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으심”

<창세기 11:1~9> 

성경을 읽다보면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열강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 열강들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인구도 적고, 면적 자체도 작고, 나라도 강대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5대 제국>이 있는데, ‘앗수르(앗시리아)’는 B.C.722년 북 이스라엘을 점령하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앗수르의 세력이 약해져 가자 ‘바벨론제국’이 힘을 키워갔고 B.C.586년 그들은 남유다왕국을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유대인들은 전쟁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바벨론 제국 이후에는 ‘페르시아 제국’이 들어섰습니다. 이 당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이미 망한 상태였고, 그들은 페르시아의 서쪽 작은 식민지였습니다. 페르시아 이후에는 알렉산더 대왕을 통해 찬란한 헬레니즘을 꽃 피우고 대제국을 건설한 ‘헬라제국’이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제국은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강철같이 강대한 ‘로마제국’이 들어서 오랫동안 제국의 역사를 끌어갑니다.

그런데 아무리 강대한 제국이라도 영원히 든든하게 서 있지는 못합니다. 영광스럽고 찬란한 역사를 꽃피는 듯 하더니 어느 순간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광활한 영토를 차지했던 강력한 제국들도 몰락하는데 우리 주변에 있는 힘 있는 사람들이라고 영원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역사 속의 대제국이든, 사람들 사이의 대단한 유력자든,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흩으시면 그 권세와 권력과 성공은 티끌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인 셈과 함과 야벳은 방주가 멈춰선 아라랏산 꼭대기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주변에 모여 살며, 많은 자손들을 낳고 생육하고 번성하기 시작했고, 인구가 많아지다 보니 그들을 통해 하나의 문명을 이루며 살게 된 겁니다. 그 때 하나의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창세기 11장 3절과 4절을 보시면
“서로 말하되 자, 벽돌로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3절은 인간들의 지능과 지혜과 문명의 발달로 이어져 빠르게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4절에서 성을 쌓고 탑을 건설하되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까지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1) 그들은 왜 탑을 높이 쌓으려고 했을까?
(2) 그들은 왜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을까?
(3) 그들은 왜 흩어짐을 면하자 했을까?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탑을 높이 쌓는 것과 자신들의 이름을 낸다는 것은 왠지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사야서 14:13절과 14절에서 타락한 천사 ‘루피서(KJV)’가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기록한 말씀을 볼 수 있는데,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루시퍼가 타락한 이유는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했던 교만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사탄이 된 루시퍼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 특별히 에덴동산의 뱀에게 들어가 아담과 하와를 미혹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유혹했습니까? “너희가 그것(선악과)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3:5)”고 속였던 겁니다.
그리고 창세기11장으로 다시 돌아와, 그 후손들에게도 하늘에까지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을 넣어줬던 겁니다. 그리고 4절 하반절에서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하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노아홍수 이후 9장1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들은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깐 온 땅에 퍼져 충만케 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겁니다. 왜 거부합니까? 교만해 지면 불순종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일 가운데 개입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 때까지 언어가 같았기 때문에, 그들은 더 힘을 모으고 더 강력하게 하나님을 대항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고, 그들은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7절).

9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하나님은 교만한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왜냐하면 교만하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대항하기도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리셨다가 그들의 교만함을 흩어버리시는 겁니다. 역사 속에 거대한 제국도, 사람들 사이에 유력한 이들도 교만하다면 하나님은 흩어버리시는 겁니다.

잘되고 성공할 수 있으나, 교만하면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흩어버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오늘도 겸손함으로 서 있어야 합니다. 오늘 나의 생각과 말과 태도와 행동 속에 교만한 모습이 깨달아 진다면 낮아짐과 겸손을 입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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