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야망과 하나님의 비전”

<창세기 13:14~18> 

비슷한 말 같으면서도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가 ‘야망(野望)’과 ‘비전’이란 말입니다. 야망은 우리말이고, 비전은 영어단어지만 여기서 느껴지는 뉘앙스는 약간 다릅니다. 또 이것을 신앙적인 것으로 적용하면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먼저, ‘야망’이란 말의 한자는 ‘들 야(野)’자에 ‘바랄 망(望)’자를 쓰고 있는데, 그림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들의 언덕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그 들판에 서 있는 사람이 그 바람을 들이 마시며 커다란 꿈과 소망을 갖는 겁니다. 그래서 사전적인 뜻은 ‘무언가를 크게 이뤄보겠다는 희망’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야망이 최종목적이 되고, 그것에 대한 열망이 크다 보니깐 과정이 어떠하든 상관하지 않고 그 목표를 향해 도전하다보니 야망이 변질이 되어 잘못된 방향으로 귀결될 때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좋은 단어이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욕망과 같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전(Vision)’이란 단어는 야망과 같이 똑같이 미래를 바라보고 커다란 꿈과 희망 또는 앞으로의 어떤 포부를 갖는 것인데, 긍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쓰여 지고 있고, 무엇보다 한국교회에서도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비전이란 것은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는 한 가지 믿음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않으시면 비전 또한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망은 내가 갖는 것이지만, 비전은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경제적 갈등으로 인해서 서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했고, 그래서 롯은 상대적으로 더 비옥하고 풍요로운 소돔지역을 선택해 아브라함을 떠나갔습니다. 롯이 떠나가고 홀로 있었던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14절을 보시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여러분이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이 믿음의 결정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결단과 결정을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피해를 볼 수도 있고 어떤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결단 이후에 마음속에 어떤 두려움이 몰려 올 수도 있습니다. ‘괜히 이렇게 한다고 했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의문과 의심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렸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삼촌이고 내가 연장자인데 지금 내 나이에 새로운 곳에 가서 개척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에 비하면 조카 롯은 아직 어리고 젊지 않은가? 롯에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기회가 올 수 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결정을 번복하고 내가 먼저 선택하겠다고 할까?…’하는 마음이 왜 안 들었겠습니까?

그렇게 믿음의 결정을 했던 아브라함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을 때, 오늘 이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전에 롯이 요단 지역을 선택할 때 10절을 보면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롯은 요단 지역을 바라봤고, 아브라함은 반대쪽 있는 자리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차이가 있는 거 같습니까?

롯은 자기 스스로 바라본 것이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바라보라고 지시하고 있는 점이 다른 것입니다. 롯은 자신이 바라보고 간절히 원하는 야망과 같은 것이고, 아브라함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비전이었던 것입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롯은 자기의 꿈과 야망이고, 아브라함의 경우는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플랜이 있는 것이고, 그 플랜 안에는 미래에 대한 언약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 보시면,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셨는데,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는 플랜과 언약이 나와 있습니다.

또 16절에서는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의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하셨습니다. 아들 하나 없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매우 번성하게 될 것을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의 야망을 갖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의 야망보다는 하나님의 비전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야망은 내게 전적인 책임이 있고, 내 의지와 능력의 여부에 따라 그 원대한 꿈을 이루기도 하고 못 이룰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받은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을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플랜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 나를 향한 비전은 결코 헛되거나 해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진정한 풍요를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야망가 이기 보다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플랜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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