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안식”

<창세기 5:28~32> 

우리나라 직장인들에게는 명절에 쉬는 것 외에 1년에 딱 한 번 무더운 여름철에 가질 수 있는 ‘여름휴가’가 있습니다. 2박3일 혹은 3박4일 간 갖게 되는 여름휴가는 1년 동안의 모든 억압과 노동에서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하는 기간일 겁니다. 물론 그 짧은 휴가를 알차게 보내고 싶어서 너무 무리하게 계획을 잡거나, 너무 많은 것을 체험해 보려고 하다가 휴가 뒤에 오히려 더 피곤한 경우도 많습니다. 마치 너무 배고픈 사람이 먹을 것 앞에 급히 서둘러 먹다가 체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여름휴가를 1년 내내 간절하게 기다립니다. 직장인들이 여름휴가에 대해서 그렇게 간절하다는 말은 1년 내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것이 그들에게 그만큼 고단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노동’이라는 것이 이렇게 우리의 인생에 힘들고 고된 일이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처음 지상의 낙원이었던 에덴동산을 만드셨을 때, 그 안에 살고 있던 아담과 하와에게도 노동이라는 것이 있었을 겁니다. 어쨌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과일을 따 먹는 것는 행위에도 약간의 노동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것 갖고 ‘노동’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최초에 지으셨을 때에는 노동이 있었으나 노동같지 않은 노동을 우리 인간은 했었던 겁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범죄함으로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나는 벌을 받게 되는데, 창세기 3:17~19절에서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이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때부터 인간에게 ‘노동’은 고통이요 형벌과 같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8~29절을 보시면,
“라멕은 182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에녹의 손자요, 므두셀라의 아들인 라멕이 182세에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아’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름의 뜻이 ‘위로 혹은 안식’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을 때와 같이 라멕 역시 노아를 낳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예언적인 계시를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노아라고 이름을 지은 의미가 기록되기를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라멕은 죄의 결과로 인간에게 임한 노동의 수고를 비롯한 모든 고통 속에서 노아를 통해 위로와 안식이 임하게 될 것을 미리 바라보게 된 겁니다. 히브리서 11:13절에서 구약시대에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이 가졌던 믿음을 평가하기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라멕은 인간의 모든 고통과 수고에 대해 노아가 위로해 주고 안식하게 해 줄 것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된 겁니다. 어쩌면 할아버지인 에녹으로부터 미래에 있을 어떤 사건에 대해 뭔가를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가 자신의 아들인 노아의 때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마태복음 24:37~39절에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노아 이전의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고, 노아를 통해 소수의 인원인 자기 가족들이 그 대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심판이 임하고, 또 예수님을 통해 믿음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라멕은 희미하나마 그런 계시를 받았고, 그 사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라멕이 살던 시대보다 훨씬 더 명확하게 복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노아를 통해 모든 고통과 수고와 시련 속에 있던 믿음의 사람들이 위로와 안식(쉼)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계보인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갔고, 그 아들인 므두셀라 그리고 그 아들인 라멕은 홍수가 나던 해에 죽어 천국에 갔습니다. 즉 대홍수 심판을 받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계보를 잇는 노아가 세 아들과 함께 구원 받아 새로운 인류를 보존하게 된 것입니다.

노아가 믿음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위로와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1: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고통은 죄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과 고통과 수고로부터 우리에게 참된 위로와 안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 힘으로 감당하지 못할만한 어려운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앞에 나가십시오. 주님께서 그 분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우리를 쉬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참된 위로와 안식을 누리는 복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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