는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를 대적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자리에 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