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10~13>
우리나라는 지난 6개월간 ‘최순실’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격동의 시기를 보냈던 거 같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잘 들어보지 못했던 ‘비선실세’라는 말도 참 많이 들었던 기간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인간적인 친분으로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 보이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던 사람이었고, 권력에는 돈이 따르는 것처럼 기업들로부터 수백억 원에 이르는 돈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녀의 딸도 학교를 비롯해서 승마에 관련된 여러 가지 특혜를 받고 호화로운 생활을 해왔습니다. 물론 지금 엄마는 우리나라의 구치소에 있고, 딸도 덴마크 경찰에 체포돼 구금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비선실세인 그녀와 관계되어 함께 권력의 그늘에서 힘을 행사하고, 특혜와 부정한 물질이라는 풍요를 누리던 사람들도 구속되어 죄수의 신분이 되어 있습니다.
‘풍요’라는 것 자체가 결코 죄악된 것이거나 나쁜 것은 아니지만, 풍요라는 것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가치가 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사람을 타락시키거나, 몰락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풍요를 ‘일시적 풍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베드로전서 1:24절에 보시면,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모든 육체(인생, 물질, 풍요)는 풀과 같이 시들고 말라버린다는 겁니다. 그것이 아무리 영광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마치 꽃이 잠시 잠깐 화려함을 뽐내다 사그라지는 것처럼 일시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일시적인 것, 썩어질 것에 인생의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살아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애굽에서 나와 지내다가 그리 길지 않은 시기에 큰 풍요를 얻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둘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선택권을 내려놓고 롯에게 좋은 땅을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줬습니다.
그리고 10절입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이 요단 동쪽을 바라보니 온 땅에 물이 넉넉하고 풍요로웠는데, 마치 나일강이 있었던 애굽 땅과 같이 혹은 에덴동산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풍요로워보였으면 그렇게 표현하고 있겠습니까? 어쨌든 롯은 요단 동편 땅으로 갔고,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2절을 보시면,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아브라함과 롯이 어디에 거주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데 특히 롯 같은 경우는 하반절에 보니깐 점점 소돔까지 가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아마도 소돔이란 곳이 당시 그 주변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이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13절을 보시면,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소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악한 큰 죄인이었다는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소돔 사람들은 동성연애가 일반화되어 있을 정도로 육체적인 쾌락에 집중되어 있는 음란한 도시였었습니다. 그런데 롯이 그 땅으로 갔다는 겁니다. 롯이 음란한 것이 좋아서 그 땅에 갔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주변에서 가장 풍요롭고 발전되어 있는 도시가 소돔이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롯이 10절에서 눈을 들어 풍요로운 요단 동편 땅을 선택했고, 12절에서 점점 소돔 땅으로 옮겨간 것 역시 풍요를 따라 옮겨간 것으로 보여 집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지만 풍요가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러나 풍요를 인생의 가장 큰 가치로 두게 되면, 그 풍요가 최종 목적이기 때문에 그 과정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롯이 소돔 땅이 악하고 음란한 도시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알았을 겁니다. 그러나 풍요가 가장 큰 목적과 가치가 되다 보니 그 도시가 음란하던 악하던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풍요입니다. 잠시 잠깐의 풍요를 누리다 결국 소돔은 유황불에 심판을 당하고, 롯은 빈손으로 두 딸과 함께 그 땅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일시적 풍요를 선택했던 사람의 결말을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렸지만 이것은 현대 사회 속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풍요를 여러분 인생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혀 놓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될 때 과정도 중요하지 않고, 눈이 가려져 그것이 소돔인지 고모라인지도 모르게 되는 겁니다. 풍요가 죄는 아니지만 풍요가 여러분의 주인이 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그 물질과 풍요를 부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머리는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정말 원하시는 인생을 사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일시적이고 썩어지는 풍요에 집중하지 않고, 영원하고 인생의 참된 진리를 위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일시적인 것에서 눈을 들어, 더 영원하고 참된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